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만 해도 은메달 따니…
  • 손장환 (<중앙일보> 체육부 차장) ()
  • 승인 2002.11.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체전, ‘국내 최고’와 거리 멀어…세부 종목 확 줄이고 점수제 개선해야
제주 일원에서 벌어진 제83회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11월15일 끝났다. 이번 체전은 16개 시·도와 열세 나라 해외 동포 등 모두 2만2천1백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경기 종목은 정식 종목 38개, 시범 종목 2개였다.





규모로만 보면 대단히 성대하게 치러진 것 같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이 아니다. 우선, 일정부터 제대로 잡지 못했다. 월드컵(6월)과 부산아시안게임(10월)에 밀려 예전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치러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제주도지만 11월의 칼바람은 선수나 관중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더구나 이맘때 제주도는 감귤 수확기여서 일손이 달린다. 따라서 제주도민들이 전국체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선수들은 썰렁한 관중석을 보며 외로이 ‘그들만의 체전’을 펼쳐야 했다.


더구나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국가 대표 선수들은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고장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체전에 억지로 참가해, 체면치레를 해야 했다. 부산아시안게임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인 이진택이 이번 체전에서 은메달에 그쳤듯이 부산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이 국내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올린 것은 체전이 비정상으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부 전문가 “2년에 한번씩 대회 열자”


이번에도 체전이 끝난 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 있는 해에는 전국체전을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사실 이런 주장은 2년마다 되풀이되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4년 주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번갈아 벌어지기 때문에 이때 전국체전을 쉰다면 2년마다 개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의 스포츠 관련 행사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국체육대회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전국체전을 한 해라도 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국체전의 기원은 일제 치하이던 192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조선체육회가 처음 창설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렸다. 비록 야구대회였지만 이것이 전국체육대회의 기원이다. 15년이 지난 1934년에 와서야 종목이 야구뿐 아니라 축구·농구·육상·테니스 등 다섯 종목으로 확대되었으며 명칭도 제15회 전조선 종합경기대회로 바뀌었다. 명칭은 달라졌지만 횟수는 이어졌다.


1938년 일제가 조선체육회를 강제 해산하는 바람에 종합경기대회는 18회 대회 이후 중단되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체육회가 부활하고 전국체육대회를 다시 열었다. 정확하게 횟수로는 19회가 되어야 했지만 대회를 치르지 못한 해에도 그대로 횟수를 계산해, 이때 대회를 제26회로 간주했다.
이같은 계산 방법은 한국전쟁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아무튼 대회를 쉰 것은 일제 강점 때 7년, 그리고 전쟁 때 1년이 전부이다. 심지어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51년에도 광주에서 대회를 치렀다. 따라서 체육인들로서는 그런 전국체육대회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문에 중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전국체전은 전국 시·도를 대표한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일부 국가 대표 선수들이 힘들다고 대회에 불참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체육대회가 자유 참가제에서 시도별 대항 체제로 바뀐 것은 1948년부터다. 각 시·도가 자기 고장의 명예를 걸고 선수들을 육성해 1년 동안의 성과를 확인하는 대회가 바로 전국체전이다. 지방을 순회하며 대회를 치르는 것도 서울과 지방의 체육을 균등하게 발전시킨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전국체전이 과연 이러한 취지를 지금껏 살리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규모가 점차 커지고 시·도별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자격 미달 선수가 대거 출전해 대회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판정을 둘러싼 잡음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전국체전은 종합점수제다.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탈피하고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자는 좋은 취지에 따라 종합점수제를 채택했다. 4위에게도 점수를 주고, 출전만 하면 기본 점수를 준다. 그러다 보니 기본 점수를 많이 얻어 종합 점수를 올리려고 자격 없는 선수를 무조건 출전시키고, 은퇴한 선수까지도 불러들인다.


편의에 따라 소속 시·도도 수시로 변한다. 어느 때는 소속팀 기준으로 출전했다가 어느 때는 출생지 기준으로 출전한다. 그러니 ‘확실한 금메달리스트’를 두고 여러 시·도가 서로 자기 소속이라고 싸우는 일까지 벌어진다. 종목 별로 남녀 고등부·대학부·일반부로 나뉘다 보니 선수가 모자라 단 한 번만 싸우고 메달을 차지하기도 하고, 심지어 출전만 하면 은메달을 따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비인기 종목 육성·발전에 한몫


전국체육대회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1972년부터 초등부와 중학부를 분리해 따로 소년체육대회를 만들었지만, 비대화는 계속 진행되어 왔다. 전국체육대회가 한국 최고의 스포츠맨을 가리는 대회가 아니라 시청이나 구청, 정부기관의 운동부를 존속시키기 위한 대회라는 혹평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는 이들 시청·구청·정부기관에 의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마다 ‘효자 종목’으로 등장하는 하키·핸드볼·양궁은 대부분 이들 기관이 육성하고 있다.


다른 비인기 종목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 아마추어 운동부들이 ‘존재의 이유’를 찾는 곳이 바로 전국체전이다.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소속 시·도의 명예를 높여야만 예산을 따낼 수 있고, 팀이 존속할 수 있다. 체전의 경기 종목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체전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전국체전 우승자가 명실공히 ‘국내 최고’가 되도록 하려면 세부 종목을 과감히 줄여야 하고, 점수제를 보완해서 아무나 나와도 점수를 얻는 우스꽝스런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전국체전을 국민 화합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면 경기장 밖에서 참가자들이 화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