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나라’에서 영어 유학 알차게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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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필리핀 등 경비 덜 들고 이색문화 체험 ‘덤’
유학·어학 연수 행렬이 해마다 길어지고 있다. 그동안 그 행렬을 실은 비행기의 최종 기착지는 대부분 미국·캐나다·호주였다. 그런데 요즘 변화가 보인다. 일부 학생이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지는 인도·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똑같은 영어를 싸게 배울 수 있는 데다 이색 문화까지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델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홍아름씨(20)는 “영어를 배우려고 굳이 멀고 비싼 미국이나 호주에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발음에 약간 차이가 있겠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6개월 간 영국식 고급 영어로 정치학을 배운 덕에, 영어 실력이 상당히 늘었다고 자랑한다.



멀고 비싼 곳은 기피해



대구에 사는 윤상윤군(12)도 인도 덕을 톡톡히 보았다. 지난 겨울방학 때 상윤이는, 두 달간 델리의 친지 집에 머무르면서 어학 연수를 받았다. 어머니 김영채씨는 그 뒤로 상윤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가 늘었고, 사회를 보는 안목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상윤이는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에 4∼5개 나랏말에 도전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만한 성과를 얻었지만, 상윤이가 두 달간 쓴 비용은 항공료를 포함해 불과 2백만원 정도이다. 요즘 상윤이는 다시 인도에 가기 위해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인도 유학원 인도야(www.indoya.co.kr)의 교육연구팀장 김태균씨는 정보통신부가 정보 기술(IT) 분야 유학을 지원한 뒤로 인도 유학생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시장·관공서·학교 등지에서 모두 영어를 사용한다. 일부러 영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어학원이나, 인도 정부가 운영하는 IEFL에 등록하면 좋다. 그러나 사설 학원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쫓아가기가 벅찰 수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라면 기숙학교인 우드스탁이 어울린다. 이곳은 인도의 상류 계층 아이들이 다니는 특별한 학교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과정은 1∼12학년이고, 학생 수는 모두 4백∼5백 명이다. 김씨는 “우드스탁을 나온 아이는 인도에서도 달리 본다. 우선 무척 진지하고, 감성이 풍부해진다”라고 소개했다. 학교가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있어 학생들이 구미식 향락 문화와 범죄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1년에 2만 달러인 수업료가 좀 부담스럽다.





주부 이 아무개씨(38·수원)는 얼마 전 6박7일 일정으로 필리핀을 다녀왔다. 관광 목적이 아니었다. 석달 전 마닐라로 유학 보낸 두 자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한국의 사교육에 염증을 느껴오다가 필리핀에 있는 친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곳에 아이들을 보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교육열이 좀 지나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렇게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이미 필리핀의 학원들이 한국 학생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인도보다 한결 더 어학 연수를 받기가 쉽다. 유학·어학 연수 기관인 (주)에쥬릭스(www.edurex.com)의 김창수 실장은 “모든 학교에 입학하기가 수월하고, 어학원 같은 경우에는 1 대 1 수업까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필리핀 어학원은 강사당 학생 수가 1∼5명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완전히 습득할 때까지 배울 수 있는 셈이다.



숙식비나 교육비도 싸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6개월 수업료가 4백만원 이상 들지만, 필리핀에서는 수업료와 숙식비를 포함해도 3백60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여권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서 1년 이상 체류할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물론 배운 영어를 언제든지 거리에 나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필리핀에서 1년간 공부하고 온 주 아무개씨(21)는 “필리핀인은 백인보다 한결 말 붙이기가 쉽다. 그래서 잘못하더라도 부담이 없다”라고 말했다.



방학 때마다 초·중·고생의 어학 연수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경비는 한 달에 약 2백만원. 비교적 시설이 깨끗한 휴양 시설(리조트)에서 숙식하며 공부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단점도 없지 않다. 한국 학생들이 많아 한국어를 쓸 기회가 많고, 4백년 넘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발음이 되다는 것이다. 가령 맥도널드를 막도널드로 발음하는 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꼭 백인에게 영어를 배워야 하겠다는 사람에게 전문가들은 싱가포르를 추천한다. 싱가포르는 90%가 중국인이어서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 또 영어 강의를 모두 백인이 맡고 있어 발음도 정확한 편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전문대(15개월 과정)나 호주·영국 대학의 분교에 입학해 공부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학위를 받으면 미국·캐나다 등 세계 모든 대학의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다. 물론 국내 대학에도 편입이 가능하다.





말레이시아는 고급영어 배울 수 있는 이점



싱가포르 유학의 또 다른 장점은 한국 학생이 드물어(15∼20명 학급당 1~2명) 영어나 중국어를 매일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2년 반만 체류하면 현지 취업이 가능하다. 단점이라면 수업료와 체재비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좀 비싸다는 것이다. 수업료는 15개월에 8백만원 정도가 들고, 숙박비는 2인1실이 한 달에 25만원 정도이다. 거기에다 식비 25만원, 용돈 20만원 정도를 포함하면 금액이 더 올라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제 도시 싱가포르의 이점을 생각하면 캐나다나 미국·호주에 비해서는 훨씬 싸다고 말한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강준형씨(20)는 또 다른 나라를 택했다. 강씨는 얼마 안 있어 어학 연수차 말레이시아로 갈 예정이다. 그가 그곳을 택한 동기는 단순하다. 인종 차별이 없고, 범죄 위험이 적으며, 경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달 경비(학비·생활비·기숙사비)가 55만원밖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사로잡았다. “나중에 동남아에서 비즈니스를 할 계획인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강씨는 말했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말레이시아에는 영국식 영어가 일상화해 있다. 제법 고급스러운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마하티르 총리가 장기 집권해 독재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회 분위기가 한국만큼 활기에 넘쳐 있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국제 학교에 입학해도 좋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 ‘목적’을 빨리 이룰 수 있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중국어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의 몰타 공화국·아일랜드 등에도 한국 학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나라에서 공부하든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 힘들다며,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영어를 익혀두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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