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수업은 청소년 집단 학대"
  • 이문재 편집위원 ()
  • 승인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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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느낌표> PD
'나라를 들썩이는 PD’. 문화방송의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를 연출하는 김영희 PD(42·예능국 차장) 사무실에는 ‘밝게, 재미있게, 그리고 진지하게!’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느낌표>는 고등학교 0교시 수업을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는 한편, 죽은 책을 부활시키는 유례 없는 독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김영희 PD는 1986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이래 줄곧 오락 프로그램을 맡아왔다. 그가 연출했던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역시 그때마다 ‘나라를 들썩였다’. 마인드 자체가 오락적이라는 그는 진지한 문제를 소프트하게, 커다란 문제를 아주 사소한 것에서 풀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프로그램이 형성한 여론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느낌표>가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담당 PD의 소감을 듣고 싶다.
오락 프로가 사회적인 문제를 부각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오래 전부터 오락 프로가 갖고 있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정공법으로 공략하지 않는다. ‘신동엽의 하자하자’를 예로 들면, 잘못된 교육 제도와 관행 때문에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걸 다루는 프로다. 하지만 정공법을 쓰면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아침밥을 내세웠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근간을 들썩거리게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처음 반응은 어땠는가?
섭외가 힘들 줄 알았다. 아침밥도 못 먹고 와서 0교시 수업을 하는 게 학교에도 일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취재 협조를 안 할 줄 알았는데, 무조건 오케이였다. 연예인이 와서 자기네 애들한테 밥을 해주고, 쌀 소비도 촉진하고,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었다. 교육 관계자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어서 우리 제작진이 놀랐다.

그 뒤로도 계속 그런 반응이었나?
계속 그랬다. 그러다가 영국·프랑스 등 외국과 비교하면서 0교시 수업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지금은 섭외가 전혀 안된다(웃음).

0교시 수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0교시 수업은 명백한 청소년 학대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이 어처구니없는 집단적 학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족 풍속과 다를 바 없다. 0교시 수업은 우리 사회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집단 중독이다.

교육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 0교시 수업은 수십 가지 문제가 연결돼 있는 고리이다. 우리는 0교시 폐지를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예전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었는가?
사범대를 나왔기 때문에 교육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써 왔다. 어떤 사람은 내가 사대를 나와서 시청자를 가르치려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사실 시청자를 계도하려 드는 것은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1년 6개월간 영국에 가 있었다는데.
영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었다. 방송과 무관한 공부를 했다. 그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의 자선 제도를 공부했다. 그리고 영국 사람들이 항상 책을 읽고, 동네 도서관이 활성화해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잡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가 변한다는 생각을 했다.

‘신동엽의 하자하자’는 호응이 많은데, ‘책을 읽읍시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억울하지는 않다. 비판은 당연하다. 예상한 것이다. 출판계 일부의 비판이어서 큰 문제가 아니다. 서점은 온통 박수다. 우리가 선정한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덩달아 나간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항변할 수 있는 논리는, 우리가 타깃으로 잡고 있는 시청자는 그동안 책을 읽지 않던 시청자들이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신문 기사들이 비판적이었는데.
처음에는 황당했다. 그런데 신문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우리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대부분 겉모습을 비판했다. 자질이 없는 개그맨이 진행하는 것을 문제 삼았는데 그것은 직업인에 대한 인신 모독이다. 기자들이 책을 너무 신성시하는데, 책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책은 대중적이어야 한다. 인쇄 매체가 갖고 있던 문화 권력이 방송으로 이동되니까 견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 의해 촉발된 여론을 어떻게 보는가?
진정한 여론은 아니다. 우리 시청자들이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에 의해 0교시 수업이 폐지된다면, 언제가 슬그머니 다시 부활할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해서 자율적으로, 자연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이번 주에 학부모 토론회에서 5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했는데 90.9%가 폐지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같은 여론을 믿지 않는다. 0교시 수업 문제는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예컨대 등교 버스, 학생들의 집 등에 초점을 맞추며 앞으로 몇 달 더 방송할 것이다.

‘책을 읽읍시다’는?
올 12월에 그간 선정되었던 열두 권을 총결산한 뒤,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다. 열두 권을 다 읽은 100명을 인터뷰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할 예정이다.

대중 사회의 성감대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대단하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아주 사소한 것을 가장 큰 것으로 부풀린다. 또한 가장 진지한 문제를 가장 소프트하게 접근한다. 그래서 너구리 한 마리를 통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게 했고, 개그맨을 앞세워 독서 운동을 시작했다.

성취감이 높아질수록 스스로 부담도 많이 느낄 텐데.
성취감이 클수록 책임감도 커진다. 다음번에는 더 대단한 걸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생긴다. 그래서 <느낌표>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뤘던 것 같은데 요즘 와서 반성을 많이 한다. ‘책을 읽읍시다’ 때문에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웃음) 나를 신랄하게 돌아보고 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인간의 내면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아주 작은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


김영희 PD 사무실 벽에는 간단한 개념도가 붙어 있다. ‘환경, 교육, 인간, 자선’이라는 네 주제를 ‘새로움, 균형, 내용, 단순함, 긴장’이라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구현하자는 것이다. ‘밝게, 재미 있게, 그리고 진지하게’는 저 주제와 방법론을 실현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고, 진지했다. “MBC PD 가운데 나처럼 잘 웃는 사람 없다”라는 그는 곳곳에 느낌표를 찍었다. 그의 몸에도 최근 느낌표가 하나 생겼다. 다이어트!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던 그가 최근 채식을 하며 한 달 사이에 체중을 11kg이나 뺐다. 머리도 바짝 치켜올렸다. 그래서 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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