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맞는 책 골라 ‘기록장’ 쓰게 하라
  • 윤혜연 | 교보 독서코칭 전문강사 ()
  • 승인 2010.02.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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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 제도에 대비한 ‘내 아이 독서 이력 챙기기’

▲ 교보문고 독서코칭센터가 마련한 독서법 강좌에서 주부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교보문고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해마다 달라지는 입시 제도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당사자는 물론이고 부모들도 난감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입학사정관 제도이다. 얼핏 듣기로는 평범한 학생이라도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열정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언제나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이지만 기대마저 없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랴 하면서 입학사정관 제도에 대해 나름으로 또 연구 아닌 연구를 하게 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최근에 발표된 고교 입학사정관 제도의 정확한 명칭은 ‘자기 주도 학습 전형’이다. 교과부는 외국어고나 국제고와 같은 특수 목적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별도의 시험 없이 학교생활기록부와 심층 면접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학생들은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에 지원서와 함께 학교생활기록부와 학습 계획서 그리고 교장 또는 교사 추천서를 제출하게 되고, 입학사정관들은 이 서류들을 검토해 일정 배수의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그 후 심층 면접을 통해 학교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걸맞고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뽑는다. 이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내신 이외에 출결 그리고 비교과 활동, 즉 특별 활동이나 봉사 활동 그리고 독서 이력철 등이 기록되게 된다. 또, 학습 계획서에는 지원 동기, 자기 주도 학습 경험 및 학습·진로 계획, 봉사 및 체험 활동, 독서 경험 등을 각각 6백자 이내로 적어야 한다. 이 중 독서 경험란에는 자신이 읽은 책 중 2권을 선정해 내용과 감상을 적게 되어 있다.

외고·국제고는 2011학년도부터 입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자립형 사립고·자율형 사립고·농어촌자율학교는 2015년까지 확대 실시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그렇다치더라도 대학 입학사정관 역시 특별 활동과 독서 이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니, 부모들이 자녀의 독서 이력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먼저 알아야겠다.

▒자신의 ‘학습 계획안’에 따라 책을 골라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독서 이력이라는 낯선 단어부터 정복해보자. 독서 이력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동안 학생이 읽어온 책의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지원자가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하듯 학생은 자신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력서를 작성할 때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기준에 맞춰 우리의 이력을 재단하듯, 독서 이력 역시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되고 내가 어떤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잠재 능력과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단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은 어려서 읽은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이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임진왜란과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독서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기까지 어떤 나라가 한반도에서 나고 스러졌는지에 대한 통사적인 관심이 생길 것이고, 자연스레 통사를 다룬 책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역사서 이외에도 다양한 독서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런 책들도 그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맥락으로 묶어질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역사적인 코드를 찾아내면 된다. 그 외의 교양서들 역시 오늘날 학생이 일정한 꿈을 갖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면 그에게는 의미가 있는 독서 활동으로 인정될 것이다.

▒진로 고민하고 교과 관련 도서로 시작

결국, 어떤 책을 읽었는가도 중요하지만 읽은 책들 안에서 어떤 맥락을 찾아내 그것을 일정한 주제로 묶으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부모가 할 일은 일단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만 알면 그와 관련된 책 목록을 만들어 지금부터 차근차근 읽게 하면 된다. 책 목록을 만들 때 아이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입학사정관들과 심층 면접을 할 때 독서 이력은 가장 철저하게 검증을 받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읽은 책들에 대한 심층적 이해도 중요하고, 왜 이와 같은 책들을 선택해 읽었는지 역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심층 면접에서 아이가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말 그대로 자기 주도적인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녀가 어려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경우라면 좋아하는 교과목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예를 들어,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 중 아직 읽기에 대해 부담이 있는 학생이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과학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재미있는 읽기에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그 후 유전공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번에는 <과학동아> 편집부의 <생명코드 AGCT>라든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동일 소재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에 도전해보아도 좋겠다. 글을 읽는 순서나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다. 개인의 성향이나 특성에 맞게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독서 기록장으로 독서 포트폴리오 준비

읽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나중에 사용할 수 있으려면 ‘나만의 기록장’은 필수이다. 기록을 남길 때에는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었다면 인상 깊었던 장면과 그 이유를, 혹은 전체적인 줄거리와 그에 따른 감상을 기록한다. 지식 위주의 책 같은 경우에는 정보와 관련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과 알고 싶은 것 그리고 책을 읽고 알게 된 것 등을 구분해 기록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외에도 도표나 마인드 맵과 같은 방법도 책의 특성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학생의 전체 독서 이력과 일맥상통하는 맥락을 찾는 일이다.

한 권의 책 안에서도 우리는 여러 개의 코드를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멋진 신세계>의 경우, 그 안에는 인간 복제나 유전공학과 같은 과학적 코드도 들어 있지만,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측면에서 행동 심리학적인 맥락도 찾아낼 수 있다. 또, 주인공인 야만인 존 새비지를 통해 문학과 같은 인간의 정신 활동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도 다뤄볼 수 있다. 이때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안에서 어떤 코드를 중심으로 다가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기록장을 만들면 좋다.

이 기록장은, 수험생에게 어떤 면접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해줄 보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 자신이 보관을 하든, 엄마가 보관을 하든 중요하게 간수해야 한다. 이 기록장을 바탕으로 독서 경험을 작성하게 될 것이고, 또 훌륭한 독서 포트폴리오도 작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제도는 변한다. 변화가 있어야 발전도 있는 것이니 변화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내가 그래왔듯 우리 아이도 글을 통해 배움을 이어갈 것이다. 글을 능숙하게 읽고 자기에게 알맞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원칙적인 그리고 흔들리지 않을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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