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 “내 손 안에 있소이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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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이끌 차세대 주자들
‘히딩크호’의 훈련 캠프에는 낯이 선 선수들이 뒤섞여 있다. 그들은 엔트리 멤버도 아니고, 그렇다고 코치나 기술 요원도 아니다. 한국팀 경기가 있을 때에도 그들은 히딩크 옆에 앉아 끝까지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최성국·정조국 선수가 그들이다. 언젠가 히딩크는 이들과 차두리·박지성 등을 염두에 두고 “한국팀은 재능 있고 두려움 없는 선수들로 짜여 있다”라고 말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낙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짊어질 선수, ‘차세대 스타’로 언급되는 최성국과 정조국은 누구인가.


최성국(19·고려대)과 정조국(18·대신고) 선수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차두리·이천수보다 축구를 더 즐길 줄 안다.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척박한 한국 축구의 토양에서 최성국·정조국 선수 같은 대형 신인이 자라주어 그저 기쁘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선배들도 부러워할 만큼 손색 없는 기량 뽐내





최성국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 3월 한·일 청소년대표팀 경기에서였다.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을 쉽게 제치는 천부적인 드리블과 창조적인 패스 그리고 넓은 시야…. 최성국은 수비수가 여러 명 달려들어도 여유를 잃지 않고 또래의 일본 선수들을 완전히 요리하며 현격한 실력 차를 보여주었다.


최성국은 월드컵 대표팀 주전들과 겨루어도 손색없는 기량을 갖추었다. 히딩크호에 합류해 하늘 같은 선배들과의 연습에서도 최성국은 거침없는 돌파와 날카로운 슈팅을 뽐냈다. 선배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한 회식 자리에서 최성국이 홍명보·김태영·최진철 등 고참 수비수들과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뭐 먹겠느냐는 홍명보의 질문에 최성국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자 홍명보가 “갈비 사줄 테니 앞으로 내 앞에서는 절대 드리블하지 말라”며 엄살을 피웠다. 홍명보는 “최성국은 앞으로 큰일을 낼 특출한 재주를 가진 후배다”라고 치켜세웠다.

히딩크 감독도 틈만 나면 최성국을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최성국을 지도하고 있는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타고난 순간 스피드나 유연한 몸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다”라고 말했다.


정조국은 중국 청소년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를 마치고 정조국은 “내 장점은 골대 앞에서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설사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였다고 해도 그런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스트라이커 기대주 정조국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명성이 더 높다. 일본은 물론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구단이 정조국의 성장을 유심히 지켜 보고 있다. <한국 축구 교본>을 펴낸 일본의 한국통 다지마 고조 일본 청소년대표팀 감독도 “분명 황선홍·설기현 이상의 선수가 될 것이다. 시야와 골 감각 그리고 슈팅 강도나 정확성에서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스트라이커감이다”라고 말했다. 대표팀의 훈련을 지켜 본 한 콜롬비아 기자는 “노란 옷만 입혀 놓으면 완벽한 브라질 대표 선수 같다”라며 그의 기술과 유연성을 극찬했다. 정조국을 지도하고 있는 대신고 최기봉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조국이는 골에 대한 자질이 남달라 문전에서는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했다. 부족한 파워를 보충해 간다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선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조국에 대한 히딩크의 애정도 각별하다. 평소 단정하지 않은 정조국의 헤어 스타일이 불만이던 히딩크는 호텔 로비에서 정조국을 보자 “같이 머리 손질이나 하자”라며 손을 이끌었다. 호텔 미용실에서 히딩크는 정조국의 헤어 스타일까지 지정해 주고 난 뒤에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프로팀 입단이 확정되어 머리를 기를 요량이었던 정조국은 “헤어 스타일이 이상해졌다”라고 한동안 투덜거리고 다녔다.


지난 5월 최성국과 정조국은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훈련 파트너로 참여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선배들과 파워 프로그램·전술 훈련 등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힘과 기술의 조화를 꾀하는 법을 익혔다. 또 선배들의 기술과 습관을 몸으로 배우면서 팀 플레이를 배웠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 최정상 팀과의 경기를 가까이에서 보며 시야를 넓히고 국제 축구의 흐름을 익힌 것도 큰 소득이었다.





히딩크 감독도 최성국과 정조국에게 베스트 멤버 이상의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다. 대표 선수들이 쉬는 동안 이들을 따로 불러내 기술을 가르친 적도 여러 번이다. 특히 드리블과 트래핑 등 기본기를 세심하게 가르쳤다. 히딩크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경험들은 자신들의 경력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다. 이들의 성장이 한국 축구의 미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뿌듯해 했다.


실수나 패배 두려워 않는 ‘즐기는 축구’


이 두 선수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차세대 주자라면, 이천수(21)·최태욱(21)·박지성(21)·차두리(22)·송종국(23) 등은 이미 이번 월드컵에서 그 기량이 확인된 기대주들이다. 이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계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힘과 기술을 챙겼다. 이들이 곧게 자라 자신의 색깔을 갖추게 되면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히딩크의 믿음이다.


특히 많은 사람이 차두리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차두리의 가능성은 8강 길목에서 만난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잘 드러났다. 패색이 짙어가던 후반 37분. 관중석엔 자리를 뜨는 사람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대기심이 차두리 교체를 알렸다. 이 까까머리 청년은 미소를 머금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라운드로 달려나갔다. 그에게서는 한 골 뒤지고 있다는 부담감이나 비장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치 즐기듯 차두리는 껑충껑충 뛰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가 보여준 오버헤드킥에 대해 세계 언론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골이 될 뻔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차두리는 이천수와 함께 선수단 앞에서 가장 흥겹게 춤을 추며 승리를 자축했다.


차두리 같은 젊은 한국 선수들은 실수나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럽 축구 공포나 큰 경기 징크스 따위도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주눅 들지 않고 개인기로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뿐이다. 이는 ‘경기를 즐기면 진지해진다’는 히딩크 철학에서 비롯된다.


물론 신세대 선수들에게 ‘개인 플레이를 한다’ ‘드리블이 길다’ 같은 부정적인 말들도 따른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겨루어서 이기겠다는 당당한 자신감은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국 축구의 미래에 긍정적인 전망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팀의 선전에 들떠 있었던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아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최성국과 정조국을 비롯해 이천수·차두리·최태욱 등 젊은 야생마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월드컵 폐막이 그리 서운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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