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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 제도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엔 손가락 사이로 모래 새어나가듯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빠져나가 국민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폭정(ON TYRANNY)》이란 책에서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그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했다.  

1932년 11월6일 선거로 제1당이 된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 그는 1933년 2월27일 일어난 ‘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수권법(의회권력을 내각에 위임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3주 전쯤인 1933년 2월2일자 한 유대인 신문은 다음과 같이 권력의 선의를 믿는 순진한 사설을 실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입법 결합한 거대 권력이 사법까지 통제하면…

“오랫동안 갈망했던 권력을 마침내 차지한 히틀러와 그의 친구들이 (그동안 나치 신문들이 주장했던) 독일 유대인들에게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박탈하거나, 유대인들을 군중의 질투와 살인 충동에 내맡기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유럽의 강국답게 처신하려는 나라는 이전에 취했던 대립적 태도를 지양하려는 경향을 띤다(《폭정》 29~30쪽).” 

실제는 달랐다. 그 후 12년간 선거 없는 전체주의 공포가 그들을 덮쳤다. 히틀러 집권 1년도 안 돼 독일은 민주주의의 거의 모든 주요 제도가 무너진 일당 독재 국가로 변했다.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존 법원과 별도로 나치당 이념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는 ‘인민법원’이 등장했다. 신성한 나치당의 이념 즉, 반대파나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된 집단을 처벌하기 위한 법원이었다. 시민들은 선전·선동과 함께 진행되는 민주주의의 제도 변경을 선의로 수용했다.  

시대와 배경과 의도는 다르다 해도 이재명 정권이 추진하는 몇몇 제도 변경은 한국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다. 무엇보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사법 개혁 방식을 ‘다수의 폭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윤석열 비상계엄’은 그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히틀러 시대의 ‘의사당 방화 사건’처럼 반대 정파를 잔인하게 제압하거나 섬뜩한 응징 여론을 조성하는 소재로 과잉 활용되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이재명·정청래, 제 발등 찍는 일 없기를

상황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걸까, 무슨 조급함에 쫓기는 걸까. 바야흐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결합된 거대 권력이 사법부마저 자기 통제 안에 두기 위한 입법 조치에 들어갔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이끌 수장 자격이 없다. 거취를 결단하라. …마지막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길(10월22일, 당 최고위원회)”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민주주의가 폭행당하는 장면”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정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들에서 이처럼 집권여당이 사법부 수장을 우습게 여기고 협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왜 무리수를 두는 걸까. 첫째, 대법관의 재구성(14명→26명 증원, 22명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을 통해 이 대통령에 대한 ‘유죄 선고’ 가능성을 차단하고 ②혹시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할 경우 헌법재판소가 다시 뒤집을 수 있는 ‘사실상 4심 재판’ 제도를 신설하는 데 조희대가 방해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구하기’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의 심장을 훼손하면서까지, 삼권분립의 자리에 삼권일체를 이식하면서까지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언론과 표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의 끝은 어디일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 대통령이나 정청래 대표가 제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한국인의 민주주의 유전자가 끈질기기 때문에.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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