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韓, 이미 경쟁력 갖춰…웨스팅하우스 계약 한계 기억해야”
“SMR 산업 표준화 형성 시점 다가와…국가첨단전략산업 지정하고 속도 내야”
한국은 ‘작고 강한 원전’이라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 산업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고리원전 2호기(고리 2호기)가 다시 돌아가게 되면서 정부의 에너지 로드맵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SMR 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 인프라에 전력이 필수 조건인 만큼, ‘AI 3대 강국’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차세대 원전’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이미 SMR 1호기를 완성해 시험 운전을 마쳤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전력난의 해법으로 SMR 도입 계획을 밝혔다. SMR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장인 이언주 의원은 한국이 SMR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SMR은 에너지 질서를 재편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은 여기에 이미 경쟁력이 있다”며 “주도성을 잃으면 한국은 ‘을(乙)’의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SMR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이를 한국 경제의 새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3강’ 목표 속에서 전력 확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SMR 산업의 골든타임은 언제까지라고 보나.
“SMR 산업 성장곡선의 초입인 지금 올라타야 한다. 모든 산업의 성장기에 올라타지 못하면 나중에는 로열티를 내면서 하청밖에 못 한다. 웨스팅하우스 계약에서 여러 한계를 겪었듯,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와 갖고 있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SMR의 상용화는 빠르면 2027년, 늦으면 2030년 전후가 될 텐데 그때가 되면 늦다. 기술 지분 구조와 네트워크·거버넌스·표준화 체계가 다 만들어진다. 표준화가 끝난 뒤에는 ‘잘 만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빼고는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도록 최악의 경우 ‘귀퉁이’라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공동개발 국가가 될 수도 있는 타이밍이다.”
한국은 대형 원전과 SMR 모두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결정과 관련해 대형 원전 정책 방향은 어떻게 보나.
“기본적으로 원전의 성격이기 때문에 대형 원전을 잘하는 나라가 SMR도 잘하게 돼 있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있고 수명도 다른 나라보다 보수적으로 잡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일정 부분 연장을 할 필요가 있다. 신규 건설은 주민 수용성 때문에 매우 어렵고 공사 기간도 오래 걸린다. 안전성이 전제된다면 대형 원전의 수명 연장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SMR이 대형 원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SMR은 기존 원전을 대체하는 정도가 아니다. 전체 발전·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효율성이 높고, 소형화돼 있기 때문에 작은 단위에서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에 붙여 쓰는 방식도 가능하다. 빅테크들도 이미 그런 구상을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SMR과 세트로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초전력이 필요한 연구 시설이나 핵잠수함 등에도 활용 가능하다. 안전성 부분에서도 기존 원전보다 훨씬 우수하다. 기성 원전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초대형·초효율 배터리인 셈이다. AI 대전환 시대에 굉장히 최적화된 전력 모델이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 내에서도 대형 원전은 반대하더라도 SMR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한국이 SMR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미 미국과 중국의 SMR 산업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지만 우리도 개발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원천기술 기반이 상당히 견고하고, 원전 운전과 원자력 발전 기술도 고도화돼 있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관여해 왔기 때문에 퍼스트티어 안에 들어와 있는 나라라고 본다.”
재생에너지와 비교할 때 SMR의 산업적 기회는 무엇이라고 보나.
“재생에너지의 경우 이미 유럽·중국이 원천기술과 제조 생태계를 장악했다. 우리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에너지 믹스’를 하지만 기술 면에서는 선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산업을 수출 먹거리로 키우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반면 원자력 분야는 우리가 비교적 일찍 들어가 노하우를 축적했다. SMR은 아직 ‘별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초기 시장이라 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 에너지의 효율성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전력을 넘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SMR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의 로드맵이 왜 필요한가.
“SMR의 경우, 여러 기술이 동시에 개발되는 중이다. 어느 정도 개발이 끝나면 표준화 경쟁이 시작된다. 초기에는 서로 협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공·실패가 갈리면서 ‘초기 개발 지분 참여자(국가)’가 확정된다. 우리는 미국·중국을 제외하곤 상당히 앞서 있다. 기술이 완성돼가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국가첨단전략산업에 꼭 포함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SMR을 포함한 에너지 전략을 국가 산업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밸류체인을 의미하나.
“칩–데이터센터–전력망–발전 기술 등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봐야 한다. SMR의 산업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는 산업들이 많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골드러쉬 때 청바지와 곡괭이가 잘 팔렸던 것처럼, AI 시대의 청바지와 곡괭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하나의 밸류체인 안에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SMR과 함께 피지컬 AI(휴머노이드·자율주행차 등 물리적 AI 산업군)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자동차 산업과 굉장히 비슷하고, 모터·액추에이터·정밀 부품 등 우리가 잘 만드는 것들이 핵심이 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AI는 만물박사일 필요가 없고 ‘특화형’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제조와 결합되는 피지컬 AI에도 한국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병행돼야 하는 전략들은 무엇이라고 보나.
“인재 확보 정책도 굉장히 중요하다. 인재들도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산업 생태계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 지금 국내에서 원자력 관련 학과로 가는 인재들이 많지 않다. 인재 확보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잡을 것인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 역시 공공 영역에서도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예산을 잘 챙기고, 기업 간 공동 연구 및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