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
  • 설호정 언론인 ()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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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는 아이로 하여금 거짓말 놀음을 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대학 서울대가 수시 입학 원서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서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2학기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끝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대학 입학까지의 다른 만 가지 어려움은 다 두고 수시 모집 지원서 한장을 쓰는 일이 아이와 부모에게 두루 얼마나 심란스런 일인지, 게다가 인간적인 번뇌까지를 동반하는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정치하고 준엄하기로 당할 데가 없는 대한민국 대표 대학 서울대를 예거하여 그 정황을 살펴보겠다.


입학지원서·추천서·자기소개서·학교생활기록부와 기타 관련 증빙 서류. 서울대가 요구하는 서류를 대별하면 이와 같다. 여기에다 학업계획서라는 것까지 청하는 학교가 있으니 서울대는 관대하다 해야 할까? 그러나 원서에서 하나를 탕감해 주었으되 서울대는 딴 대학에 없는 심층 면접에 구술 시험이 구비되어 있다.


자기 소개서 1장 대필에 "100만원"


수험생 부모 된 사람들의 귀에는 이미 다 들렸겠으나, 자기소개서 한장에 100이라는 소리 들어 보았나? 입학원서에 붙여 내는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남이 써주고 100만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소문은 넓고도 깊이 퍼져 있다.


자기 소개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선거에 나온 정치꾼같이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제 자랑을 하는 것이다. 결국은 지·덕·체를 겸비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더하여 개성적인 매력까지 있다고 뻥튀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기소개서의 태생적 한계이다. 그러나 서울대는 역시나 주도 면밀한 집단이어서 이번 수시 모집에서 원서 양식 어딘가에 단점 난을 마련해 두었다고 들었다. 정말 웃긴다.


자기소개서가 본인인 수험생이 절반 쓰고 부모 형제가 총동원되어 절반 쓰는 형국으로 완성되었다면 꽤 모범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통은 부모가 깊이 개입하여 쓰인다고 보면 될 듯하다. 자기 성찰이 남다르고 문장력이 빼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수능 공부를 팽개치고 이런 작문에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학교는, 교사는 아이를 깊숙이 알지도 못하거니와 안다 해도 쓸 시간이 없어서, 아니 부모보다 더 잘 쓸 수가 없어서 이 일에서는 결백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예, 설사 100만원의 거래가 없다 해도 글재주가 있는 주변 사람에게 의뢰하여 철저히 대필되는 자기소개서도 있는 듯하다. 어쨌든, 아이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을 조소하게 하는 거짓말 놀음을 시키는 것이 자기소개서이다.


추천서인들 다를 것이 뭔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장 된 분으로서 자기 학교의 개별 학생에 대해 정확하고 심각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정말 보고 싶다. 교장의 추천서도, 질 좋은 것을 원하는 부모에 의해 제조되고 학교장의 형식적인 승인을 득하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여기에도 거짓이 개입하도록 구조화해 있는 것이다.


서울대는 홈페이지에서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내용 조작 및 대필 작성에 대응할 방안에 대해, 또 신빙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물은 질문에 이런 답을 해 놓았다. '본교가 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전면 도입한 것은 모든 교육 주체간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진짜 웃긴다.


그리고 봉사 활동 실적 증빙 서류라는 것이 또 있다. 서울대는 단호히 말하기를, 기본적으로 봉사 활동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전형에서 탈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서울대는 이제 봉사 정신이 없는 학생은 받지 않을 작정임을 천명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중고등학생 봉사 활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터럭만큼이라도 알았다면 이런 가소로운 증빙 서류 따위를 내라는 말은 차마 못할 것이다. 나는 원서를 쓰는 한편으로 봉사 점수 얻으러 다니는 어머니를 여럿 보았다.


내가 아는 어느 부인은 자기소개서의 분량이 한 자라도 넘치면 감점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여 그것을 쓰는 동안 열두 번도 더 글자 수를 세었다고 했다. 입학원서의 여러 규정들이 권위 있고 승복할 만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트집을 잡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해서이다. 대학 입학원서 중에서도 서울대 같은 데 것 한번만 써보면 이 나라가 무엇이라는 것 절반쯤은 공부한 셈이 된다. 뺀한 거짓말 좀 그만하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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