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는 ‘오리지널 반칙왕’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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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대회 ‘상습범’…마라도나 ‘신의 손’, 오심 중 가장 유명
지난 2월21일 텔레비전으로 2002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경기 결승전을 지켜 보던 한국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임스 휴이시 주심 등 심판 5명이 김동성 선수(고려대)를 실격시키고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에게 금메달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심판들이 밝힌 김동성의 실격 이유는 간단했다. 김동성이 안톤 오노 선수의 진로를 방해(크로스 트래킹)했다는 것이었다. 즉시 전명규 감독 등 한국 선수단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미국 선수단을 제외한 세계의 거의 모든 쇼트트랙 관계자들은 ‘김동성은 오노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았고,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심판들이 속았다’고 보았다. 심지어 이탈리아의 파비오 카르타 선수는 “나에게 총이 있다면 오노를 쏘아 죽이고 싶다”라는 극언까지 내뱉었다.


오노는 지난해 12월1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01∼2002 시즌 월드컵 쇼트트랙 3차전(김동성 선수 우승)에서도 두 번째로 달리던 한국의 이승재 선수(20·서울대)를 밀어 넘어뜨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12월22일,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미국 선발전에서는 레스티 스미스와 함께 샤니 데이비스 선수를 선발시키기 위해 담합 레이스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아온 ‘야비한 선수’였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도 김동성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선수가 있었다. 남자 육상 장애물 3000m 경기에서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영국의 브라셔 선수였다. 그가 헝가리 선수보다 2.4초나 빨리 들어 왔는데, 심판은 그가 장애물을 넘을 때 노르웨이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며 실격을 선언했다. 브라셔는 한참 분을 삭이다가 경기가 끝난 뒤 본부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김동성과는 달리 결국 금메달을 받아냈다. 재심 결과 브라셔의 이의 제기가 옳았다고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육상 선수, 재심 후 올림픽 금메달 받기도


오심이 육상이나 빙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스포츠사는 ‘오심의 역사’이기도 하다. 특히 기록 경기보다 심판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경기에 더 많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이 열린 아즈테카 경기장에는 11만4천여 명의 관중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전반전 경기는 팽팽한 접전 끝에 0대 0으로 끝났다. 그리고 후반전. 8분 만에 아르헨티나의 발다노 선수가 잉글랜드의 왼쪽 진영을 파고들다 문전으로 센터링을 올렸다. 문전에는 키가 181cm인 잉글랜드 골키퍼 피터 실턴과,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166cm의 마라도나가 있었다. 두 선수는 동시에 뛰어올랐다. 실턴과 마라도나가 공중에서 얽혔다가 내려오는 순간 공은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실턴과 마라도나의 키 차이가 무려 15cm나 되고, 손을 쓸 수 있는 실턴의 팔 길이까지 감안하면 50cm가 훨씬 넘는데도 마라도나가 머리로 슛을 날린 것이다. 공은 골문으로 들어갔고 튀니지 주심 알리 베나세우르는 골로 인정했다. 실턴은 “마라도나가 왼손으로 공을 쳐서 골을 넣었다”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의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느린 화면으로 확인한 결과 분명히 마라도나의 반칙이었다. 알리 베나세우르의 명백한 오심이었다. 나중에 마라도나는 “신의 손이 볼을 때렸고, 골인이 되었다. 볼을 가격한 왼손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라고 둘러댔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 있은 지 13년 만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산 대우(현 아이콘스)와 수원 삼성의 1999년 프로 축구 챔피언 결정전 2차전. 1차전을 2 대 1로 이긴 수원 삼성은 2차전만 이기면 프로 축구 5개 대회 연속 우승, 정규 리그 2연패, 1999 시즌 4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어 있었다.


1 대 1 무승부로 끝난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이제 어느 팀이든 한 골만 넣으면 골든골로 승리할 수 있었다. 마침내 결승골이 터졌다. 연장 전반 8분께 부산 대우의 왼쪽 진영을 파고들던 수원 삼성의 장지현 선수가 센터링을 올리자, 같은 팀의 샤샤 선수가 골문을 향해 뛰어들다 얼떨결에 왼손을 쭉 뻗었는데 공이 거기에 닿아 그만 골인이 된 것이다. 누구나 샤샤의 핸들링 반칙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순 바오제 주심이 핸들링을 보지 못하고 불쑥 골을 선언해버렸다. 1999년 프로 축구를 결산하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하라고 데려온 외국 심판이 결정적인 오심을 하자, 관중석과 부산 대우의 벤치는 발칵 뒤집혔다. 나중에 부산 대우의 장외룡 감독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감독관은 샤샤의 핸들링은 인정하지만, 경기가 종료되어서 골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오심이 한국 선수를 살려낸 경우도 있었다. 지난 1997년 4월4일. 일본 프로 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주니치 드래건스의 센트럴리그 개막전. 지난해 1년 동안 일본 프로 야구에 적응하느라 죽을 쑨 주니치 드래건스의 선동렬 선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경기는 3 대 2로 주니치가 1점을 리드한 채, 9회 초 투 아웃 주자 3루 상황까지 와 있었다.


세이브 전문 투수인 선동렬은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전력 투구했다. 제1구는 148km짜리 직구. 스트라이크였다. 4만5천여 홈 관중이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함성은 곧바로 비명으로 바뀌었다. 선동렬이 폭투를 한 것이었다. 포수 뒤로 공이 빠지자 선동렬은 재빠르게 홈베이스로 달려들었다. 요코하마의 3루 주자 시에키 선수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홈으로 달려들었다. 주니치 포수 나카무라가 재빨리 공을 주워 선동렬에게 던졌고, 선동렬은 홈인하는 시에키를 덮쳤다. 주심은 곧바로 아웃을 선언했다. 선동렬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했다. 그러나 경기 뒤 느린 화면으로 분석한 결과 완벽한 세이프였다. 주심이 오심을 한 것이었다. 만약 그때 세이프가 선언되었다면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행보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라고 선동렬은 회고했다.


심판도 인간인 이상 오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 종목마다 오심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는 5월 국제빙상연맹, 즉 ISU 집행위원회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때 유난히 판정 시비가 잦았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오심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제도도 ‘사심이 있는 오심’은 막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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