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秘話’ 노태우 정부의 운명 바꾼 ‘비밀각서’

김원기 前국회의장 “‘타협 정치’ 위해 비공개 모임 주목해야” “꼭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대화 분위기 만드는 것도 중요”

2019-02-11     이민우 기자

혼돈의 시대다. 변화의 시대다.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길을 묻다’ 특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을 만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는 기획이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 시점에 따라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1979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당선돼 정계에 들어온 뒤 40여 년 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다. 정계 은퇴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원로 멘토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원기 “여야, 협치 통해 정치 불신의 벽 허물어야” 

2005년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타협의 정치’의 상징적인 존재로 비공개 모임을 꼽고 있다. 시사저널을 창간했던 고(故) 박권상 주필은 정치권 내 두터운 교분을 바탕으로 비공개 모임을 만든다. 여기엔 각 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참여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선 김윤환·남재희·이종찬, 평화민주당에선 김원기·조세형, 통일민주당에선 박관용·황병태(직함 생략) 등이 참석했다. 모두 박권상 주필의 주도로 모인 유력 정치인들이었다. 

이 모임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최고층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다. 강원도 속초나 전남 광양 등 지방에 가서 숙박을 하며 세미나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창간 당시인 1989년부터 약 7~8년간 유지됐다.

정치인들의 모임이니 현안의 모든 문제가 자유로이 논의됐다. 그런데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도 그 모임에선 신통하게도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심지어 모임에서 나온 얘기는 언론이나 당에서 절대 얘기하지 않겠다는 ‘보안’도 철저히 지켜졌다. 각자가 알아서 각각의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 전 의장은 “내가 평민당 원내대표가 되고, 작고한 김윤환씨가 민정당 원내대표를 하면서 상당히 대화와 타협 정치를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며 “정치를 꼭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인들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협상과 타협의 정치가 이뤄지려면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1988년 당시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윤환 원내총무와 5공 청산 합의를 이끌어낸 ‘타협의 정치’로 박수를 받았다.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 구도를 풀어간 중심엔 ‘비밀각서’가 있었다.

1989년 3월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되고 여의도 정국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당시 원내 1당이었던 평민당은 5·18 때 특전사령관을 맡은 정호용 민정당 의원 퇴진을 요구했다.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실시까지 주장하며 압박했다.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였던 김 전 의장과 김윤환 원내총무는 수차례 만났다. 읍소까지 하며 정 의원의 퇴진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호남이 기반인 평민당으로선 5·18 책임자를 용인할 순 없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정 의원을 사퇴시키는 내용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극적인 타협 속엔 양당 원내총무의 비밀각서가 있었다. 이 각서는 A4용지 6장 분량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문제 처리 △5공 비리 문제 처리 △80년 언론 통폐합 및 해직 관계자 처리 △전직 대통령 증언 문제 처리 △민주화 문제 △지자제(지방자치제) 실시 △공무원노조 등 7개 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89년 3월21일 신라호텔에서 단독 면담 후 작성됐다. 이 각서의 존재를 당시 평민당 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 전 의장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각서는 김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한 2008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관기사

김원기 “여야, 협치 통해 정치 불신의 벽 허물어야” 
‘노무현의 스승’ 김원기 前의장이 본 문재인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