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단해진 한·미·일 야구 동맹…오타니·야마모토·김현수 ‘가을의 영웅’
美 용병들, 韓日 프로야구에서 맹활약 메이저리그엔 韓日 선수들 진출
미국·일본·캐나다·한국에서 엄청난 관심을 모은 2025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의 주인공은 LA 다저스와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였다. 야마모토는 2차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 6차전에서 6이닝 1실점 선발승, 최종 7차전에서 2.2이닝 무실점 구원승을 거둬 2001년 랜디 존슨(애리조나) 이후 21년 만에 월드시리즈 3승 투수가 됐다. 3승을 모두 원정에서 거둔 건 월드시리즈가 시작된 1930년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 팬들은 야마모토에게 ‘일동원’(일본의 최동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3·6·7차전에 나서 4승을 거둔 적이 있다.
야마모토의 출발은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 고시엔(고교 야구대회) 출전 경력도 없었고,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일본 최고의 투수가 됐다. 체구가 너무 작았던 야마모토는 한 트레이너를 만난 후 공보다 창을 더 많이 던졌다. 공보다 무거운 창을 던지려면 온몸을 사용해야 한다. 창던지기를 하다 보니 체중 이동이 좋아지면서 어깨와 팔꿈치 부담이 줄고 공이 더 빨라졌다. 야마모토는 유연성도 키워 몸을 종이처럼 접을 수 있게 됐다. 다저스의 에이스였던 클레이튼 커쇼는 야마모토에 대해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군더더기 없는 투구폼”이라고 평했다.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2년 경험, 중요한 전환점 돼
메이저리그는 힘의 야구가 득세하고 있다. 투수들이 구속을 높이자 안타를 치기 어려워진 타자들은 홈런에 집중했고, 타자들의 파워가 커지자, 투수들은 구속에 더 집착하고 있다. 이제 투수들은 100마일을 쉽게 던지지만, 가동 시간은 크게 줄었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서는 197번의 완투가 나왔지만 올해는 26번에 그쳤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2001년 커트 실링 이후 24년 만에, 다저스 투수로는 1988년 오렐 허샤이저 이후 3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서 두 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뒀다.
월드시리즈 7차전 등판은 예전 에이스의 향수를 불러왔다. 전날 96구를 던진 야마모토는 올해 자신의 시즌 등판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몰라 다음 날 등판을 준비했다. 하루도 쉬지 못한 야마모토는 다음 날 정말로 9회 마운드에 올라 끝내기 위기를 넘겼다. 연장 11회에도 등장한 야마모토는 힘이 바닥난 듯했지만, 병살타로 팀의 우승을 완성했다. 월드시리즈 MVP가 야마모토인 건 당연했다.
3차전에서도 그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다저스는 연장 19회를 앞두고 투수가 바닥났다. 하지만 2차전에서 완투를 하고 하루밖에 쉬지 못한 야마모토가 감독에게 가서 등판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결국 18회말에 다저스의 끝내기 홈런이 나와 등판은 없었지만, 야마모토의 등판 자원은 동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월드시리즈의 영웅이 야마모토였다면 한국시리즈 영웅은 LG 트윈스의 김현수였다. 신인 김현수는 입단식에도 초대받지 못한 신고 선수였다. 하지만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가 된 뒤 김현수는 201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꿔왔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김현수가 시범경기에서 크게 부진하자, 볼티모어 구단은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자고 설득했다. 김현수는 마이너 거부권이 있었고, 구단의 제안을 거절했다. 개막전 때 김현수가 소개되자, 일부 팬은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김현수가 선발로 출장한 건 첫 26경기 중 4경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현수는 특유의 정확성을 앞세워 서서히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났을 때는 팀의 유일한 3할 타자였고, 종합 공격력(OPS+)은 팀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문제는 볼티모어였다. 당시 볼티모어는 홈런 야구를 추구하고 있었고, 김현수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듬해 김현수는 팀의 요구에 맞춰 장타력을 높이려다 정확성까지 잃었고, 시즌 중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됐다. 2년 계약이 끝나고 김현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의 2년은 김현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볼티모어는 엄격한 감독인 벅 쇼월터와 따뜻한 주장인 애덤 존스의 리더십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현수는 토론토에서 열린 포스트시즌 경기 때 한 관중이 던진 맥주캔에 맞을 뻔한 적이 있었다. 이때 달려와 김현수를 보호한 것도 존스였다.
2018년 김현수는 두산 베어스로 돌아가는 대신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LG는 김현수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팀이었다. 김현수가 입단하고 나서 LG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알 같다는 LG를 뭉치게 할 강력한 접착제가 나타난 것이다. 김현수는 존스를 통해 느낀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LG는 메이저리그 팀의 행동들을 따라 했다. 단지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팀워크를 만들었다.
김현수는 두산에 있었을 때 가을야구를 못 하던 선수였지만, 올해는 최고의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1994년 우승 후 28년 동안 우승이 없었던 LG는 김현수와 함께 3년 동안 두 번 우승했다.
라우어, 작년 KIA 우승시키고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도 맹활약
에릭 라우어는 뛰어난 고교 선수였다. 졸업반 때는 ERA 0.15를 기록했다. 토론토는 100만 달러가 넘는 계약금을 제시했지만 라우어는 대학에 진학했고, ERA 0.69로 1979년 이후 대학 최고 기록을 세웠다. 라우어는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계약금은 200만 달러였다.
라우어의 프로 생활은 잘 풀리지 않았다. 샌디에이고는 그를 밀워키로 트레이드했고, 밀워키는 연봉이 올라가기 전에 방출했다. 이후 여러 팀을 떠돈 라우어는 지난해 8월 KIA 타이거즈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한국 땅을 밟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뛰어난 활약은 못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선전했고, KIA의 우승을 함께했다.
메이저리그로 돌아간 라우어는 토론토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18회까지 진행된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는 12회에 등장해 16회까지 던졌다. 토론토는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했지만, 라우어가 4.2이닝을 책임진 덕분에 불펜을 아꼈고 4·5차전 승리로 이어졌다.
세계 야구의 구성원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미국·일본 리그 간 선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에 오는 외국 선수들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한국에서 좋은 활약 후 메이저리그로 돌아가는 선수도 많아졌다. 미국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의 우승을 합작한 선수는 일본의 야마모토와 오타니였다. 투타에서 맹활약한 오타니는 아메리칸리그의 유력한 MVP 후보에도 올라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현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 삼아 LG를 우승으로 이끈 데 이어, 준우승팀 한화 이글스가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오른 것은 미국에서 건너온 용병 원투 펀치 폰세와 와이스의 활약 덕이었다.
한국 유소년 선수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제는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오타니나 야마모토의 이름이 나온다. 다르빗슈 유를 가장 좋아한 장현석은 다저스에 입단했고, 야마모토를 만나 조언을 얻었다. 야마모토는 커쇼를 선배라고 하고, 김혜성은 오타니에게 선배라고 한다. 야구 세계에서 국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에릭 페디는 메이저리그에서 완봉승을 거둔 후 2023년까지 자신의 소속팀이었던 NC 다이노스 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세계의 야구는 하나가 되고 있고, 한국·일본·미국의 물리적·정신적 거리 또한 좁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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