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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LG 구광모·한화 김승연 회장, 가을야구 직관에 선물 공세

프로야구는 오랫동안 ‘돈 먹는 하마’였다. 그저 모기업의 홍보 수단으로만 인식됐다. 공짜표가 남발됐다. 구단 운영비는 대부분 모그룹으로부터 홍보비 명목으로 지원받았다. 모그룹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 야구단 존치가 흔들렸다. 실제로 삼미 슈퍼스타즈나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 현대 유니콘스 등이 모그룹 지원이 축소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SK 와이번스의 경우 그룹 사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신세계그룹에 팔린 경우였다. 야구단이 제값을 받고 팔린 것은 와이번스가 최초였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프로야구는 위기였다. 모기업이 없는 히어로즈 구단의 경우는 더 그랬다. 2020년 8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는 등 관중 수입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히어로즈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의 평균 관중은 377명(총 2만7158명)에 불과했다. 두산 베어스 또한 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야구단 매각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야구장에 사람이 몰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몰린다. 가득 찬 야구장에서, 모기업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수많은 팬이 “사랑한다, LG” “최강 한화”를 외치니 기업 오너들의 마음도 달라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잠실야구장을 찾아 직접 관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이글스가 LG 트윈스에 패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는데도 “축하한다”면서 선수단에 최신형 휴대폰을 선물로 돌렸다. 야구단을 품는 것이 그 뒤에 있는 수많은 팬을 아우르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프로야구 팬층은 지난 4년 동안 무섭도록 확장했고, 모기업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구광모 LG 회장이 10월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가 8대2로 승리하자 차명석 LG 단장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구광모 LG 회장이 10월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가 8대2로 승리하자 차명석 LG 단장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오픈하자마자 티켓 매진…“야구에 미친 나라”

2022년 600만 관중(607만6074명·평균 8439명)을 넘어선 프로야구는 2023년 810만326명(평균 1만1250명)을 채웠다. 이때는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경기장에도 사람이 몰렸다. 고약한 바이러스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보복 심리로 군중이 많은,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다른 스포츠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프로야구는 아니었다. 관중 증가 속도가 아주 가팔랐다. 그것도 4050세대가 아닌, 2030세대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4년은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진 해였다. 프로야구에 1000만 관중(1088만7705명)이 몰렸다. 10개 구단 관중 수입은 1500억원을 넘어섰다. 관중 수를 동력 삼아 구단 매출 또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통합 우승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는 상품 매출만으로 400억원 이상 벌었다는 얘기까지 있다. 김도영이 슈퍼스타로 거듭나면서 그의 유니폼만 100억원어치 이상 팔렸다. KIA의 경우, 직영으로 상품을 파는 터라 더 대박이 났다. 

2024년의 호황은 급기야 2025년 들어 그야말로 폭발했다. 매일 도파민 터지는 야구의 맛을 알아버린 시민들은 올해 더 적극적으로 야구장을 찾기 시작했다. 티켓은 오픈하면 금방 매진됐다. 키움 히어로즈 또한 3년 연속 꼴찌가 확정적이었는데도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등 원정 관중 효과로 홈경기마다 매진되기 일쑤였다. “야구에 미친 나라”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2025년 정규리그 최종 관중은 1231만2519명으로 집계됐다. 총 관중 수입은 2040억원. 히어로즈는 팬덤이 약한데도 관중 수입으로만 149억원을 벌었다. 올해 히어로즈 선수단 총 연봉(43억7600만원·신인, 외국인 선수 제외)의 두 배 이상이다.  

프로야구 팬층이 소비에 적극적인 2030세대로 낮아지면서 마케팅 전략도 바뀌었다. 구단들은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세련된 유니폼을 앞다투어 출시하면서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이제 야구장에는 60% 이상의 관중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수도권 구단 마케팅 관계자는 “작년에 상품 매출이 역대 최고였는데, 올해는 작년 수준을 넘어설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구단마다 최소 50% 이상 상품 매출이 늘어났다”고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7월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7월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KBO의 연평균 중계권료 990억원…내년에는 네이버·쿠팡도 가세할 전망

중계권료 또한 간과할 수 없다. KBO는 지상파 3사(KBS·MBC·SBS)와 3년(2024~26년)간 총 1620억원, 연평균 약 540억원 규모로 중계권 계약을 하고 있다. 같은 기간 온라인·유무선 스트리밍권은 CJ ENM(플랫폼 티빙)과 1350억원(연평균 약 450억원)에 계약했다. 연평균 990억원가량을 중계권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방송사들도 모처럼 웃었다. 경기 중계 도중 노출되는 간접광고(PI) 판매가 잘됐기 때문이다. 그 영향인지 올해 포스트시즌은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모든 경기를 지상파가 생중계했다. 시즌 때 시청률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OTT 시대에도 스포츠 점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다.

삼성과 한화가 마지막 승부를 벌인 플레이오프 5차전의 전국 기준 시청률은 무려 10.1%(닐슨코리아 집계)였다. 한국시리즈 4차전(LG-한화) 시청률도 10.0%를 기록하며, 당일 지상파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가히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국민 스포츠라고 할 만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년 시즌이 끝나면 중계권 협상이 다시 시작된다. 온라인·유무선 스트리밍권 계약의 경우 기존의 CJ ENM에 더해 네이버가 다시 야구 생중계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티빙·쿠팡플레이 등 OTT를 통해 스포츠 유료 중계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만큼, 네이버 역시 유료 멤버십 확대를 위해 프로야구를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스포츠 중계 비중을 넓히고 있는 쿠팡플레이까지 가세한다면 중계권료는 한층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각 구단은 해마다 100억원을 훨씬 웃도는 중계권료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중 수입과 상품 판매, 그리고 중계권에 더해 KBOP(KBO 마케팅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따로 있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크보빵(삼립)처럼 KBO와 협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그야말로 줄을 섰다. 예전과 비교해 계약 단가는 2~3배 올랐다. ‘쌍천만 관중’ 효과다. KBOP에서 벌어들이는 돈 또한 10개 구단이 나눠 갖게 된다. 

20년 전인 2004년 프로야구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연간 총 관중 수입은 5억3527만원(홈+원정 관중 수입)이었다. 당시 현대의 주축 선수인 정민태(7억4000만원), 심정수(6억원)의 개인 연봉보다도 못했다. 올해 통합 우승팀 LG의 최고 연봉자는 박동원(12억원)이다. LG는 올해 관중 수입만으로 242억원을 벌었다. 이 수치 비교만큼 더 명확한 현실적 증거는 없을 것이다. 프로야구는 지금 ‘산업’의 제2막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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