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토층이 가장 적은 정치인”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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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히딩크 감독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월드컵 축구 대표선수들도 K리그로 복귀했다. 하지만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여전히 분주했다. 월드컵 뒷마무리에다 ‘정치적 행보’가 겹쳐 있어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대한축구협회 6층 회의실 북쪽 창문으로는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7월8일 오전 8시30분, 정몽준 회장에게 “청와대가 잘 보인다”라며 대권에 관한 질문을 던지려고 했더니, 정회장은 얼른 “인왕산이 더 잘 보인다”라며 한 걸음 비켜섰다. 그러나 월드컵 이전에 견주어, 정치에 관한 그의 답변은 훨씬 길어졌고 여유도 있어 보였다. ‘내 동생 정몽준은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파리 발언에 대해서 묻자 정회장은 선뜻 “말씀 잘 하셨다”라고 답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월드컵 결산 보고서가 나오고 있지만, 정몽준 회장과 관련된 대차대조표는 ‘한국 축구 4강, 정몽준 3강’으로 요약되고 있다. 월드컵 축구에 대한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치 쪽으로 옮아갔다. 회의실에는 임 삼 고문 등 축구협회 인사 8명이 배석했다.


어제 고향으로 돌아간 히딩크 감독과 마지막으로 나눈 얘기가 무엇이었는가?

대단한 얘기는 없었다. 히딩크 감독이 ‘짐 싸느라고 바쁘다’고 해서, 내가 ‘그걸 왜 가져가느냐, 테니스 라켓이며 입던 옷 다 놓고 가라. 우리가 경매해서 축구협회에 쓰겠다. 네덜란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했는데, 얼마나 놓고 갔는지 모르겠다(웃음).


어제 K리그는 보았는가?

조금 보았다. 관중도 많이 오고, 골도 많이 났다. 경기장에는 못 갔다. 다음 경기에는 갈 것이다.


베이징 대학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고 들었다. 월드컵 이후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일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생들이 ‘심판을 매수해서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간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텐데.

그런 얘기 들었다. 블라터 회장이 심판이 잘못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취소하기도 했다. ESPN 6월26일자에 난 글인데, 여기에 처음에는 한국 축구가 단순한 흥밋거리였는데, 그 다음에는 존경, 그 다음에는 공포, 경외라고 썼다. 베이징 대학생들이 심판을 매수했냐고 질문한다면, 그들이 내 능력을 과대 평가한 것이다(웃음). 중국이 한국 축구의 선전에 대해 불만을 가질 만한 이유는 있다. 하나는 극동에서 중국의 축구 열기가 가장 높다. 중국 텔레비전에서는 이탈리아·스페인 경기를 생방송한다. 중국 팬들은 유럽 선수들을 다 기억한다. 그 선수들이 지니까 화가 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국과 터키가 경기할 때, 한국이 중국을 더 응원하지 않은 것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한국 사람들보고 밤에 다니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고의 성공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2006년과 2010년 개최국이 이번 대회처럼 치르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해보는 공동 개최였지만, 전원이 합의해 놓고도, 나중에 피파가 공동 개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의도적으로 우리를 비판했다. 공동 개최 하는 쪽에서는 아주 부담스럽고 불쾌한 일이었다. 공동 개최는 이제 확실한 대세가 되었다.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를 신청한 곳이 여섯 군데인데 그 중 세 군데가 공동 개최 하겠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열릴 2010년 월드컵도 공동 개최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장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VIP실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웃음)김대통령께서 축구장에 처음 오신 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 때였다. 그 첫경기가 도쿄에서 열렸는데, 당시 대통령은 후보여서 경기 결과에 대한 부담이 컸다. 우리가 후반전 들어가서 한 골 먹고, 나중에 두 골을 넣어 역전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보셨느냐’고 했더니, ‘조마조마해서 다시는 축구장에 못오겠다’고 하신 적이 있다. 두 번째는 작년 컨페더레이션스 컵 때 오셨다. 대통령께서도 축구를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았다. 대통령께서 올해 초 KBS에서 열린 월드컵 성공 기원 <열린 음악회>에 오셨는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정회장, 금년에 좋은 꿈 꾸었느냐?’고 물으셨다. ‘16강 진출,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좋은 꿈’을 여러 가지로 해석했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나눈 이야기는 없었는지?

지방에 있는 경기장에서 개막전 경기를 했는데, 대통령께서 오실 때마다 테러 문제와 16강 진출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했다. 내가 블라터 회장의 농담을 전해드렸다. 9·11 테러 이전에 블라터 회장은 ‘테러리스트는 모두 축구 팬들이기 때문에 축구 시합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웃음).


며칠 전 파리에서 정몽구 회장이 ‘내 동생 정몽준은 대통령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말씀 잘 하셨다고 생각한다, 시원하게(웃음). 우리 형님은 얘기를 직선적으로 하는 편이다.


최근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문화연대> 7월호에서 ‘냉전적 개발독재 시대의 한반도를 대표하는 정주영·박정희·김일성의 세 자녀들인 정몽준·박근혜·김정일의 2세 3자 연대가 올 대선의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읽어보지 못했다. 박근혜 의원이 축구장에 몇 번 왔지만 그런 얘기는 못들어 봤다. 김정일 위원장한테도 그런 얘기 못들었고. 혹시 내가 그런 얘기 들으면 말씀드리겠다(웃음).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손교수께서 나를 띄워놓은 다음에 정조준 사격을 하려는 것 아닌가(웃음).


9월에 남북 축구 교류와 더불어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는데.

북한축구협회 리광근 위원장이 축전을 보내왔는데, 우리가 답신 초안을 써놨다. 오늘 통일부를 통해 북한에 보낸다. 남북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김위원장을 초청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정몽준 회장에 대해 관심이 큰 것 같은데.

1999년에 방북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 초청한다면 응하겠다. 우리와 북한이 축구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면 통일이 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북아 리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여러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1990년에 했던 중국·북한·한국·일본 4개국 리그도 구상 중이고, 여자 축구·청소년 축구 등 다양하게 구상 중이다.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 대타로 정회장을 영입한다는 ‘설’도 나도는데.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읽어보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노후보는 그 책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정의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은데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처럼 정의가 성공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노후보가 그 책에서 실패한 사례로 든 것이 김 구 선생이었다. 나는 독후감에서 노후보가 주장하는 정의가 성공하길 바란다고 썼다.


하지만 8·8 재·보선 이후 대선 구도가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국민들이 투표하기 전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점잖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영입설과 관련해서, 미국의 민주당에는 부호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는데.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내가 늘 하는 얘기다. 케네디나 록펠러 가문에 민주당 의원이 많다. 매리어트 호텔을 소유한 부자도 미국 민주당 의원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여성 정치인들은 개혁에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대부호의 2세들이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가령 미얀마·필리핀·방글라데시·스리랑카·인도 등 여성 지도자가 많은데, 일방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정치도 재미가 있어야 국민들이 응원도 해준다. 그 사람의 경제적인 처지가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무조건 보수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진보라고 하는 것은, 그 개인뿐만 아니라 보수나 진보에 대한 개념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귀족이냐 아니냐를 놓고 대결한 적이 있다.

선거 전략이었을 것이다. 귀족이란 단어도 반드시 배타적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귀족은 돈이 많아서 되기도 하고, 신분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가난한 양반도 많았다.


정회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현대와 경쟁하는 기업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반발이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누구는 부자니까 보수이고, 누구는 부자가 아니니까 진보라는 것과 같다. 답답한 얘기다.


박근혜·이인제·김종필·정몽준 4자 연대설이 줄곧 나오고 있다.

만나는 분마다 묻고, 기자회견할 때에도 다들 물어보는데, 그런 단어는 신문에서 보았지, 당사자들한테서 들은 적은 없다. 나도 그 내용이 뭔지 잘 알지 못한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9월 이후에 대선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일부에서는 9월 남북 축구 교류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웃음) 그것도 상상력이 풍부한 얘기다.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이 남북 축구 교류를 합의하고 왔다고 했는데, 실현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확인해 봐야 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남북 간에 축구 경기가 자유롭게 열린다면 통일이 멀지 않은 때이다. 축구 교류가 쉬운 것은 아니다. 9월 남북 축구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우리 축구협회가 노력을 다하겠지만, 좀더 두고 보라. 남북 축구 교류와 국내 정치를 연결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축구와 정치가 어떻게 별개일 수 있느냐는 말들이 많다.

그렇다. 나라도 작은 나라고, 월드컵도 성공했기 때문에 축구와 정치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정치적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일부 언론에서 ‘한국 축구 4강, 정몽준 3강’이라고 표현했다.

여론조사 결과이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떤 층이 지지하고 있다고 보는가?

밖에서는 흔히들 여성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여론조사를 보면 여성 표보다는 남성 표가 많고, 그 다음에 사무직 근로자, 고학력 층에서 지지율이 높다. 잘못하면 자화자찬이 되는데, 1년 전에도 있었고, 최근에도 있었지만, 누구를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나를 반대한다는 응답이 가장 낮게 나왔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조사에서는 내가 2등을 많이 했고, 민주당에서는 3,4위를 많이 했다. 여담이지만, 이 다음 대통령의 과제는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국민을 화합시키는 것인데, 그럼 두 당이 합치면 내가 성적이 제일 많이 올라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웃음). 이렇게 얘기하면 두 당이 다 안 좋아할 것 같은데(웃음).


‘정몽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정사모) 회원 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들었다. 노무현 바람을 일으킨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연상되는데.

늘고 있다. 신문에서도 자꾸 ‘노사모’와 비교하는데, 비교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각자 열심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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