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출마, 아직 때가 아니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6.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
예정에 없던 국·실 순방이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갑자기 서청원 대표를 부른 모양이었다. 서대표는 인터뷰 약속 시간을 10분 가량 뒤로 미루며, 당사를 한바퀴 돌고 내려왔다. 6·13 지방 선거의 여진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서대표는 약간 피곤한 표정이었고, 목소리도 조금 갈라져 있었다.

지난 6월17일 오전 10시40분, 여의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실 원탁에서 만난 서청원 대표는, 인터뷰 초반에는 느리고 낮은 톤으로 답하다가 ‘노풍’을 진단하는 대목에서는 여유를 보였고, 12월 대통령 선거를 위한 선거대책위 구성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서대표는 오는 7월10일 이전에, 이회창 후보와 최고위원들과 협의해서 최강의 진용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서대표는 민주당의 내홍과 관련된 질문들은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비켜 갔다.

6·13 지방 선거에서 압승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민이 참 무섭다. 국민의 정치 의식이 높아져 있다. 정치를 정의롭게 끌고 가지 못하면 언제든지 국민이 회초리를 든다는 사실을 느꼈다. 특히 부정 부패에 대해서는 어떤 정권이든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경고라고 본다. 이 정권의 부정 부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우리 당이 압승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김대중 정권의 부정 부패에 대한 심판이 곧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아니지 않는가?

대안 정당으로서 우리 당에 대한 지지가 있다. 그러나 자만하면 안된다.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꿰뚫는 정책을 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대안 세력이 아니었다면 국민들이 표를 안 줬을 것이다. ‘너희들 잘 해라, 너희들도 잘 못하면 엄하게 심판한다’는 국민의 경고다.


이번 지방 선거 압승이 이회창 후보의 대선 가도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리라 보는가?

이번 지방 선거의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앞으로 남은 6개월간 정말 국민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한 예로 다음주부터 민생 정책 투어를 한다. 민생 문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돌발 악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무슨 악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 겸허해질 것이다.


세풍 사건의 주역 이석희씨가 들어오면 한나라당이 타격을 받을 텐데.

솔직히 나는 세풍 사건의 진실을 잘 모른다. 언론 보도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된 ‘윤여준 테이프’가 나올 수도 있다.

정치 하는 사람은 누가 만나자고 해도 다 만난다. 나도 어떤 자리에 갔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사진 좀 찍자고 하면 같이 찍는다. 이번 지방 선거 기간에도 사진 찍자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윤여준 의원도 아이디어가 좋은 젊은이가 있다고 하니까 만났을 수도 있다. 윤의원이 돈을 안 받았다고 농성까지 했는데, 내가 그 양반을 믿어야지, 테이프가 있다 없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부정 부패 캠페인이 단죄보다는 분위기를 끌고 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다.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 실체인 최성규 총경을 비롯해 해외에 도주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들어와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부정 부패 캠페인으로 대선 정국을 끌고 간다는 것은 비약이다. 과거에도 권력형 비리는 여야가 함께 나서서 국정조사도 했고 청문회도 했다. 우리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을 정치 공세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정조사는 민심 이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검찰이 대통령 아들을 곧 소환하겠다고 했으니, 월드컵 기간에는 검찰을 지켜 보고 있겠다.


‘노풍’(노무현 바람)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보는가?

글쎄, 한 2개월 노후보 지지율이 상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아침 여론조사를 보니까 노후보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국민들이 2개월간 노후보를 검증했다고 본다. 노풍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내가 얘기 안해도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것 아닌가(웃음). 노후보가 고향인 부산에서조차 ‘부산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고 얘기할 정도라면, 노후보의 말만 빌려도 이미 바람은 끝났다.


정계 개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나는 인위적인 영입은 절대 안한다고 발표했다. 절대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 우리가 과반수가 된다고 해서 국회를 단독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정치를 풀어가야 한다.

자민련·미래연합·정몽준 의원 등 ‘제3 세력’이 결집할 것이라는데.

과거 양김씨는 민주화 투쟁에서 사선을 넘으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름이 좀 알려진 인사 한둘이 들어간다고 해서 정당이 성공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이제 3김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미 그만두신 분이고, 김대중 대통령도 6개월 있으면 그만두실 분이고, 김종필 총재도 요즘 정치적으로 심란하실 것이다. 내가 3김 시대는 끝났다, 안 끝났다고 말할 계제가 아니다.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김현철씨가 8월8일 재·보선에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고 한다는데.

글쎄, 당에서 의논할 문제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현철씨가 아직은 정치에 나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히딩크 열풍이 대단하다. 정치는 언제 기업이나 축구처럼 일류가 될 것인가?

그분이 국민에게 큰 희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정치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면 우리 정치인들도 국민들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국민들이 마음 고생이 컸던 것 같다. 그동안 법과 제도가 아니라 인치에 의해 국가가 끌려왔기 때문에 정치가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가 집권한다면 3권 분립 체제에서 법대로 운영되는 국가를 만들어 나가겠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운영하는 국가를 만들겠다.


서대표는 1997년 ‘정발협’ 시절에 이회창 후보 불가론을 주장했었다.

잘못 알려졌다. 정발협이 이회창 후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서 후보를 내자는 것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중도에서 끝났다. 내가 후보 중에서 다른 사람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보가 결정된 뒤에는 이후보를 도왔다. 이총재가 지난 총선 때 내게 선대본부장을 맡긴 이후 서로 가까워졌다. 이후보를 도와서 인치가 아닌 법치가 살아 있는 국가를 만들고 싶었다. 민주화를 위해 고생한 분이 제왕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