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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을 공부하면서 태평성대의 의미를 비로소 정확하게 알았다. 그 답은 태괘(泰卦·***)에 있었다. 태평(太平)이란 그저 잘 먹고 잘살고 아무 일 없는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태평이라기보다는 태통(泰通)하는 세상이 공자가 생각했던 태평성대의 본래 의미였다.그러고 보면 잘 먹고 잘살고 전쟁 없기로야 2025년의 대한민국만 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K 어쩌고어쩌고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태태평평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이렇게 말하는 순간, 목에 탁 걸리는 것은 무엇일까? 통(通)이다. 화통(和通)이 없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팩트시트(11월14일)는 대한민국 원자력 정책사에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80년 숙원이었던 한반도 평화와 에너지 안보를 향한 첫 발걸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합의가 시작이자 선언일 뿐, 실질적인 권한 확보는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적 기회를 진정한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안보와 민생’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한미 정상이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동의하고 팩트시트로 정리한 것 자체는 명백한 진전이다.
민주주의의 사악함은 다수의 승리가 아니라 저질스러운 것의 승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국회 입법권으로 검찰과 법원을 길들이려는 민주당의 압박이 도를 넘고 있다. 대장동 개발비리 1심 판결 항소 포기에 대해 검사장 18명 등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한다는 이유로 11월14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검사 파면법’을 발의했다.법안은 검사 징계법을 폐지하고 검찰청법을 개정해 법관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는 검사를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해 파면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검사에 대해 직위해제 및 직
최근 정국을 휩쓰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거대한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집권 세력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힘을 잃어가는 헌정(憲政) 풍경에 ‘혁명과 숙청’이라도 벌어지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민주당이 ‘검찰 파면법’을 입안하는가 하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던 대법원을 겨냥해 ‘대법관 수임 제한법’까지 준비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과 형사사법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검찰은 본래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도록 설계된 준사법 기관이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졌기에 그 독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최정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관장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최 관장님 덕분에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1862~1944)를 알게 되었다. 출발 전날 저녁에 전화로 약속을 잡으며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힐마 클린트 전시하는데, 내일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 같이 보실래요?” 그녀의 제안을 듣고 힐마 클린트를 검색해 보았다.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에 도달한 스웨덴의 여성 화가를 왜 내가 몰랐을까.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도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 파란 하늘 아래 서있는 흙벽, 외관이 독특했다. ‘수직의 정원’으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10월21일 한 방송에 출연해 “대구·경북 주민은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이재명 정권과 잘 싸운다. ‘보수 전사’라는 인식이 각인돼 있다”고 했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의 대구시장 관련 여론조사에서 이 전 위원장이 1위를 차지한 결과를 두고 한 말이다.#.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과정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대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비난하고, 친언니가 없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과 관련해 ‘나 의원 언니 의혹’을 난데없이 제기해 빈축을 샀다.
지금은 많은 국민이 잊고 있겠지만, 2022년 봄에 치러진 제20대 대선을 결정한 핵심 변수의 하나가 대장동 사건 의혹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경쟁자였던 이낙연 후보의 캠프에서 흘린 것으로 알려진 대장동 사건 의혹은 이후 일파만파 여론에 영향을 미쳤으며, 만일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제20대 대선의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0.73%라는 박빙 대결 끝에 당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던 것도 대장동 사건 의혹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이후 대장동 사건 재판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위
우리나라 가계가 보유한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20%포인트 정도,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40%포인트나 높다. 이런 구조는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자산을 현금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우리는 이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에서는 매우 피상적이거나 때로는 감정적이다. 그 원인을 ‘우리 국민들의 끝없는 부동산 사랑’으로 규정하고 ‘부동산 투기심리 억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한
경주 APEC 기간에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두 사람이 급조된 만남을 가졌다면, 트럼프는 “당신은 핵을 가진 스트롱맨”이라며 과장된 찬사를 퍼붓고, 김정은은 “왜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하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공들여 세운 한미·한중·한일 정상회담의 전략 메시지는 흐트러지고, 젠슨 황·이재용·정의선 회동으로 빛난 세계 CEO 서밋의 상징성도 빛이 바랬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트럼프의 깜짝 제안을 김정은이 거부한 덕분이다
“대중의 취향을 과소평가해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 ‘서커스의 제왕’ PT 바넘이 남긴 명언이다. 현대판 바넘은 누구일까? 도널드 트럼프가 ‘21세기의 PT 바넘’으로 불리곤 한다. 10년 전 외교전문매체 ‘포린 폴리시’의 대표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트럼프를 바넘에 비유하면서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뽑을 때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물론 그 예측은 빗나갔다. 로스코프는 사람이 지나치게 심각하면 오히려 단순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장난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순방 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깜짝 만남을 시도해 세상을 흔들었다.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반복해 김 위원장을 유인했다. 10월24일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려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이 얼마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북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정말 많은 핵무기를 갖게 되면, 그때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라
매년 11월이면 우리 주위를 감싼 공기가 한층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는 오래 품어온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쓰라린 낙담과 맞닥뜨리게 될 시간이 어김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11월13일이 숙명의 그날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그 가족, 친지 등 많은 사람이 한 운명처럼 얽혀 함께 긴장하고 애태우면서 이날을 맞는다. 이번 수능의 응시자 수는 55만4000여 명으로 전체 국민의 약1%에 불과하지만, 심리적으로 연계돼 ‘수능 증후군’을 함께 앓는 인구는 그 몇십 배에 달한다. 최초의 초등 교사 출신
인조반정이 성공을 거두는 과정을 ‘광해군일기’와 ‘인조실록’을 통해 읽고 있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당장 반정에 동원된 무장 세력이 1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무장도 갖추지 않은 오합지졸에 지휘부 또한 군사 경험이 없는 문신이 다수였다. 반면에 조정의 군대는 총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애당초 무력에서 양측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조정의 군대가 한순간에 패배하고 광해군은 담을 넘어 도망쳐야 했을까?반정 세력은 그리 조직적이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 여러 차례 역모와 관련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만병통치약이지만 때로 만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여야가 극한 대결을 펼치고 있을 때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엄청난 화약고가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대통령이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은 ‘역사적인 사안’과 ‘법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한 언급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이 두 가지 금기성 사안을 ‘아프게’ 건드려 내란 정국에서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불씨는 두 곳에서 타올랐다. 먼저 이재명 대통령은 10월12일 서울 동부지검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합동수사팀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2025년 상반기 관세청에 적발된 마약류는 2680kg이다. 전년 동기 대비 800% 폭증한 규모이고 필로폰 1회 투약량(0.03g) 기준 8933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지난 4월 강릉 옥계항에서 1690kg, 5월 부산항에서 600kg의 코카인이 각각 적발됐는데 이는 2023년 상반기 대비 7641% 증가한 충격적 규모다.금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이상휘 의원이 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는 4조원을 넘어섰다. 2006~21년까지 15년간 누적 피해(통계청
우리는 민주주의 제도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엔 손가락 사이로 모래 새어나가듯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빠져나가 국민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폭정(ON TYRANNY)》이란 책에서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그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했다. 1932년 11월6일 선거로 제1당이 된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 그는 1933년 2월27
“왜 떠나려 해? /나도 모르겠어. /이유를 알고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내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실린 ‘여행’을 지금 여기 옮기며,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언제든지 원할 때 떠날 수 있다는 게 내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직장인(職場人)들뿐만 아니라 나처럼 급료를 받아 생활하지 않는 자유인들에게도 여행은 낭만이며 꿈이다. 왜 여행을 떠날까? 편한 내 집을 두고 왜 힘들게 이동해 낯선 곳에서 잠을 자
조희대 대법원장은 9월30일 있었던 국회의 청문회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해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겠다, 탄핵소추를 하겠다 으름장을 놓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동행명령장은 조 대법원장이 불응할 가능성이 높고 영장과 달리 강제력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탄핵소추는 과거 정치적 남발로 국민의 시선이 따가울 뿐 아니라 소추 사유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나온 막연한 주장만으로 직무집행상 위헌·위법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
오래전부터 추석과 같은 명절 연휴의 귀성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큰 돌덩이들이 있다. 겉면마다 판에 박힌 서체로 쓰인 ‘바르게 살자’라는 글씨는 그 크기에서부터 압도하듯 시선을 잡아챈다. 30여 년 전 신군부 정권 이후 대로변이나 마을 어귀에 유행처럼 세워져 구시대의 화석인 양 남겨진 그 돌덩이들은 거기에 쓰인 글귀 그대로 우리들을 과연 바른 삶으로 이끌어주었을까. 그런 의문과 함께 무엇이든 한번 만들기가 어렵지, 만들어지고 나면 치우기가 쉽지 않다는 교훈을 다시금 깨우치기도 한다. 이 돌덩이를 어느 길에선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문득 이
영국의 몽고메리, 독일의 롬멜과 함께 ‘기갑전의 3대 명장’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패튼 장군은 평생 자신을 한니발(카르타고 시대의 장군)의 환생이라 확신했다. 또한 군신(軍神)인 ‘마르스’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준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마르스’의 보호에 안주하지 않았다. 일례로, 1947년 자신의 회고록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서 패튼은 훈련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훈련 중 땀 한 방울, 전투 때 피 한 갤런”“훈련에서의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의 피 한 갤런을 아낀다(A pint of sweat will save a 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