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악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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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서울 동대문 을)은 대통령 부인이 셋째 아들 집에 가지고 간 외교 행낭에 “김치와 쌀만 들어 있었겠느냐”라며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대통령 셋째 아들 홍걸씨를 둘러싼 의혹이 경선 국면을 여야 전면전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있는 이신범 전 의원과 핫 라인을 개설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김대중 정부 비리의 정점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악’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신범 전 의원이 홍걸씨로부터 받기로 했던 나머지 합의금 45만 달러를 받지 않는 대신,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여권 관계자들이 이신범씨에 대해 제기했던 고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전날인 4월18일 오후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의원을 만났다. 홍의원은 “뭐라도 좋으니 물어보라”며 말문을 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신범 전 의원이 확보한 자료와 홍의원이 수집한 자료를 종합해서 대통령 세 아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도 이 전의원이 자주 연락하는가?

요즘도 자료를 보내온다.


최근에 어떤 자료가 들어왔는가?

말하기 어렵다(웃음).


이씨는 왜 홍걸씨 문제에 집착하고 있는가?

오해가 좀 있다. 이 전 의원의 본거지가 로스앤젤레스다. 처가가 다 그 쪽에 있다. 1980년대에 망명 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지금 부인을 만났다. 그곳 교민 사회에서 7~8년 활동했는데, 좋은 의미에서 이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가 귀국해 15대 국회에서 활동했는데, 로스앤젤레스 교민들이 그에게 홍걸씨에 대해 제보를 많이 했다. 그래서 1999년 말부터 호화 주택 문제를 제기하며 대통령 아들이 이래도 되느냐고 한 것이다. 그런데 KBS 로스앤젤레스 지사가 이씨를 ‘허위 폭로 전문가’라고 매도하는 기사를 보도하는 바람에, 그가 발끈해서 홍걸씨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4월19일,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이씨를 고소했던 여권 관계자들이 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이 질문과 답은 4월20일 오전, 전화로 인터뷰했다).

지난해 5월, 이씨가 합의를 했다고 해서 내가 돈으로 해결하면 곤란하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여권에서 다시 이씨를 전격적으로 기소하니까, 뒤통수를 맞았다며 합의를 취소하고 다시 소송을 한 것이다. 1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은 나도 몰랐고, 우리 당도 몰랐다. 지난 2월,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때, 교포 언론인들이 ‘이씨가 돈을 받아서 변호사 비용을 댄 것 같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이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것은 권력형 비리인데 돈을 받았다면 문제다.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소를 취하하라’고 권했다. 이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원래 이번주에 문제를 종결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신범씨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시각이 있다.

그런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위자료를 달라는 것이다. 둘이 합의해서 돈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부인 외교 행낭 문제를 거론했는데, 청와대 쪽에서는 가방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선물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언론에 김홍일씨라고 나왔는데, 김홍걸씨의 집앞에 내린 게 맞다. 팔로스버디스라는 홍걸씨의 집앞에 가방 30개를 내렸다고 내가 말했다. 청와대가 그걸 공식으로 부인했는데, 그렇다면 1회전은 끝났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지난 2월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내가 세 아들 비리 문제, 즉 대통령 가족 게이트가 터질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중에 셋째 아들 홍걸씨의 로스앤젤레스 계좌를 보면, 한 달에 8천7백만원씩 소비한 흔적이 있다. 대통령 아들이 별다른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이런 생활을 해도 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당시 청와대는 한마디로 재탕삼탕하는 거짓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내가 그때 제기한 문제가 지금 최규선 문제로 터지고 있는 것이다.


홍걸씨가 무슨 일을 벌였다는 것인가?

일을 벌였는지 안 벌였는지는 두고 봐야 안다. 벤처 게이트가 있다. 스포츠 토토도 있고. 최규선씨가 스포츠 토토 주식 3만2천 주를 팔아서 9억원을 홍걸씨에게 주었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앞으로 몇 개가 될지 모르는 비리의 출발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아들은 검찰총장보다 힘이 세다.


대통령 아들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대중 정권이 부패 감시 구조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부패 은폐 내지는 공범 구조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정권 초기에, 부패를 총괄하는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옷로비 사건 때문에 하차했고, 신광옥 민정수석도 구속되었다. 최근 김대웅 고검장 파동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검찰 파동만 벌써 몇 번째인가. 자기 지역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바람에 국가 사정 시스템이 해체되고 말았다.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종래 정권들은 부패 은폐 내지 공범 구조로까지는 가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터진 비리와 어떻게 다른가?

현정부 들어서 샅샅이 조사한 결과, 김현철씨의 주된 문제는 대선 자금을 받으면서 증여세를 포탈했다는 것이었다. YS 정권이 그만큼 깨끗했다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터진 권력형 비리 사건이 20개가 넘는다. 아직 ‘거대한 악’은 공권력의 비호를 받아가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거대한 악이라니, 누군가?

지금 실명을 지칭하기 어렵다. 이 정권에 성역처럼 남아 있는 몇몇 거악이 있다. 이 모든 게이트 사건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홍의원은 민주당 정권 4대 비리의 정점에 DJ 부부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DJ 부부가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 결국은 대통령 책임이다.


대통령 세 아들 문제와 이른바 외교 행낭 문제가 연관이 있는가?

관련이 있다.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가?

그 문제는 여기서 그치기로 하자. 내 개인적 처지를 고려해 달라. 사정기관이 권력을 감시했다면 나 같은 국회의원이 나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정기관이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국회의원인 내가 나선 것이다. 헌법상 국회의원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사정기관과 달리 강제적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발언할 수가 없다.


검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년까지 그 자리에서 마니폴리테(깨끗한 손) 운동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검찰은 참으로 부끄럽다. 검사들 기개가 없어졌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해 검사에게 부여된 권한만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깨끗해진다.


얼마 전, 세 아들 비리와 아태재단 비리는 그냥 놔둬도 봇물처럼 터지게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정권 말기가 되면, 자금이 잘 걷히지 않는다. 그래서 무리를 하게 되고, 또 그 내부에서 분배 문제로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터진 최규선씨 문제도 그렇다. 나는 검사 생활을 10여년 하면서 권력 부패가 어떤 방식으로 터지는지를 지켜봐온 사람이다. 1988년 노태우 정권 때 노량진 수산시장 사건을 맡으면서 대통령 친인척을 수사해 보았다. 1993년 슬롯 머신을 수사하면서도 친인척 비리를 지켜 보았다. 이 정부는 부패 은폐 시스템을 운영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한꺼번에 다 터질 것이라고 보았다.


4월10일 한나라당 최고의원 경선에 출마하면서 노풍을 차단할 수 있다고 했는데.

노풍의 실체는 파괴와 해체 이미지가 첫째다. 기존 정치인들에게 식상한 국민들이 대안을 찾다가 노무현 후보를 만난 것이다. 두 번째는 영남 정서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남이 흔들리지 않고는 지지율이 30~40%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노풍은 박지원씨를 통해서 DJ가 총감독한 것이다. 노후보는 호남 아류 정치인이지 영남 본류가 아니다. 그런 노후보의 실체가 밝혀지면 영남이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정계에 노무현 파일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홍의원도 그 중 한 명이라는데.

대답하기 어렵다. 내가 자꾸 타인을 음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염려된다.


‘DJ 저격수’라는 별명이 있지 않은가.

저격수는 딱 한 발로 한 사람씩 보낸다. 무차별 난사하거나 매일 떠든다면 저격수가 아니다. 15대 때, 나는 여당 의원으로서 YS 대선 자금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JP 부패 문제도 내가 국회에서 제기했었다. 말하자면 DJ만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DJ 문제만 부각되어서 ‘DJ 저격수’라고 한다. 권력자의 부패를 말하는 것은 용기다. 내가 현직 대통령을 저격하려면 나에게는 어떤 힘든 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24시간 감시를 받는다. 전화도 다 도청된다. 사생활이 전부 점검된다. 내가 룸살롱 같은 데 안간 지 15년이 넘었다. 저격수를 하려면 그만큼 힘들게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서 하는 줄 아는데, 하등 좋을 것 없다.


나중에 검증받을 게 없어 좋겠다.

나는 걸릴 게 없다.


검찰에 있을 때 노무현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는가?

없다. 1996년 1월 중순, 꼬마 민주당 시절에 노후보가 불쑥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 노후보가 ‘니나 내나 무슨 스타냐, 니나 내나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음 보는 자리인데 조금 이상해 보였다(웃음). 노후보가 변호사 할 때 들은 얘기가 많다.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노후보의 바람이 토네이도로 끝날지 계속 이어질지 잘 모르겠다. 노후보는 세상을 함부로 살아왔다. 대선 후보가 되어 검증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하나하나 드러나면 노후보가 힘들어질 것이다.


‘단 한 발’로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한 발로는 안 될 것이다. 노후보가 대통령이 되기에는 그동안 망발을 너무 많이 했다. 이회창 후보가 폭락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다. DJ 꼭두각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7~8월에 최대 게이트 2개가 터진다고 했는데.

그건 아직 안 터졌다. 그와 유사한 것이 요즘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 가족 게이트다. 정권 말기의 권력 붕괴는 내부자끼리 고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내가 자료를 타진해 보았더니 ‘정권의 힘이 빠지면 보자’고 답했다. 그 시기가 7~8월이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를 통해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보이면, 그 자료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악이 이른바 ‘영부인 게이트’ 아닌가? 홍의원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부인 게이트가 터지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실명을 말하면 또 고소당한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


이여사의 가방에 돈이 들었다는 것인가?

김치하고 쌀만 들었겠는가. 더 말할 수 없다.



‘DJ 저격수’라고 불리는 홍의원은 ‘이희호 여사는 역대 퍼스트 레이디와 성격이 다르다’라며 외교 행낭 문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지만, ‘두고 보자’며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최고의원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은 당 내부를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청장년 세대를 이회창 후보의 전면에 포진시켜, 한라당이 21세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미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연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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