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인공태양연구시설 유치전’…희비 엇갈린 전남-전북

호남 2개 지자체 엇갈린 반응…‘환영’ vs ‘반발’ 전남도 “전남의 저력을 또 한 번 증명한 쾌거” 전북도 “수용 못해…이의신청·법적 대응 불사”

2025-11-25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8월 27일 오후, 나주시청사 앞에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인공태양 연구시설 부지 공모에서 전남 나주시가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전남과 전북이 호남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1조 2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국책사업인 인공태양 연구시설 부지 유치전에 나섰던 전남이 선정에 성공한 반면 전북(새만금)은 고배를 마셨다. 

이에 따른 반응도 엇갈렸다. 전남도는 희색이 만연했고 전북도는 ‘우선 검토사항’ 충족 유일 후보지임에도 탈락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인공태양 연구시설 부지 공모에는 전남 나주시를 비롯해 전북 군산시, 경북 경주시 등 3개 지자체가 뛰어들어 경쟁했다. 

 

전남도 환영…“AI 에너지수도 마지막 퍼즐 완성”

전남 나주시는 24일 발표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 및 첨단 인프라 구축사업’ 부지 공모에서 1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 이번 공모에는 나주를 비롯해 전북 군산시, 경북 경주시가 도전했으나 나주시가 최종 선정됐다.

선발주자인 전남 나주는 타 지역보다 경쟁력에서 앞선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나주시는 이번 평가에서 타 지역과 경쟁하기 위해 이미 우수한 산업기반을 갖춘 입지 조건과 주민 수용성, 산학연 집적 환경의 우수성을 집중 알렸다.

김영록 전남지사(가운데)와 윤병태 나주시장이 10월 30일 나주 한국에너지공대(켄텍)에서 열린 인공태양 연구시설 전남 유치를 위한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위원회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유치를 기원하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전남도

전남도와 나주시는 이 시설이 들어서면 기업 300여 개 입주와 일자리 최대 1만 개가 창출돼 10조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개발이 활발한 전남에 궁극의 에너지원인 인공태양 에너지 시설을 유치하면 명실상부한 ‘에너지 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전남도와 나주시의 입장이다. 

전남도는 나주가 1차 후보지로 선정된 데에 대해 반겼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환영의 메시지도 내놨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인공태양 연구시설 부지 공모에서 전남 나주시가 선정돼 전남과 호남이 진정한 인공지능(AI) 에너지 수도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고 환영했다.

김 지사는 “오랜 세월 크나큰 희생,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오늘을 준비해 온 전남의 저력을 또 한 번 증명해낸 위대한 성취이자 역사적 쾌거”라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몰려오는 과학도시, 첨단도시로 도약과 함께 연관 기업 300개 투자 유치, 1만개 일자리 창출, 10조원 경제적 파급효과를 김 지사는 기대했다.

김 지사는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는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이 필수이고, 그 해답이자 결정판이 바로 핵융합 인공태양”이라며 “꿈의 에너지 인공태양을 발판으로 전남과 광주, 전북 3개 시도가 AI 등 첨단 과학기술과 신산업을 선도하는 날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지 부지가 있는 나주시는 신중한 입장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시민 모두의 기대와 염원이 현실로 완성된, 역사적인 날이다”고 소셜미디어(SNS)에 짧게 언급했고, 나주시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나주시 관계자는 “다음 달 3일까지 이의신청과 심사기간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부지가 확정되면 그때가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관영(가운데)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4일 군산시,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 연구시설의 전북 새만금 유치를 촉구하고 있다. ⓒ전북도

전북도 ‘불복’?…“부당한 결정, 16년 노력 허사”

전북특별자치도는 인공태양 시설이 전북의 다음 100년을 결정할 사업이라며 김관영 도지사가 직접 제안 발표에 나서는 등 행정력을 쏟았다. 하지만 정부는 전남 나주를 최종 선택했다.  이로써 1조 2000억 원의 대규모 국책 사업을 유치해 새만금 첨단산업 육성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구상이었지만 그 계획은 빗나가게 됐다.

발목을 잡은 것은 입지 조건이었다. 3가지 평가 항목 가운데 기본요건과 정책부합성은 ‘매우 우수’로 나온 반면 배점이 많은 입지조건이 ‘우수’로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기반시설인 플라즈마기술연구소 소재와 교통망 완비 등 완벽한 입지를 자신했는데 결과는 달랐다.

전북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남 나주 선정을 두고 “부당한 결정”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도는 발표 당일(24일) 인공태양(핵융합) 연구시설 부지 선정 결과에 반발해 공식적으로 이의 신청서를 냈다. 전북도의 이의신청은 공고문상 ‘우선 검토사항’을 충족한 유일한 후보지임에도 탈락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과기부가 공고문에 지자체에서 토지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지역을 우선 검토하겠다고 공고해 놓고도 정작 조건에 맞는 새만금을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과기부 공고문은 “소요 부지는 지자체에서 무상 양여 등의 방식으로 토지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문구는 다른 평가 항목보다 우선해 해당 조건(소유 부지)을 충족한 지자체에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는 게 전북도의 설명이다.

공유재산법에 지자체 소유 부지는 소유권 이전이 불가해 임대 등의 형태로 한시적으로 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 충북에서 유치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경우에도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서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반면 전북도와 군산시는 과학기술출연기관법 제5조 3항에 근거해 ‘출연금 지원방식’으로 새만금 부지 소유권 이전 방안을 제시했다. 도와 군산시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출연금을 지원하면 연구원이 농어촌공사로부터 부지를 매입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연구시설 준공과 동시에 건물과 부지 모두를 연구원 소유로 확보할 수 있어 유일한 우선 검토 대상지라고 전북도는 강변했다.  더불어 현 정부 임기 내 연구시설을 완공할 수 있는 건 새만금뿐이라고 강조해 왔다. 

반면 타 지자체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부지를 무상 양여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에 선정된 전남 나주의 경우 사업을 추진하려면 예정지를 사들인 뒤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야 하는데, 이는 지자체의 무상 양여를 금지한 현행법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법안의 제정 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 없다는 점과 현재 달성 가능한 조건을 갖춰 제안한 지자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추진 가능성에 근거해 우선권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전북에 우선권이 있는데 평가에 이를 고려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가 발생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화강암을 기반암으로 부지가 조성됐고 인근 발전소가 연구시설보다 더 큰 하중에도 문제없이 가동되고 있다며, 입지 우려도 일축했다. 

도는 이번 공모 선정 결과가 행정기본법 제12조 ‘신뢰 보호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16년간 정부와 맺은 협약과 약속이 파기됐다는 것이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2009년 국가핵융합연구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를 1단계로, 핵융합 플랜트 실증단지를 2단계로 조성하기로 했다.

2011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참여한 새만금위원회에서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를 기본계획에 포함했고, 2012년 플라즈마기술연구소 개소로 1단계를 마무리했다. 2019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연구에서는 새만금 핵융합 연구단지 추진이 제안됐다. 당시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제출한 수요조사서는 이번 공모 시설과 거의 동일하다.

전북도는 이를 바탕으로 2021년 새만금 기본계획에 과학기술 실증연구단지를 반영했고, 올해 2월에는 연구시설 용지 33만㎡를 확보했다. 또 왕복 6차선 진입로와 전기, 상하수도 인프라가 완비된 최적지임을 강조했다. 여기에 서울은 물론 대전연구원 본원과 가장 가까운 트라이포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신원식 전북도 미래첨단산업국장은 “공모 우선 조건인 토지 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만큼 새만금이 이번 공모 사업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탈락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러한 결정은 16년간 정부와 쌓아온 신뢰를 저버린 처사로, 행정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함과 동시에 신뢰 보호의 원칙에 위배된 결과”라고 밝혔다.

과기부는 다음 달 3일까지 이의 신청 기간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부지를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북도가 즉각 이의신청에 나서면서 다시 공은 한국연구재단으로 넘어갔다. 연구재단은 이의신청을 판단할 별도의 이의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한달 안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북도는 법적대응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핵융합 연구시설 후보지 선정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해 7월 1일 오전 도청에서 민선 8기 2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2년 간의 소회와 도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전북도

전북도 어깃장에 곱지 않은 시선…김관영 ‘침묵’ 주목

하지만 사실상 불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전북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국책사업 선정을 놓고 선정과 탈락 때마다 보인 각기 다른 태도가 상기되면서다. 지난 2023년 7월 20일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유치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북도의 완승으로 끝나고, 빈손에 그친 전남도는 도지사 명의로 유감을 표명하는 2단락 분량의 짧은 성명문을 내는 것 외에 이의신청 등 별도의 조치 없이 승복했다. 광주시 또한 광주·전남 반도체 특화단지가 제외된 데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비해 전북도는 새만금이 ‘국가 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선정된 데 대해 “또 한 번의 성공스토리를 썼다”고 반겼었다. 전북도는 특화단지 유치로 생산유발 8조5000억원, 부가가치 유발 2조7000억원, 고용 창출 3만2000여명 등 경제 활성화 효과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전북의 지역 내 총생산(GRDP) 비중은 2021년 전국 2.7%에서 2028년 3.5%로 상승하게 된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작 전북도의 강경 기류와 달리 김관영 전북지사가 조용한 행보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 100년을 결정할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며 “전북에 인공태양 연구시설이 꼭 필요하기에 하이퍼튜브 유치 때처럼 직접 PT에 나섰다”고 글을 올린 이후 이틀째 침묵하고 있다. 

대신 김 지사는 행사 참석에 집중했다. 24일 ‘전북겨레하나 창립 20주년 기념식’ 참석과 김제 금산사 도영 대종사의 영결식에 참석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사안이 돌출할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성 기자회견을 하던 것과는 판이하다. 김 지사의 ‘침묵’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지역정가에선 이를 두고 도지사가 직접 반발에 나설 경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도정 실책을 덮기 위한 ‘물타기용 반발’이라는 불필요한 오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몸조심으로 풀이하는 해석도 나온다. 아니면 불복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철수하기 위한 메시지 관리 수순인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향후 김 지사가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