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이 하나 되는 생태 공동체 일군다
  • 춘천·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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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를 향해 가는 (주)이장 사람들
직장 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주식회사 ‘이장’(w ww.e-jang.net)을 찾는 일은 힘겨웠다. 춘천시 후평3동 동사무소 옆 골목을 한참 헤맸지만 어디에서도 ‘주식회사 이장’ 간판을 만날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회사가 눈에 안 띈 이유가 있었다. 가정집 안에 있는 데다 간판이 손바닥만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 안 풍경도 퍽 낯설다. 거실에 덩그렇게 앉은뱅이 책상 2개가 자리해 있고, 좁은 방마다 쭈그리거나 의자에 앉아 일하는 직원이 가득하다.





10여년 전의 ‘아름다운 약속’ 이장 사람들이 공동체를 꿈꾼 역사는 좀 길다. 1990년대 초, 불교환경교육원 생태학교를 수료한 정기남·최용재·홍순천 씨 등 10여 명은 환경과 공동체에 헌신하자며 ‘초록바람’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그들은 굳게 다짐했다. 훗날 생태 농업을 지으며 함께 살아가자고. 1999년 5월, 초록바람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출신 젊은이들과 함께 소비자와 유기농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주)인터넷 이장과, 유기 농산물 도시락 전문점 ‘이장네 밥집’을 개업하며 공동체 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경영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3개월 만에 투자금을 다 까먹은 것이다.



대부분의 동지는 고향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뭉쳐 주식회사 이장을 창업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과 각오에 자본금 1억을 보태, 환경 친화적인 농촌을 만들고 사람과 자연을 가깝게 만드는 생태운동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12월, 이장은 춘천시 만천3리 마을회관으로 이전했다. 목표가 같았으므로 이주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올해 5월 다시 후평3동으로 이사하면서 그들은 회사 근처에 각자 집을 마련했다. 그러는 동안 15명이던 직원은 26명으로 늘어났고, 20대 중반 젊은이들이 참여하면서 연령대도 젊어졌다(이장의 주축은 이른바 386 세대다). 현재 여직원 숫자는 6명, 식구는 가족들을 포함해 모두 40여 명이다.



이장은 무엇으로 사는가 경영기획실·기술사업부·문화사업부·미디어사업부·부설 연구소로 짜인 이장의 회사 구조는 여느 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하는 일은 예사롭지 않다. 기술사업부는 생태 마을과 생태 농장을 개발하고, 생태 건축의 설계 및 시공을 한다. 문화사업부는 유기 농산물을 판매하거나 유통시키고, 녹색 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디어사업부는 생태 관련 출판물 발행과 농어촌 홈페이지 구축을 주 업무로 한다. 서울에 있는 부설 연구소는 도시 생태 환경 조사·분석이나 생태 환경 정보화 관련 사업을 한다.



그동안 이장이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신대리와 용호리를 유기농을 짓는 생태 마을로 바꾸어 놓았고, 2년 연속 강원도가 선정하는 ‘최우수 마을’로 만들었다. 빼어난 컨설팅·건축 실력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요즘 이장은 함양·장수·영암·홍천·제천 등 전국 30여 곳에서 마을 개발과 농장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임경수 대표는 “단순한 발전 계획서는 건당 5백만원을, 입체 모형을 곁들인 세부 계획서는 건당 2천5백∼3천만 원까지 받는다”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이장은 회사 근처에 있는 70평 규모의 슈퍼 ‘초록바람’에서 유기 농산물을 팔아 수익을 올린다.



어떤 사람들이 함께 사는가 이장 사람들은 모두 생태 공동체를 동경한다. 서울의 한 중국음식점 아들인 임경수 대표(37)는 생태공학박사로서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홍순천 출판팀장(41)은 잡지사와 농촌에서 생활하다가 입주했고, 신진섭 기획실장(35)·정기남 유통팀장(33)은 유통 사업과 귀농 생활을 하다가 참여했다. 정팀장은 “이같은 생활이 편하고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9월 말 입주한 정기석 기획실장(39)은 서울의 인터넷 벤처 기업에서 기획마케팅 일을 하다가 이상향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건축학을 전공한 하지혜씨(25·기술사업부)는 이스라엘 키브츠 연수를 갔다가 그곳의 공동 생활에 반해 이장에 합류했다. 하씨는 이장에는 일반 회사의 딱딱함과 지루함이 없다고 소개했다. “생태 마을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건설하는 보람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이장만의 매력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강원대 4학년인 막둥이 이 참씨(24·기술사업부)는 교수의 소개를 받고 선뜻 이장으로 왔다. 그는 입사한 지 나흘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이장의 독특함을 눈치챈 것 같았다. “마치 대학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처럼 자유롭다.” 이장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근처 닭갈비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가치관과 심성을 점검받아야 한다), 누구나 떠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춘천으로 온 세 가지 이유 호반 도시의 멋스러움에 반해서, 한적함이 좋아서 춘천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이장이 처음 맡은 생태 마을 가꾸기가 춘천 인근 화천군 신대리와 용호리에서 진행되어서였다. 그만큼 강원도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믿음도 춘천행을 거들었다. 두 번째는 업무상 인터넷을 자주 이용해야 하는데, 아직 시골은 인터넷의 불모지나 다름없어서 시골로 무작정 내려갈 수가 없었다. 세 번째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해서였다. 갑자기 시골 생활로 전환했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춘천에서 잠시 짐을 푼 것이다. 춘천은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이다. 머지 않아 마음에 드는 시골에 생태 마을을 건설한 뒤 그곳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다른 공동체와는 뭔가 다르다 이장은 여느 공동체와 달리 개인 재산을 인정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규모 있는 집에 살 수 있고 좋은 차를 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공동체일까. ‘분배’를 공평하게 하기 때문이다. 월급 체계는 네 단계로 나뉘어 있다. 우선 가정을 갖고 있는 직원은 1백50만원을 받는다(대표도 마찬가지다). 경력 사원은 1백20만원, 신입 사원은 70만원을 가져간다. 부부가 이장이나 초록바람에서 일하면 2백30만원을 수령한다. 서울 사람 기준으로는 그리 많은 돈이 아니지만, 주택 값이 서울의 절반도 안되는 춘천시임을 감안하면 적은 돈만도 아니다.



또 하나 공유하고 있는 것은 점심이다. 이장 사람들은 용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점심을 회사가 먹여주기 때문이다. 음식 솜씨 있는 직원 부인이 나와 밥을 지으면 거실에 모여 한꺼번에 식사를 한다. 11월7일 점심 메뉴는 흑미·강낭콩 밥에 김치·가지나물·깻잎·도라지오이무침·김·오징어포무침·배추된장국이었다. 유기농 식품을 재료로 쓴 덕인지 상차림과 맛이 정갈했다. 설거지는 부서 별로 돌아가며 남자들이 한다.



자동차도 공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집앞에 세워 놓는 차가 많아 최근 필요 없는 차들을 팔고, 5대를 함께 굴리고 있다. 임경수 대표는 여타 물건이나 돈을 공유하지 않는 이유를 “공유하는 것이 사유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효율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공유해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있으나 마나 한’ 회사 사규 이익을 내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므로 사규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강제성을 띤 사규가 아니다. 특히 공동 생활과 관련한 행동 규칙이나 벌칙 따위는 전혀 없다. 회사 게시판에 걸린 회람 문서를 보니 ‘…각종 사규가 있지만 사규는 사규일 뿐(일하는 데 도움이 안되시면) 따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규칙상 근무 시간이 09∼18시로 되어 있으나 기존 관행대로 또는 상식과 양심에 기초해서 탄력적으로 판단·실천하기…’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홍순천 출판팀장은 “출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그래도 9∼10시면 거의 다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 자신들을 위한 생태 마을을 만들어 그곳에서 생태 농업을 짓는 것, 그것이 이장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다. 시골로 내려가면 형편에 맞게 땅을 분배한 뒤, 거기에서 나오는 유기 농산물을 팔아 몸과 마음이 편하게 살 예정이다. 그 시기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길어지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식구들 대부분이 단 하루라도 빨리 땅에 나가 땀 흘리기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 유기농 식품을 찾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매년 15∼20%씩 성장했다. 일반 식품보다 다섯 배나 빠른 속도다(<뉴스위크> 11월13일자). 한국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장 사람들은 욕심 낼 생각이 없다. 그들은 대단위 유기농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고 믿는다. 대단지에 단일 품종을 심는 투기성 유기농은 한번 병충해를 입으면 대형 사고가 나기 때문에 목초액이나 미생물 제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제품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목초액을 만들려면 나무를 베어다 때야 한다. 이장 사람들이 대단위 유기농을 피하려는 이유다.



이장이 꿈꾸는 유기농은 좁은 땅에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이다. 좁은 땅에 여러 작물을 심으면 땅도 비옥해지고, 해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런 방식은 손해가 나도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있다. 판매는 농산물이 나는 지역에 매장을 구축해 그곳에서 팔 예정이다. 물론 전자 상거래를 통해 도시의 돈을 끌어들일 계획도 갖고 있다.



1박2일 머무르는 동안 이장 사람들은 거창한 구호나 목표를 내세우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독특하면서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꾸리고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이장의 사업 계획서 말미에 쓰인 그들의 ‘구호’가 떠올랐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모두 같이 꿈꾸면 더 빨리, 더 높이,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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