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이 된 유튜버들…‘강성 지지층’ 업고 ‘극단의 목소리’ 확대 재생산
‘근거 없는 의혹’ 확산 경로는?…유튜버가 던지면 의원이 받아 제도권에 전파
유튜버는 ‘억대 수익’, 정치인은 ‘지지층 확보’…“팬덤 이용하다 팬덤에 종속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9월3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를 열기로 22일 결정했다. 야권은 즉각 “청문회는 삼권분립 사망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틀 후인 24일 “헌법 유린·삼권분립 사망 장본인들은 이승만·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윤석열 모두 국민의힘 귀당 쪽이 배출한 대통령들 아니냐”면서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의 청문회 추진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야당이던 5월14일에도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청문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간 민주당 일부 강성 의원은 조 대법원장의 탄핵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청문회 강행 자체는 어찌 보면 낯선 일이 아니다.
문제가 된 건 그 근거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청문회 추진의 핵심 논거가 유튜브에서 나온 의혹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씨(김건희 여사 모친의 측근)와 모여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는 이른바 ‘4인 회동설’이다. 이 회동설은 5월10일 진보 성향 유튜브 열린공감TV에서 제보자 녹취의 형태로 처음 제기됐다. 나흘 후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법사위에서 이를 공개하며 국회에서도 공론화됐지만, 조 대법원장 사퇴론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의혹의 당사자들이 사건 처리를 사전에 모의했는지는 물론, 실제 만났는지조차 지금껏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이 다른 제보자의 존재를 언급하긴 했지만, 신원불명 제보자의 음성뿐이었다는 점에서 회동설 의혹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없다는 지적을 지금껏 받고 있다.
유튜브 권력, 공천은 물론 정당 의사결정에도 영향
그랬던 회동설이 어떻게 사법부 수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낸 ‘방아쇠(트리거)’로 바뀌었을까. 불씨를 살린 건 다름 아닌 유튜버들의 지원사격이었다. 서 의원의 의혹 제기 이후 관심이 식을 만하면 진보 유튜버들은 회동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대표적으로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채널 진행자 김어준씨는 앞선 5월14일 “(어떤 레거시 미디어도) 받지 않았다”며 “큰 스캔들이라 만남 자체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김씨는 “사실이면 굉장히 충격적인 건데, 국회에서 한 번 (녹취록을) 틀고 나서, 굉장히 파장이 클 만한 내용이었는데 후속이 없다”(7월14일), “김충식씨가 조 대법원장과 만났다는 얘기까지 있다”(8월22일)며 거의 매달 해당 의혹을 거론했다. 9월15일에도 김씨는 유튜브에서 “만났다면 그 자체로 엄청나게 부적절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증폭 과정을 거치면서 유튜버들의 주장은 국회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김어준씨가 회동설을 재차 언급한 다음 날인 9월16일 대정부질문에서 부승찬 민주당 의원은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4인 회동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고 한다”며 그런 뒤 이 대통령 사건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김 총리도 이에 “사실이라면 국민적으로 굉장히 충격”이라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거론된 사람들과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한덕수 전 총리는 “조 대법원장과 회의나 식사를 한 사실이 일절 없다”고 했고, 정 전 총장도 “고교 후배지만 모르는 사이”라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했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열린공감TV도 “사실 확인(크로스 체크)은 되지 않은 제보”라고 밝혔다. 다만 “제보자는 조 대법원장이 결코 혼자 파기환송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반론에도 민주당 의원들까지 회동설에 힘을 싣는 기류가 형성되자 유튜브에서의 의혹은 한층 활발하게 확대 재생산됐다. 일부 진보 성향 채널은 ‘특검이 조 대법원장의 수상한 오찬을 추적 중’ ‘조희대 관련 엄청난 게 터진다!’는 식의 과장된 문구를 유튜브 영상의 섬네일로 내걸었다. 영상에서도 “특검에서 조 대법원장과 관련한 유의미한 증거가 포착됐다”는 식의 설명으로 강성 지지층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만 그 내용은 기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받은 글(받글)’을 출처로 하거나 기존에 나온 의혹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를 종합하면, 교차 확인된 사실이나 결정적 근거 없는 의혹을 청문회로 키운 핵심 동력은 진보 성향 유튜버들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유튜버들이 던진 의혹을 현역 의원들이 받아 공론화하고, 이를 다시 유튜버들이 확산시키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를 두고 ‘유튜버와 정치인의 암묵적인 야합’이라고 표현했다. 상대를 압박할 카드가 필요한 일부 정치인과 콘텐츠의 재료가 필요한 유튜버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레 부정적인 공생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2022년 진보 성향 유튜브 뉴탐사가 제기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거론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 판정을 받은 사례와 흡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특정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날로 커지는 정치 유튜버의 영향력과 직결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주 시청자인 강성 지지층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각종 의혹과 과격한 주장을 내세우는 정치 유튜버들이 정치인들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정도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2023년 저서 《정치 무당 김어준》에서 이런 현상을 두고 “김씨가 펼쳐 놓은 것은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치는 정치 무속의 세계”라고 짚었다. 같은 해 시사저널 기고에서도 강 교수는 “유튜브 출연자나 제작자는 사석에서도 잘 쓰지 않는 거친 표현으로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 강성 지지자들을 만족시킴으로써 사실상 증오·혐오를 부추기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실력은 없고 싸움질만 잘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해 ‘정치의 전쟁화’를 강화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강 교수가 유튜브발 ‘정치의 전쟁화’ 가능성을 경고한 2023년 이후 정치 유튜버들의 몸집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채널은 2023년 1월9일 첫 방송과 동시에 구독자 5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 22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진보 유튜브 채널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매불쇼의 구독자는 278만 명으로 2023년(116만 명)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했다. 당시 100만 구독자를 밑돌던 스픽스와 열린공감TV 등도 진보 유튜브 생태계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보수 유튜버도 마찬가지다. 12·3 비상계엄 전후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잘 알려진 고성국씨가 운영하는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의 구독자 수는 2023년 80만 명에서 올해 131만 명으로 51만 명이 늘어났다. 비상계엄을 옹호한 배승희 변호사도 당초 보수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가 가장 많던 ‘신의한수’를 제치고 16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올해 3월 개설한 채널 전한길 뉴스는 6개월 만에 58만 명을 확보했다.
“유튜브, 실력 없고 싸움질만 하는 정치인 득세시켜”
이러다 보니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유튜버들이 정치인들의 ‘상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8월22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장동혁 대표의 당선 전후로 나타난 유튜버들의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장 대표는 자신의 당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든 승리”라고 말할 정도로 보수 유튜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후보였다. 선거 캠프도 꾸리지 않고 강성 보수 유튜버들의 채널에 잇달아 출연해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선거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당 경선 TV토론에선 내년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에서 한동훈 전 대표와 전한길씨 중 누구를 공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홀로 전씨를 고르기도 했다.
이처럼 유튜버들의 지지를 발판으로 대표에 오른 장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 선거 개입을 예고하며 당내를 흔드는 유튜버들에게 쉽사리 맞서지 못하고 있다. 고성국씨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장 대표가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등 자유 우파 정당들에 당선 가능한 지역 30개에 공천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한길씨도 “전한길 뉴스 구독자가 53만 명인데 모두 국민의힘 당원으로 가입하면 당원이 75만 명인 국민의힘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중도 인사를 지도부에 중용하며 통합 행보에 나서려 했지만, 결국 강경 노선으로 회귀한 배경에도 이 같은 유튜버들의 압력이 작지 않게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실질적인 정책 전개와 의사결정이 강성 유튜버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때문에 강 교수의 표현처럼 ‘실력은 없고 싸움질만 하는’ 일부 강경파 정치인이 유튜브에 앞다퉈 출연하며 그 영향력을 경쟁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시선이 당내에 적지 않다. 그렇다고 반기를 들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곽상언 민주당 의원은 “유튜버가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가 강경파 최민희 의원에게 당내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공개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실제 주간경향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 166명 중 지난 1년간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하지 않은 의원은 65명에 불과하다. 정당의 고유 기능이 소수의 유튜버 몇 명에게 사실상 장악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튜브는 팬덤정치와 연결돼 있다. 처음에는 정치인들이 팬덤을 이용하다가 나중엔 팬덤에 종속돼 버린다”며 “정치인 본인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맞다고 하면, 따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버들이 더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원인을 ‘수익’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유튜브 구조상 핵심 시청자인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계속 동조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 유튜버들은 실시간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채널에 보내는 후원금인 ‘슈퍼챗’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슈퍼챗 수입 상위 30개 채널 중 절반가량이 정치 분야 채널이었다. 진보·보수 유튜브 구독자 상위 40개 채널 중 출범 이후 ‘억대 수입’을 기록한 곳은 24개로 절반을 넘었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은 2023년 1월9일 첫 방송 이후 2년8개월여 만에 12억3000만원의 슈퍼챗을 끌어모았다.
정치인 불러놓고 광고…정치 삼켜버린 유튜브
이 밖에 영상에 붙는 조회 수 및 광고 수익, 채널에 계좌번호를 공개해 받는 자율 후원금, 외부 광고 등까지 포함하면 실제 수익은 더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 때문에 유튜버들이 현역 정치인들을 출연시킨 뒤 광고의 ‘얼굴 마담’ 역할을 시키는 일까지 벌어진다. 9월2일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박시영TV에서는 진행자가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를 옆에 두고 ‘긁지 말고 뿌리세요’라는 내용의 화장품 광고를 2분여간 진행하기도 했다. 그동안 김 원내대표가 머쓱하게 웃는 장면도 포착됐다.
극단적인 유튜버와 정치인의 ‘공생 관계’가 심화할수록 대의민주주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거대 양당이 사실상 ‘권리당원의 당’이 되면서 강성 지지층의 요구만을 대변하는 유튜버가 이들의 지지를 원하는 정치인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라며 “경선부터 공천까지 양당이 정당법과 당헌·당규를 개선해서, 권리당원의 목소리보다 민심의 목소리가 더 반영될 수 있도록 합의하는 것이 현재로선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