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부, ‘항소 포기’ 앞장선 인사를 중앙지검장에…징계와 인사로 검찰 장악하기
‘대장동’ 수사검사들 대거 사직하면 이재명 사건은 공소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민주주의의 사악함은 다수의 승리가 아니라 저질스러운 것의 승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국회 입법권으로 검찰과 법원을 길들이려는 민주당의 압박이 도를 넘고 있다. 대장동 개발비리 1심 판결 항소 포기에 대해 검사장 18명 등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한다는 이유로 11월14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검사 파면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검사 징계법을 폐지하고 검찰청법을 개정해 법관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는 검사를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해 파면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검사에 대해 직위해제 및 직권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검사장급 검사를 징계 절차 없이 평검사로 강등할 수 있도록 한 검찰청법 제34조 제2항도 신설한다. 징계 없이 인사발령만으로 검사장을 평검사로 강등하고 탄핵에 의하지 않고도 검찰총장과 검사를 파면하며 검사에 대해 직위해제와 직권면직도 할 수 있게 되면 검사의 신분 보장 제도는 완전히 무력화된다.
민주당의 ‘검사 파면법’이 위험한 이유는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현직 여당 국회의원도 임명될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 인사와 징계라는 수단을 통해 검찰을 권력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직접 검사 평가하고 면직”
검사장을 평검사로 발령 낼 수 있는 사유도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거나 근무태도가 극히 불량하여 검사장급 직위에 보직하기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것이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를 평가하는 당사자가 집권 정치권력이라는 점이 문제다. 탄핵에 의하지 않고는 검사를 파면하지 못한다는 현행 검찰청법이 갖는 제도적 의미는 크다. 윤석열 정부 시절 이재명 대표 수사와 관련된 검사들에 대해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남발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전부 기각되었다. 탄핵 제도가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변호사법상 파면된 검사는 5년간 변호사 개업이 금지된다. 변호사 개업을 못 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이재명 정권은 검사 징계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 형벌과 달리 징계 절차는 소급입법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 관련 수사검사들을 전부 파면 대상으로 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공소 취소 여부에 관심이 쏠려있지만 파면과 그로 인한 5년간의 변호사 개업 금지를 우려한 수사검사의 대거 사직으로 공소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대법관 퇴임 후 5년간 대법원 사건을 맡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논란거리다. 현행 1년을 5년으로 연장한다는 것인데 전관예우 방지 목적이라면 모든 법관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지만 유독 대법관으로 한정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과 검찰의 독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입법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제정된 법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이다. 선진국들이 판사와 검사를 사법관(magistrat)으로 규정하고 헌법상 엄격한 신분 보장 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의 독립 없으면 공정함이 없고 공정함이 없으면 정의도 없다”는 프랑스 검찰총장 장 루이 나달의 지적은 검찰 독립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프랑스는 판사와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관한 사항을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판사의 경우에는 구속적 효력을, 검사에 대해서는 권고적 효력을 갖는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도 판사와 검사에 대해 동일한 신분 보장을 하면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가 인사와 징계권을 갖고 있다.
조영래 “상식과 정도에 어긋난 법, 법 아냐”
법관 부동성(不動性)의 원칙도 헌법에 규정해 징계에 의하지 않고는 본인의 동의 없이 승진 또는 전보 인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법원과 검찰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던 나치와 파시스트 정권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좋은 입법례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탄핵 제도와 더불어 허술한 사법부 독립 보장 제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감춰진 시한폭탄’임이 확인되었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다수당이 입법권을 남용해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을 마음대로 개정하면 얼마든지 법원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민주당이 증명해 주고 있다. 프랑스 헌법은 법원과 검찰의 조직과 권한에 관한 사항을 조직법으로 정하도록 규정한다.
우리도 법원조직법, 정부조직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프랑스의 ‘조직법 loi oranique’은 우리와 다른 개념이다. 법률보다 상위에 있고 조직법의 제정과 개정은 상원과 하원의 특별다수결로 의결한다. 또한 반드시 헌법위원회의 사전 위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지배’가 아니다. 다수의 정치적 지배를 법치국가적으로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다.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 원리도 정교한 법과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법권 독립 보장을 위한 우리와 프랑스 헌법의 근본적 차이가 의미하는 바도 법과 제도의 중요성이다.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가 피어났지만 더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꺼져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는 “법이란 원래 상식과 정도에 따라야 하는 것인데 ‘상식과 정도’에 어긋나는 법은 법의 겉모습만 갖추었을 뿐 법이 아니며 법의 반대물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5공 군사정권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재명 정권의 입법 폭주는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11월19일 항소 포기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을 보란 듯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인사는 오만함의 극치다. 자제의 규범이 사라질 때 견제와 균형 대신 정체와 마비가 들어선다. 노자는 “천하를 자기 주관에 따라 멋대로 다스리면 단언컨대 좋은 꼴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지혜의 으뜸은 ‘멈출 때를 아는 것(知止)’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