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 ‘3불’ 논쟁
  • 김진경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4.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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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정권 때 탄생한 ‘3불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3불 정책에 대한 옹호와 비판의 목소리들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 양상과 강도가 전과 다르다. 학생, 학부모와 학교는 물론 각 시민단체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3불 정책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은 지난 3월23일 헌법재판소에 2008학년도 대입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냈다. 반면 다른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교육부가 3불 정책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에 이어 사립대학 총장들이 3불 정책의 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3불 정책을 근간으로 한 현재의 공교육 제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각 주자들도 3불 정책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으며, 이는 선거 공약의 중대한 축이 될 전망이다.
수험생들은 혼란스러운 입시 제도에 갈팡질팡하고, 학부모는 여전히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어진다. 교사들도 뚜렷한 입시 지도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교수들은 해가 갈수록 입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며 혀를 찬다. 말 많은 대한민국 입시 정책의 변천사,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있는 3불 정책의 내용을 짚어본다.

입시 제도 변천사, 그리고 변함없는 문제들:1945년 정권 수립 후 대학 입시 제도는 무려 14번이나 바뀌었다(아래 표 참조). 본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을 기본으로 내신(학교생활기록부) 반영 여부가 입시의 중심이었다.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 과열, 입시 위주의 교육, 이중 부담, 적성을 무시한 지원 등이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제도가 15차례 바뀐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핵심이다. 공교육을 강화한다며 교육부가 3불 정책을 고수해온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연간 사교육비의 규모는 지난해 20조원(추정치)에 이르렀다. 이는 2003년 13조원에서 무려 53% 증가한 액수다. 수능, 내신, 논술과 면접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대비하기 위해 수험생은 ‘3중 과외’를 받는다.
그렇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수시 모집이 본격화된 2002년 이후, 대학에서는 신입생의 실력이 대학 수업을 받기에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미적분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공대 신입생이 대학 입학 후 미적분을 배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지만 효율은 떨어지는 입시 제도 탓이다. 모든 것에 대비하려다가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피곤한 바보’가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사상 초유의 취업난이 겹쳐 학생들은 취업에 좀더 유리한 학과로만 몰린다. 적성은 안중에도 없다. 그로 인한 ‘인문학의 위기’와 ‘이공계 기피 현상’은 콘텐츠와 IT가 주된 경쟁력이 되는 세계 시장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와중에 정부가 입시 제도의 핵심 정책으로 고수하고 있는 ‘3불 정책’이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3불 정책이란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으로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있다. ‘논술고사 외에 필답고사를 실시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본고사’가 위반되고, ‘공정한 경쟁에 의해 공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규정에 ‘기여입학제’가 위반된다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금지할 근거가 되는 조항이 마땅히 없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 규모 역시 세계 10위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고 대학이 세계 대학 순위에서 5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은 ‘우월성’보다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현행 대입 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대학이 경쟁력을 갖는 데에는 그 나라의 입시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3불 정책과 선진국들의 입시 제도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본다.

■미국:미국 대학은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수험생은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성적, 수학능력시험(SSAT),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거기에다 봉사 활동, 리더십 경력, 예체능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대학별 고유의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주목할 점은, 고교 내신을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차원에서 고등학교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블루리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학교 평가 제도는 올해로 22년째를 맞는다. 유치원에서 12학년까지의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평가 대상이다. 학문적으로 ‘우수한 발전’을 하거나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된 학교를 주 정부의 추천을 통해 선정한다.
기여 입학은 허용된다. 그러나 기부금을 내고 바로 입학하는 방식은 아니다. 지원자가 자기소개서에 선대의 기여를 밝히고, 다른 평가 항목에서 기본 이상이 될 때 우선적으로 뽑는 방식이다. 아버지의 기부로 아들이 입학하기는 어렵고, 기부자의 손자 때부터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중국 대학은 본고사도 보지 않고 고교 내신도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전국통일고사’인 가오카오(高考)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고등학교의 등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를 배정한다. 그러나 지역별 영재학교인 ‘중점학교’가 있어 학부모들 사이에는 자녀를 더 우수한 학교에 진학시키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공식적인 기여입학 제도는 없다. 우수한 중·고교에 들어가면 대학 진학이 유리해지기 때문에 중·고교 입시에서 학부모가 학교에 발전기금을 내고 자녀를 입학시키는 일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일본의 경우 문부과학부가 입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참조 사항일 뿐 사실상 각 대학이 본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사립대학은 완전히 자율로 선발하고, 국립대학도 학부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허용된다. 입시에서 고교 내신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고교등급제도 실시하지 않는다. 기여입학은 허용되지 않는다.
■프랑스:프랑스의 입시 제도는 대학 입학이 아니라 고교 졸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희망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바칼로레아는 철저히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과정을 범위로 하며, 교육청별로 고교 교사가 논술형·서술형으로 출제하고 채점한다.
단, 프랑스 최고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알려진 국립 그랑제콜의 경우는 다르다. 이곳에 입학하려면 고교 졸업 후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뒤 고교나 대학에 개설된 그랑제콜 준비반에서 2년 이상 특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본고사를 따로 치러야 하며, 합격하지 못하면 일반 대학 3학년에 편입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독일에서 대학에 입학하려면 대입 자격시험인 아비투어를 치러야 한다. 시험 문제는 주관식이며, 자료나 텍스트를 분석하는 유형이 많다. 아비투어 성적과 김나지움 12~13학년의 성적을 종합해 평가하는 것을 전체 평가라고 하는데, 그 결과가 대입 자격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비투어 실시에 대한 권한은 주정부에 속해 있으며, 주정부에서는 일선 학교의 교장, 교사에게 권한의 대부분을 위임한다. 교사가 대입 자격시험의 출제에서 채점까지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국:영국에서는 고교 3학년 6월에 우리의 수능시험과 같은 대입 시험인 ‘에이 레벨(A level)’을 치른다. 단, 수능처럼 모든 과목을 합산한 점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수학·철학·물리 등 10여 과목 중 2~4개만 합격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일류 대학은 보통 4과목에서 합격해야 한다. 2학년도 에이 레벨을 미리 치를 수 있고 합격 과목은 2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고3 때는 불합격한 과목만 다시 공부하면 된다.
영국에서는 대입과 관련된 행정 업무를 각 대학이 아닌 ‘대학입학사정원(UCAS)’이라는 국가 기관에서 처리한다.
■기타 유럽:기여입학제는 금지, 대학이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확한 진단과 대안 마련 따라야
3불 정책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불’이라는 용어에 얽매어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으면 안 될 것이다. ‘3불’에 속하는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는 각각 다른 쟁점을 지니고 있다. 교사 단체, 학부모 단체, 정치권 그리고 교육부는 각 정책에 대한 입장과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사교육비,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학생들의 실력, 우수 인재들의 국외 대학 진학 현상, 대학의 재정 상태 등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모처럼 불붙은 논의가 제대로 타오르지 못하고 꺼져버린다면, 피해자는 학생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잃은 대한민국 전체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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