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신화 쫓는 위험한 이종 결합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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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 주입한 ‘돼지 6707’ 등 실패 연속



신화에서 사람과 이종(異種) 간의 결합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다. 고대부터 이종 결합에 관한 얘기는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그리스인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키메라’를 창조해냈다. 입에서 불을 내뿜는 이 동물은 염소의 몸통, 사자의 머리, 용의 꼬리를 갖고 있었다. 또 다른 고대 키메라인 ‘그리핀’은 사자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힌두교에 등장하는 괴조(怪鳥) ‘가루라’는 반은 독수리이고 반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유명한 고대 키메라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이집트의 스핑크스이다.


과거의 키메라는 대부분 종교적 의미나 신성(神性)의 의미를 띠었다. 즉 그리핀은 계몽을, 가루라는 악의 파괴자를, 스핑크스는 지혜와 힘을, 키메라는 어둠·지하 세계를 뜻했다. 현대의 생물공학자들이 창조해내는 키메라는 사뭇 다르다. ‘스파이더맨’같이 허구적인 키메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재한다. 또 어떤 상징성도 갖지 않고 의약·식량 용으로 생산될 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이 만들어낸 ‘기프’라는 동물이 대표적이다. 이 동물은 염소의 뿔과 얼굴, 양의 몸통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현대의 키메라들이 위험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 동물은 미국 농무부가 생산한 ‘돼지 6707’이다. 수년간 사람의 유전자와 돼지의 수정란을 결합해 만들어낸 이 돼지는 처음에는 과학자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 돼지보다 훨씬 크고 육질이 뛰어났고, 뇌하수체에서 사람의 성장 호르몬을 분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희·비극적인 창조물임이 밝혀졌다. 돼지에게 주입한 사람의 유전 물질이 돼지의 신진 대사에 영향을 미쳐 지나치게 털이 많았다. 또 관절염·성교 불능·사팔눈 같은 문제도 갖고 있었다(앤드류 킴브렐 지음 <휴먼 보디숍>). 돼지 6707의 실패가 준 교훈은 간단하다. 윤리가 결여된 과학은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 도처에서 ‘위험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 위험한 시도가 멋진 신세계를 창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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