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없으면 美의 ‘경제 약탈’ 계속된다…‘핵 잠재력’이 중요한 이유 [최병천의 인사이트]
유독 韓日에 관세 협상이 불리했던 이유?…美에 과도하게 안보 의존하기 때문 핵잠-핵 재처리 권한-전작권 환수, 자주국방 위해선 ‘자주국방 3총사’ 꼭 필요
11월1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관세 협상에 관한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자료)’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간담회를 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가 “팩트시트 내용이 불공정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김 장관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여기 MOU(양해각서) 중에서 공정한 내용이 어디 있느냐. 미국은 한 푼도 안 내는데, 5 대 5 배분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은 ‘선방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 장관 자신은 ‘과락을 면한 정도’라고 자평했다. 왜? 애초에 우리가 원해서 시작한 협상이 아니었고, 우리가 얻어낸 성과(?)는 자동차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진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 관세율 역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해 원래는 0%였던 것이 25%가 됐다가 15%로 된 것이다. 한국은 반대급부로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수익은 미국과 반반으로 나눠 갖기로 했다. 김 장관 말처럼 ‘불공정’ 내용은 많았다.
앞서 타결했던 일본은 ‘더 불공정한’ 합의를 했다. 일본 역시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낮추되,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일본의 대미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이내에’ 완료된다. 수익은 미국과 나눠 갖는 구조다.
대미 투자금액만 비교하면 유럽연합은 6000억 달러, 호주는 연기금을 통해 1조44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호주는 국가 책임이 아니고, 수익을 해당 기업이 전부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유럽연합과 호주는 미국에 대한 단순한 ‘투자 확대’를 약속한 것이고,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약탈, 이른바 ‘삥 뜯기(갈취)’를 당한 경우다.
‘과도한 안보 의존’→‘불리한 협상’으로 이어져
중요한 질문은 왜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유독 ‘불공평한’ 협상을 강요한 것일까? 다르게 표현하면, 왜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까? 얼핏 생각하면, ‘대미 흑자액’이 많아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24년 대미 흑자액을 보면, 한국과 일본보다 많은 나라도 여럿이다. 한국과 일본이 600억 달러 규모인데 중국은 3000억 달러, 멕시코는 1700억 달러, 베트남은 1200억 달러, 독일은 800억 달러로 한일 양국보다 더 컸다. 그러나 미국은 이들 나라에 3500억~5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강제하고, 수익은 반반 나눠 갖는 협상을 강요하진 않았다.
그럼 도대체 한국과 일본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핵심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국가이며 동시에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국가라는 점이다. 즉,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 약탈’을 당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주국방을 하지 않고, 한미 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이래 국제 질서는 원래 ‘주먹에 의해’ 작동했다. 주먹에 의한 국제 질서에서는 힘 있는 강대국이 힘없는 약소국에 폭력, 강압, 약탈을 자행하게 한다. 주먹에 의한 국제 질서가 적나라하게 작동한 시대가 ‘제국주의-식민지 시대’다. 서구 문명이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통해 무기 혁명에 성공하자, 다른 문명을 하나씩 정복하기 시작했다. 동북아, 동남아, 서아시아에는 20여 개 국가가 있다. 이 중에서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는 일본, 태국 딱 두 나라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식민지 상태였다. 즉, ‘식민지’가 오히려 표준이었던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만들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반복을 피하고,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이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었던 조건들이 맞물려 이 구조적 질서는 작동했다. 중국이 2001년 12월 WTO(세계 무역기구) 가입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고, 미국 경제의 경쟁력이 쇠퇴하자 미국은 스스로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중이다.
냉전 시대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안보-성장 맞교환’을 통해 성공한 사례였다. 당시 외교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소련 견제’였다. 한국과 일본은 ‘소련 견제’(안보)에서 미국에 협조한 대가로 경제 성장을 지원받았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시장을 개방하고, 원조와 차관을 주고, 기술협력을 지원해 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동아시아 경제 기적’에 성공한 국가들은 한국, 일본, 대만,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미국의 ‘소련 견제’에 협조해준 대가로 경제 성장을 지원받았다는 점이다.
다시 찾아온 ‘주먹에 의한’ 국제 질서 시대
지금은 ‘자주국방’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3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각자도생’ 시대가 됐다. 신냉전은 허구적 프레임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중국은 ‘중국몽’, 러시아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인도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에 기반한 ‘힌두 인도’를 표방하고 있다. 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는 ‘강대국끼리의 담합’이 벌어지기 일쑤다.
둘째, 안보를 과도하게 의존하면 ‘경제 약탈’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트럼프 1기 정책의 대부분이 바이든 정부에도 계승됐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이후 민주당 정부에서도 큰 틀은 지속됐다. 셋째, 우리 뜻과 무관하게 ‘대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한해협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전면전’에 휘말릴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자주국방 3총사’를 챙겨야 한다. ①핵추진잠수함 ②핵 재처리 권한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③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우리는 ‘자주국방 3총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에서 중요했던 것은 ‘삥 뜯기’를 당하되, 자주국방의 일부를 받아냈다는 점이다.
①핵추진잠수함 ②핵 재처리 권한 두 가지 모두 추가 협상이 필요하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중요한 진일보’를 이뤄냈다. ③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중요하다. 현재 한국군은 작전 수립 능력과 정보 및 정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으로 비유하면 독자적 의사결정과 독자적 기획 능력이 부재한 상황이다.
보수 일각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경거망동으로 미국의 경계심을 강화시켜 핵추진잠수함도 좌초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파기와 등치시키는 것도 사실과 다른, 어리석은 주장이다. ‘자주국방 3총사’는 진보·보수를 떠나 초당적 정책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