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여야, 협치 통해 정치 불신의 벽 허물어야”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1 14:00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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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길을 묻다⑥-김원기
김원기 前 국회의장 “아무리 정치가 각박해도 평화 국면까지 반대해서야…”

혼돈의 시대다. 변화의 시대다.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길을 묻다’ 특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을 만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는 기획이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 시점에 따라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1979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당선돼 정계에 들어온 뒤 40여 년 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다. 정계 은퇴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원로 멘토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 전 의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수차례 요청에도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 정부와의 관계 때문이었으리라 추측된다. 과거 ‘지둘러’(‘기다려’의 사투리)라는 별명으로 통할 정도로 진중한 성격도 한몫했다. 그러던 김 전 의장이 갑자기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과거 시사저널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시사저널을 창간한 고(故) 박권상 주필이 과거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비공개 모임을 주최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여야 간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어졌다. 1990년대 여야 간 대립이 극심할 때마다 정치력을 발휘하는 장(場)으로 활용됐다. 지금의 정치권에 그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는 게 김 전 의장의 생각이었다.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내내 무거운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아마도 대한민국 정치의 앞날을 걱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생기(生氣)가 돌았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때처럼 지금의 정치권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정치력을 발휘하길 바란다는 게 김 전 의장의 바람이었다. 인터뷰는 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통합과 개혁을 위한 모임’ 사무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2008년에 정계은퇴를 선언하시고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건강은 비교적 좋은 편이에요. 격렬한 운동은 못 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친구들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골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선후배 정치인들을 많이 만나시나요.

“정치인들하고 아직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지역구에 내려가서 주민들을 만나는 건 이제 없습니다. 대신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정치인들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선후배’라고 표현하면 좋겠는데, 어느덧 주변에 선배 정치인은 사라져 있네요.”

2018년 연말에 의장님을 포함한 원로분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나누셨습니다. 주로 어떤 조언을 해 주셨습니까.

“정치계 원로들이 현직 대통령을 만난 자리였기 때문에 정부·여당의 정치를 보면서 느낀 점, 고쳐야 하는 부분에 대해 주로 얘기했습니다. 당시엔 기자들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들 응하지 않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원로들이기 때문에 논의 내용을 함구하자는 약속이 잘 지켜졌어요. 밖에 나가선 안 되는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4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5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당시 의원과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왼쪽부터) 등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5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당시 의원과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왼쪽부터) 등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文정부, 협치 없이 국정운영 어려워”

아무래도 ‘협치’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현재의 정치 상황이 협치 없이는 국가 경영이 어려운 상황 아닙니까. 문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협치를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성공을 위한 조언이 많이 오갔습니다.”

요즘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그 전보다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게 생각해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어느 정권이나 그런 양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그런 인식을 가져선 안 됩니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당장 올해도 경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 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여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라고 하는 것은 특정 정부가 아주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경제 흐름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정책이 바뀌면 약간의 진폭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비판을 수용해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희망이 없다고 보진 않습니다. 앞으로 경제는 좋아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의장님께선 큰 흐름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당시에도 ‘민주당 정권은 경제에 약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 주장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확 바꿀 수는 없습니다. 경제정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민주당 정부가 집권하면 그동안 소외됐던 계층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기 마련인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은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책임자 입장입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도 노동계 지지를 받았지만, 노동 현안에 있어선 관료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노동계의 입장을 많이 대변하셨던 분이에요.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 노동계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으면 평소 해 왔던 주장들을 그대로 지켜 나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 때 노사정위원장을 지내셨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 직후에 시작됐습니다. 자연스레 노동 현안이 많았습니다. 노사정위원장을 하면서 노동계나 경제계 대표들, 각 장관들과 함께 논의를 했어요. 그때 노동계 대표들에게 진실 그대로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동 현안에 있어서 ‘집권을 하고 보니 관료 조직의 벽이 너무 두껍다. 대통령께서 아무리 노동계 요구를 수용해서 반영하려고 해도 관료 조직을 갑자기 변화시키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당시 관료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수 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달라는 얘기였어요.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은 노동계의 실망이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남북문제까지 정략적으로 접근해선 안 돼”

청와대 분위기가 예전하고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현 정부에 있어 참모진은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참모진은 옛날에 비해 많이 젊어진 편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됨으로써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그 전과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폭을 더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 대통령을 만나 그런 조언도 했습니다. 국가 경영을 위해선 참모 조직 내에 다른 쪽에 있던 인재들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편 의견도 많이 차용해야 합니다.”

현 정부는 그래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선 긍정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남북문제는 경제정책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대통령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적으로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문제라고 봅니다. 국민들은 경제정책이 삶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쉬움이 많을 수는 있겠지요.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건국 100주년입니다. 올해엔 남북문제가 어려움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금년 내에 획기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겁니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공은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차단한 거예요. 대통령에 취임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고 핵 완성 선언을 했습니다. 미국은 선제공격을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선제공격은 우리 동의 없이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일부 국민들의 비판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미 군사훈련을 보류하자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전쟁 위기를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말합니다. 문 대통령이 신뢰를 잘 구축할 수 있을까요.

“가장 희망적인 부분도 거기에 있습니다. 남북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남북의 최고책임자인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입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문 대통령의 노력으로 두 사람의 인간적인 상호 신뢰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때 남북대화나 북·미 협상이 중단될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깊은 신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희망이 있습니다.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보수진영에선 ‘북한의 비핵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어디까지 풀 수 있느냐에 대해선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비핵화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위장 쇼’로 보이진 않습니다. 적어도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등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권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야당에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남북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믿을 수 없는 태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까.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예요. 평화가 깨져버렸을 때 결정적인 파국이 올 수 있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늘 안고 있습니다. (야당이) 남북문제까지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각박해도 그건 너무 지나친 일이에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보수 세력도 협력을 해야 가능해요. 정치뿐 아니라 언론, 시민사회 전체가 모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이 기회를 성공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1990년 8월4일 야권 통합을 위한 회동에서 김원기 당시 평화민주당 간사가 야권통합추진회의 장을병 간사, 민주당 김정길 간사(왼쪽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0년 8월4일 야권 통합을 위한 회동에서 김원기 당시 평화민주당 간사가 야권통합추진회의 장을병 간사, 민주당 김정길 간사(왼쪽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與, 설득 노력 부족…과거엔 달랐다”

자연스럽게 화두가 여의도로 옮겨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국회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개혁입법이 꽉 막혀 있다고 보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 국회에서 여야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요. 상대방을 공격해서 국민들에게 안 좋게 보이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진영이 이익을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당하는 쪽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정치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가 됩니다. 참으로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민주당 계열에서 정치를 오래 하셨으니까, 여당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은 타협 없이는 국가 경영을 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국회선진화법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 비해 여당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됐을 때 여당이 훨씬 잃는 것이 많습니다. 야당의 노선이나 평소 행태가 이해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안고 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당 쪽에서 먼저 적극적이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요즘은 그런 방향으로 조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아질 겁니다.” 

야당의 상황도 복잡해 보입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또한 내부적인 문제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물론 여당보다 책임이 조금 적을 수 있지만 야당도 국민들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해선 안 됩니다. 물론 야당이니까 비판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반대보단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태도를 국민들에게 많이 보여야 해요. 지금은 그런 태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여야의 신뢰 구축 노력이 예전에 비해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엔 어땠나요.

“옛날엔 갈등이 지금보다 훨씬 많지 않았겠어요. 권위주의 정권 때엔 정치인에 대한 탄압도 많았고, 소위 ‘날치기’라고 불리는 법안 처리 강행 문화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여야 간 적개심은 훨씬 컸었죠. 그 당시 같은 분과(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국회를 벗어나서도 자주 만났습니다. 회의 때 싸우다가도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 협치를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일단 여야가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의회를 존중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예전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했습니다. 국회의장마저 대통령이 낙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장이 될 때는 달랐어요. 노무현 대통령 때 처음으로 국회의장 선출에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제가 국회의장을 할 때 두 차례 대통령과 영부인, 4부 요인 내외를 제헌절에 국회의장 공관으로 초청했어요. 전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만큼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보여준 겁니다.”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선 국회에 대한 불신(不信)이 큽니다.

“정치 불신이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정치인이 인기를 얻으려면 정치인 스스로 정치를 비판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참 비극적인 일입니다. 극단적인 정치 불신과 혐오 속에선 양질의 정치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정치 불신의 뿌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출발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이 자기 보호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치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정권 대신 비판의 대상을 정치권으로 삼은 겁니다. 이 상황이 자꾸 전파되고 강화되다 보니까 지금의 상황에 있습니다. 정치인뿐 아니라 지식인이나 언론에서도 반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치인 특권 문제나 외유성 출장 등으로 정치 불신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요.

“국회의원의 해외 출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좀 다른 시선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야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회에 결정 권한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나 외교부에서 외교 노력을 하는 것보다 의회 차원에서 접촉하고 교분을 갖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같은 동료 의원이 가서 상의하고 부탁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국회 예산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작은 기초자치단체 예산보다 적어요. 의원들이 활동만 제대로 하도록 만든다면 정부 견제 과정에서 잘못된 예산을 시정하는 효과가 훨씬 큽니다. 정치권이 과도하게 비판을 받는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최근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서도 정치 불신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정치 불신으로 정치인 숫자 늘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치 발전을 위해선 선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하는데, 의석수를 빼놓고 논의할 수는 없거든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다른 방식이든 의석수를 이대로 두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학계나 시민사회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용납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무도 의석수 늘리자는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인원을 늘리는 대신 국회 예산을 동결하기로 하면 국민들 마음을 좀 풀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중요한 이슈가 개헌입니다. 권력구조가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2001년 3월에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개헌을 얘기했어요. 그때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을 처음으로 꺼냈습니다. 당시 대통령한테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모든 개혁의 시작과 끝이라는 소신을 갖고 주장했던 겁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국가를 위해서도 개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4·19혁명 이후 헌법에 혁명 정신을 반영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개헌을 통해 국민들의 요구를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최초의 평화 혁명인 촛불혁명엔 시민들의 정신이 다양하게 녹아 있습니다. 연인원 1700만 명의 시민들이 요구한 사회정의 문제 등 본질적인 것들을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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