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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국을 휩쓰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거대한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집권 세력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힘을 잃어가는 헌정(憲政) 풍경에 ‘혁명과 숙청’이라도 벌어지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민주당이 ‘검찰 파면법’을 입안하는가 하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던 대법원을 겨냥해 ‘대법관 수임 제한법’까지 준비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과 형사사법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검찰은 본래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도록 설계된 준사법 기관이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졌기에 그 독립성과 중립성, 신분이 엄격하게 보호돼 왔다. 검찰이 예뻐서 특권을 부여한 게 아니다. 검사가 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막고,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다. 이런 장치 덕분에 전두환 시절, 경찰이 저지르고 은폐했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검찰이 밝혀낼 수 있었다.

국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국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검사·판사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나

검찰과 사법부에 혹독히 도려내야 할 어두운 과거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권처럼 검사와 판사 집단 전체를 범죄시하고 제 입맛대로 째고 짜르고 꿰매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검찰 파면법으로 검사를 ‘파면’할 수 있는 칼자루를 정권이 쥐게 되면 어떤 검사가 권력이 원하는 방향과 다른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있겠나.

이대로 간다면 다음 수순도 예상된다. 검사를 파면했으니, 판사도 정권 임의대로 파면하는 법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범 여부가 쟁점인 ‘이화영 대북 송금’이나 ‘대장동’같이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의 수사검사를 국회 청문회에 불렀거나 부르겠다고 하니, 해당 판사까지 소환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건과 진실은 사라지고, 집권 세력이 사법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규정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사법 시스템 손질이 결국 이 대통령 한 명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심이 확산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이 대통령이 당선한 6·3 대선에서 여야 표심이 49 대 49라는 놀랍도록 균형 잡힌 수치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 누구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권력 독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경고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쪽에서 무너져도 곧바로 되돌아오는 복원력을 보였다. 유권자는 만만하지 않다. 정치가 길을 잃으면 시민이 깨어난다. 이 정권은 ‘깨어난 시민’이 자기 진영의 전유물이라는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민주주의 궤도 이탈엔 국민 저항 뒤따라

이 대통령의 자각이 중요하다. 권력의 정점에 서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체제가 아니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 이 원리를 무시한 과거의 대통령들은 비참해졌다. 민주주의의 궤도 이탈엔 반드시 국민의 저항이 뒤따른다.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 정치 지도자들에겐 선지자적 희생과 협력이 요구된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권이 공안 정국으로 치달을 때 원수처럼 지내던 여당 대표 김영삼과 야당 대표 김대중이 전격 회동했다. 그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선언하자 국면 반전이 일어났다.

현재 야당의 지도자 격인 장동혁·한동훈·이준석이 만나 당과 정파를 초월해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민주주의 붕괴를 막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들 간에 심각한 적대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판을 크게 보는 정치인들은 국민이 원하면 ‘국공(國共)합작’이라도 한다. 사법 파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미래의 우리 모두를 향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힘은 국민에게 있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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