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최정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관장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최 관장님 덕분에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1862~1944)를 알게 되었다. 출발 전날 저녁에 전화로 약속을 잡으며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힐마 클린트 전시하는데, 내일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 같이 보실래요?” 그녀의 제안을 듣고 힐마 클린트를 검색해 보았다.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에 도달한 스웨덴의 여성 화가를 왜 내가 몰랐을까.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도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 파란 하늘 아래 서있는 흙벽, 외관이 독특했다. ‘수직의 정원’으로 설계된 미술관 벽에 대한 최정은 관장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콘크리트 건물 외벽에 진짜 풀과 꽃이 붙어있었다!
전시실을 둘러보며 힐마 아프 클린트의 에너지 넘치는 그림들에 나는 압도당했다. 어릴 적 그린 데생과 초상화,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려진 작은 풍경화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초기 작품들에서도 뛰어난 드로잉 솜씨가 감지되었다. 전시실 벽에 붙은 안내문, 힐마 클린트의 미술 세계를 설명하는 글은 훌륭했으나 대충 읽고 지나갔다. 그걸 다 읽느라 눈이 피곤해지기 전에, 아침부터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 이리저리 뛰어 고단한 몸이 더 고단해지기 전에 또렷한 내 눈으로 선입견 없이 ‘힐마’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전시실 벽을 가득 채운 대형 그림들이 내뿜는 기운이 대단했다. 색감이 독특했다. 번들거리지 않는데 유화일까? 궁금해 옆에 붙은 설명을 보니 ‘종이에 템페라’라고 쓰여 있다. 안료에 달걀을 섞는 템페라(Tempera)는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기법이다. 현대미술가가 템페라를 활용한 그 실험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전시를 둘러본 뒤 힐마 클린트 관련 영상을 보여주는 방으로 발을 옮겼다. 의자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1862년 스웨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힐마 클린트는 일찍이 식물 드로잉에 재능을 보였고 스무 살에 스톡홀름 왕립미술아카데미에 들어가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다. 자연주의풍 전통 회화를 그리던 힐마는 1880년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종교와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당시 유럽의 지식 예술계에 유행한 강령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신지학(神智學)의 영향을 받아 영적인 사유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길을 탐색하며 그의 예술은 전환기를 맞는다.
4명의 여성 화가와 ‘5인회’를 결성한 그녀는 명상과 자동기술 드로잉 실험을 통해 추상회화를 발전시켰다. 남성보다 여성들과 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던 힐마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그림으로만 먹고살 수 있었을까? 시대를 앞서간 여성 미술가는 어떻게 사회에 받아들여졌을까?
칸딘스키보다 몇 년 먼저 추상에 도달했고 ‘원자’ 파장 등 현대과학의 발견을 회화로 표현하려 했던 선구자.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던 힐마는 자신의 작품이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고 “내가 죽은 뒤 20년 동안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봉인된 힐마의 ‘이상한’ 그림들은 1960년대를 지나 1986년경 처음 공개되었으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2019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힐마 클린트라는 이름이 미술계를 강타했고, 시대를 앞서간 작품들은 비로소 합당한 조명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힐마의 어마무시한 에너지에 자극받아 나도 더 버틸 힘을 얻었다. 내 생애에 드물게 충만한 하루였다. 날 거기로 데려간 최정은 관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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