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무한 질주에 딴죽 건 못난이들
  • 김영근 (<축구신문> 편집국장) ()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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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은 해외 진출 가로막고, 축구협회는 ‘나 몰라라’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과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 한국 축구 발전을 가로막는 구태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저력은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세계 언론들은 길거리 응원이라는 신선한 뉴스를 접하며 짜릿한 문화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축구 강국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태극 전사들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 중에서 이천수는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도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월드컵에서 기대한 만큼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가능성만은 그 누구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빅 리그에서 뛰려고 입단했는데…”


대학을 중퇴하고 울산현대에 입단하게 되었을 때 이천수는 “구단이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해 입단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조민국 감독도 이천수의 울산현대 입단을 발표하며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해서 좀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팬들도 외국 진출을 위해서는 대학보다 프로팀, 대학 관계자보다는 프로 구단 전문가들이 이천수에게 더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정반대로 울산현대는 이천수의 빅 리그 진출을 가로막았다. 이천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고 입단 계약서에 사인한다는 확신이 100%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사우샘프턴의 테스트조차 받을 수 없도록 가로막은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코리아 타임스> 오은 스위니 기자는 “해외 진출을 원하는 유망주라면 절대 K리그에 가지 말아야 한다. 대한축구협회와 정몽준 회장은 한국 축구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해외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월드컵 때 한국이 치른 일곱 경기에서 올린 득점 대부분은 안정환·박지성·황선홍·유상철·설기현 등 해외파의 작품이었다. 월드컵 돌풍의 주역이었던 터키와 세네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외파가 큰 자산임을 입증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망주의 해외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으로 여론이 모아졌다.


축구팬은 월드컵 이후 태극 전사들의 해외 진출이 급증할 것으로 큰 기대를 걸었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천수가 그 첫 대상으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자 팬들은 자기 일처럼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이천수의 꿈은 여름날 한때의 소나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프로 팀이 능력 있는 선수를 보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욕심이 모처럼 한국 축구에 관심을 가진 유럽 축구 인사들의 등을 돌려버리게 만든다면 한국 축구는 또다시 퇴보하고 말 것이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무서운 기세로 한국과 일본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과는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일본축구협회가 나카타의 해외 진출 때 일본의 유수 기업들을 설득하며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했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축구협회는 스폰서가 되기를 망설이는 기업을 독려하기 위해 장기 채권을 발행했으며,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매주 응원단을 모아 전세기로 대규모 응원단을 이탈리아에 보냈다. 중국도 정책적으로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판즈이·마밍위 선수가 빅 리그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보다는 국가가 전폭 지원한 힘이었다.


이탈리아 페루자와 불화를 빚고 있는 안정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한축구협회가 안정환을 위해 세계축구연맹에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적극 처리하겠다던 정몽준 회장도 아무 말이 없다.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기라도 해줬으면 혼란이라도 없겠다”라며 축구협회의 무성의에 냉소적이다.


부천SK 이을용 선수의 이적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을용은 터키로 이적하며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받았다. 사실 이을용이 소속했던 부천SK는 일부 축구팬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던 구단이다. 투자에 인색하고 능력 있는 선수를 다른 구단으로 보내는 데 소극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런 부천SK가 선수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팀의 간판을 내놓았다. 이는 울산현대가 이천수를 대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천수가 해외 진출에 좌절한 것은 그만의 좌절이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해외 진출을 열망하는 선수들에게 나쁜 전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축구인들의 견해이다. 프로 축구계에서 전통 명문 구단이자 정회장이 구단주인 울산현대에서 일어난 이천수 파문은 한국 축구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몽준의 이율배반적 처신도 문제


이 사태로 대한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 진출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생겼다. 울산현대 구단주이자 대한축구협회 수장인 정몽준 회장의 이율배반적이며 애매한 처신에 대해서도 비난이 나온다. 정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장래성 있는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끓임 없이 모색해야 하며, 프로 구단들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에 군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정부가 나서 해결해 달라고 촉구해 왔다. 그 건의 대부분을 정부가 받아들인 상태이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절호의 계기를 맞았다. 팬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축구장에서 구름 관중을 이루고 있다. 어렵게 되살린 불씨가 꺼져 버리지 않을까 축구인들은 걱정하고 있다. 1998년 월드컵 이후 조성된 프랑스 프로 축구 열기가 오래가지 못한 전례가 있다. 대한축구협회와 정몽준 회장이 평소 공언했던 약속을 지킨다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해결될 것이다. 축구협회장으로서 축구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정몽준 회장은 어디에서 누구의 지지를 받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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