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등 국제범죄에 무방비 노출…2017년 폐지된 국정원의 국내 정보 기능 부활 시급
지난해엔 경찰청 외사국도 없애…검찰의 조직범죄 수사권 강화하고 정부 총괄 조직 둬야
2025년 상반기 관세청에 적발된 마약류는 2680kg이다. 전년 동기 대비 800% 폭증한 규모이고 필로폰 1회 투약량(0.03g) 기준 8933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지난 4월 강릉 옥계항에서 1690kg, 5월 부산항에서 600kg의 코카인이 각각 적발됐는데 이는 2023년 상반기 대비 7641% 증가한 충격적 규모다.
금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이상휘 의원이 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는 4조원을 넘어섰다. 2006~21년까지 15년간 누적 피해(통계청 기준) 3조8681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금년 7월까지 보이스피싱 피해는 1만4707건, 피해액은 7766억원인데 연말까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 전화 발신국은 중국이 94.2%로 압도적이다. 이어 베트남 4.1%, 태국 0.58% 순이다. 불법도박도 심각하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에 의하면 불법도박 규모는 103조원(2022년 기준)이다. 2024년 경찰청 불법도박 특별단속에서 9971명이 적발됐는데 적발된 인원의 47.3%가 19세 미만 청소년으로 나타났다.
최근 충격을 준 캄보디아 한국인 감금 살해 사건과 마약밀수, 보이스피싱, 불법도박의 공통점은 초국가적 범죄, 조직범죄, 금융범죄가 연계된 중대범죄라는 점이다. 중국 삼합회 등 국제 범죄조직과의 연계하에 국내 조직범죄 집단이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고,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우리나라가 무방비 상태로 농락당하고 있음이 이번 캄보디아 사태로 드러났다. 경찰이 송환한 64명 중 5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들은 기본적으로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 리딩방 사기 등 현지 조직범죄에 가담한 공범들이다.
‘캄보디아 범죄’가 울린 경고음
최근 몇 년간 캄보디아로 출국한 한국인이 급증했고 2022년 3209명, 2023년 2662명, 2024년 3248명의 미귀국자 중 상당수가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국제 조직범죄에 참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 개혁, 대장동 비리와 대북 송금 사건 등 정치적 수사를 둘러싼 논란으로 우리 사회가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대한민국은 중국 등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된 조직범죄 천국이 되어버린 현실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는 초국가적 조직범죄라는 범죄의 세계화 현상으로 이어졌다. 조직범죄는 첨단 금융기법과 혁신적으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금융범죄와 일체를 이루면서 국가와 사회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범죄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기존의 수사 조직과 제도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초국가적 조직범죄와 금융범죄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전면적인 형사사법 개혁을 단행했다. 프랑스의 경우 2004년 ①조직범죄와 대형 금융범죄에 대응한 효과적인 형사사법 조직 구축 ②첨단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사법적 수단의 강화 ③형사적 대응효과의 개선을 정책목표로 400개 이상의 형소법 조문을 신설 또는 개정했다. 특히 형소법 제706-80조 이하에 조직범죄에 관한 특별수사 절차와 재판 절차를 규정했는데 미국 연방수사국(FBI) 방식의 특별감시조치, 잠입수사, 통신감청 요건 완화, 범죄수익 동결 및 몰수에 관한 특별규정 신설 등 수사권을 대폭 강화하는 입법 조치가 이루어졌다.
늦었지만 우리도 캄보디아 사태를 계기로 초국가적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효과적인 범죄 예방과 수사, 처벌을 위해 관계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범정부적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민정수석이나 총리가 총괄 조정 맡아야
첫째, 조직범죄와 관련한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민정수석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국내외 범죄 정보 수집(국정원, 경찰청), 범죄 예방 관련 치안정책 및 수사, 국제경찰협력(행안부, 경찰청), 수사와 기소, 범죄수익 환수, 국제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 형사정책(법무부, 검찰), 마약밀수, 자금세탁 및 범죄수익 은닉(관세청, 국세청, 금융감독원) 관련 총괄조직을 두는 등 원활한 협력체제가 필요하다.
특히 2017년에 폐지된 국정원 국내 정보 기능의 부활이 시급하다. 정보는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국정원이 해외에서 수집한 국제 조직범죄 관련 정보가 있어도 국내 범죄조직과의 연관성 등 국내 정보와 함께 분석해야 정보로서의 완결성을 갖기 때문이다.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정원과 경찰청의 범죄정보 기능 강화가 최우선 과제다.
둘째, 조직범죄 및 금융범죄 관련 수사조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전문화·중앙집중화를 추진 전략으로 관련 예산 및 조직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2024년 경찰청 외사국이 폐지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수사 공조 및 인터폴 관련 업무는 국제협력관실에서, 수사는 수사국에서, 외사 정보는 치안정보국에서 각각 담당한다고 하는데 시급히 외사국 중심으로 흩어진 기능들을 재통합하고 조직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범죄수익을 환수하고 자금원을 차단하는 금융수사 역량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신설하는 중대범죄수사청에 금감원, 국세청, 관세청 등의 전문인력을 파견받아 전문성과 기관 간 협력 네크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해체된 검찰을 원상회복해 조직범죄 관련 수사권을 강화하고 형사증거법을 개정하는 형사사법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초국가적 조직범죄 수사는 경찰만으로 한계가 있다. 국제협력도 인터폴 등 경찰은 경찰 단계에서 하는 것이고 국제 형사사법 공조와 범죄인 인도는 법무부와 검찰의 역할이다. 조직범죄 수사를 위한 판사의 연장 허가를 조건으로 장기간의 특별구속기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검찰 해체는 조직범죄 수사의 포기를 의미한다.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인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난센스다.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처럼 국제 조직범죄 사건을 검사의 보완수사 없이 어떻게 기소하고 처벌한다는 것인가. 시대착오적인 낡은 형사증거법도 개정해야 한다. 현행 형사증거법으로는 캄보디아 경찰이 작성한 수사서류를 증거로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초국가적 조직범죄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려주었다. 형사사법의 1차 목적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 국민이 조직범죄의 희생자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