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개혁국민정당 대표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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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쓰러뜨릴 저격수 되겠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훈수꾼 노릇을 접고 정치판에 뛰어든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전 대표가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오는 4월 치러질 고양 덕양 갑 보궐선거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 노무현 당선자를 지지하지만, 민주당은 ‘갈아엎어야 할 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유씨를 만나 출마의 변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구당 창당대회를 사흘 앞둔 1월23일 개혁당사에서 이루어졌다.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낡은 정치 청산과 새 정치를 내세웠고, 우리는 그런 노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노후보가 당선된 이제 민주당이 우리가 청산해야 할 낡은 정치의 일부가 되었다. 정당 개혁과 정치 혁명을 바라는 민심을 제대로 한번 드러내 보이고 싶어서 ‘민주당 저격수’가 되기로 했다.


김경재 의원이 최근 덕양 갑에 민주당 후보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선의에서 한 얘기로 보이지만,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우리는 민주당 외곽 부대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민주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후보를 냈다가 떨어질까 봐 선심 쓰는 척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민주당 후보 없는 선거는 오히려 원치 않는다.


그래도 민주당 후보가 나오면 개혁 성향 표가 분산되지 않겠는가?

이기든 지든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선거를 하고 싶다. 이번 재·보선은 일종의 시연이다. 개혁당 후보가 민주당·한나라당 같은 거대 정당의 후보와 의미 있는 승부를 겨룬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개혁당에 사람이 몰리고 정치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당은 재·보선은 물론 다음 총선 때도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낼 것이다.


당 대표가 선거에 나섰다가 패하면 충격이 더 크리라는 우려도 있다.

투표율을 40%로 잡으면 5만표 가운데 2만표 정도만 확보하면 이긴다. 다른 당에서는 물량을 집중하겠지만, 우리는 네트워크를 집중해 선거를 치를 것이고 결국 이길 것이다. 노무현이 ‘진정성’으로 승리했듯이, 진실은 퍼져 나가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대선 직후에는 민주당이 새롭게 변모할 경우 개혁당이 합류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인가?

민주당 구주류는 물론이고 개혁파조차 기득권에 연연해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호남 표 때문이다. 민주당 개혁파는 호남표+α이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α표, 즉 개혁 표를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당에 노무현 색깔을 덧칠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호남 표는 현금이고, 개혁 표는 어음이기 때문에 호남 표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α표를 우리가 다 가져갈 것이다. 민주당이 개혁 표를 상수로 놓는 정당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지 않는 한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다. 민주당 개혁파가 빨리 (구주류와) 갈라서라는 의미다.


노당선자가 참 곤란할 것 같다. 노당선자와는 앞으로 어떤 관계를 설정하려고 하나?

자기 당 후보가 판판이 깨지는 것을 보면 노당선자는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 우리는 노당선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 지지’다. 노당선자는 행정 권력을 장악했고, 이제 국회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 노당선자가 민주당을 친정이라고 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최근 텔레비전에 나와 ‘구멍 난 선박으로는 항해를 계속할 수 없다. 배를 갈아타야 한다’고 한 것은 민주당으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지 못해 미적거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새 배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노무현을 지지하지 노무현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다음 판단은 노당선자 몫이다.


인터넷 정당을 표방하는데, 이른바 민주당 살생부 파동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인터넷 생리를 모르는 ‘넷맹’들이 무식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적 의도니 어쩌니 하는데, 만약 네티즌의 공감이 없었다면 살생부는 자연스레 인터넷상에서 사장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구시대 정치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판 의식이 높다는 얘긴데, 이를 검찰에 고소한 것은 민주당 구주류가 네티즌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치인들이 살생부에 민감한 것은 다음 총선 때문이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나?

우리 당만 해도 벌써 전남 고흥에 ‘안티 박상천’, 전북 부안에 ‘안티 정균환’ 연대가 결성되고 있다. 노무현의 원수를 갚겠다는 게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민주당 구주류의 호남 1당 독재를 깨고 호남 유권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민주당 스스로 인적 청산을 못하면 우리가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일등 공신이라는 사람들도 안심할 일이 못된다. 그들은 낡은 정당을 깨부수지 못한 정치적 무능아들이다. 이에 대한 심판도 있을 것이다.


개혁당에 그만한 인재풀이 있나?

좋은 분들이 좀 왔으면 좋겠는데, 정치 지망생들의 눈치 보기가 심각한 것 같다. 개혁당에서는 지역 모임에서 활동하다 당원들의 찬반 투표만 통과하면 공직 후보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쉬운 길을 놔두고 여전히 거대 정당을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치르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재·보선을 ‘시연회’라고 하는 것이다.


노당선자의 한 달 행보를 평가해 달라.

잘하고 있다고 본다. 야당을 방문한 것이나 여야 공동 공약부터 추진하자고 한 것이나 다 행정 권력 운용과 관련해 현명한 결정이다.


고 건 총리 지명에 대해 지지자들 사이에서 비판이 더 많은데.

노당선자는 국민경선 과정에서부터 대통령은 개혁 과제에 집중하고 일상 행정은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따라서 고 건 총리는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다. 개혁하라고 총리 시킨 게 아니라, 총리는 어제나 오늘, 내일이 다 같은 일을 하라고 맡긴 것이다.


노당선자가 너무 인터넷 정치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인재를 추천하는 범위와 방식을 넓힌 것뿐이다. 장관 하고 싶으면 예전에는 누군가 추천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직접 인터넷에 올리면 된다. 너무나 자연스런 일 아닌가. 나에게도 몇 사람이 추천해 달라고 이력서를 보내왔기에 직접 올리라고 했다. 인터넷은 툴(tool·도구)일 뿐이다.


언론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대통령에게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언론 개혁은 시장 질서 확립, 편집권 독립과 지분 제한, 언론 내용의 공정성 담보 등 크게 세 가지인데, 시장 질서는 시민 사회가 바로잡아야 하고, 편집권 독립 등은 법제화가 필요한 문제이며, 언론 내용은 반론권 청구 같은 정당한 요구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굳이 대통령이 나선다면 공정거래위가 제 기능을 하도록 감독하는 것인데, 이는 일상적인 행정 행위지 언론 개혁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의 국정 과제에 언론 개혁이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사모가 존속하기로 한 결정이 잘한 일인가?

노사모가 스스로 해체한다고 하면 박수를 쳐줄 수는 있다. 그러나 존속하겠다고 해서 외부 사람들이 강제로 해체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사모의 진로는 전적으로 회원들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다. 그리고 노당선자가 노사모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지지자를 버리란 말인가?


노사모 회원 가운데 문제가 생기면 노당선자에게 흠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건 노사모 내부에서 걱정할 일이지, 후단협이나 조중동같이 노사모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대선 후 노당선자를 만난 적이 있나?

한 번, 전혀 정치와 관계없는 사람들 20여명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 어쩌다 동석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당선자가 야당을 방문하면서 개혁당은 뺀 것이 불만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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