“불신의 시대에 필요한 건 현명하게 믿는 기술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 정재민의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불행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타인을 믿지 않으면 불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늘 의심하고 경계하면 사랑을 주고받고 행복을 느낄 기회도 봉쇄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사는 듯 살기 위해서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판사로, 법무부·외교부 공직자로 23년간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는 정재민씨가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를 펴내며, ‘신뢰’와 ‘불신’의 문제를 현장 기록과 성찰을 통해 파헤쳤다. 그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숙제로 던지며, 그동안 직접 마주한 법정·구치소·경찰서 현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심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명하게 믿는 기술이다”고 선언한다.
“판사 입장에서는 피고인을 당연히 믿지 못한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처벌을 줄이려는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믿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피고인의 편을 드는 존재이고 피고인이 돈을 많이 주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도 판사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많은 검사가 판사들이 순진해 범죄가 판치는 현실을 잘 모르고 범죄자들에게 잘 속는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이 법정에 한데 모여 이번에는 누구를 얼마나 믿을지, 황당한 언행이나 판단을 하지는 않을지 서로를 살펴보고 있으니 법정 분위기가 훈훈하고 편안할 리 없다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서 사법기관의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사기가 절도를 넘어 1위 범죄가 된 시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당연해졌다. 저자 역시 변호사로서 사기를 당하고, 경찰 수사의 어려움을 목격하며, 구치소에서 불안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고인을 만나고, 법정에서 서로를 끝내 의심하는 공방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저자는 타인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의 양자택일 문제를 넘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믿음’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의심은 우리를 지켜주지만 믿음만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역설하는 저자는 신뢰의 조건을 바로잡고자 한다. 쉽게 믿음이란 단어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믿음이 흔들릴 때도 흔들리지 않을 최소한의 기준을 찾는 데 주목한다. ‘불신의 풍경’이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의 기준을 찾으라는 저자의 제안은 믿음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한다. 그로 인해 얻는 행복과 삶의 풍요가 때로 타인에게 속아서 생기는 고통과 손실을 보상해 주고도 넉넉하게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고립된다. 세상을 완벽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믿어야 한다. 신뢰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감싸는 유일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