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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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출신이 청와대에 너무 많아도 문제”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과 따로 만나기가 매우 힘들었다. 매일 아침 잠깐씩 ‘봉숭아 학당’(출입기자들과의 간이 간담회)을 여는 것말고는 개별 인터뷰를 안 한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파장 분위기였던 2월21일 문실장 방은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막바지 청와대 인선 때문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에야 겨우 문실장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청와대 입성 D-3일에 만난 그는 취임식 날 이루어질 4강 외교에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노무현의 청와대’를 압축해 표현한다면?

한마디로 ‘일하는 청와대’다. 부처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의 수석들을 최소화하는 대신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은 확대해 내실을 기하려고 한다. 청와대가 비대해졌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일을 위해서라면 좀 비대해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청와대가 관료 출신은 없고 운동권 출신들로만 채워져 불안하다는 지적이 있다.

관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다. 언론에 보도된 명단은 다 비서관급 이상인데, 외교안보수석·경제수석 등 관료 몫의 보직이 대부분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준다. 또 지금까지 행정비서관·치안비서관·의전비서관이 전통적으로 관료 몫이었는데, 행정비서관은 자리가 없어졌고, 치안비서관은 관료 출신이 내정되었으며, 과거 의전비서관 역할은 이번에 차관급 외교보좌관으로 격상되었다. 정책실도 대부분 관료 출신 행정관으로 채워지게 된다. 내용도 모르면서 비판들만 하는데, 생각처럼 엉성하게 출발하지는 않는다.


인사 탕평을 얘기해놓고, 대통령 주변 인사들만 청와대에 들어간 것 아닌가?

청와대는 개혁 사령탑이고, 그래서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는 사람들이 보좌해야 한다는 게 당선자 생각이다. 눈치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광재 팀장이 청와대 인사를 좌우했다고 해서 ‘비선’ 논란이 인다.

그게 무엇이 문제인가? 자료 모으고 사람들 만나고, 그런 역할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인사위원회 간사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그 과정에서 인사에 개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다 보면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사 권한 자체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역할은 대통령의 심중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 그래야 왜곡이 생기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인사보좌관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정권 교체를 한 것도 아닌데, 기존 청와대 직원을 다 바꾸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당선자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정무직도 따라서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정권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DJ 정권 때 6개월 유예 기간을 두었고, 근로기준법도 고려해 이번에는 3개월 월급은 보장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이 2월24일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통과된다.


청와대 기자실을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과거에도 기존 언론의 반발과 경호를 이유로 유야무야되곤 했다.

누구보다 당선자의 의지가 확고 부동하다. 몇달 씹힐 각오를 하고 있다.


비서실 취재를 금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전화로 면담 약속을 하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비서실을 공개하면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고, 보안에도 문제가 생긴다.


<청와대 브리핑>이 '노무현 신문'으로 변질되리라는 우려가 있다.

오해다. 정보 교류를 위해 오만 가지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한다. 궁금한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담기게 될 것이다.


대선 이후 취임 때까지, 당선자 기간을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대성공이다. 처음부터 이번 인수위는 ‘자리’를 승계하는 게 아니라 '정책'을 승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게 제대로 된 셈이다. 옛날에는 인수위에 들어가면 당연히 다음번에 장·차관이 되리라고 보고 거기에만 신경을 썼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정책만 인수한 것이다. 인수위원들은 앞으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 대부분 흡수되어 모니터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곁에서 지켜본 노당선자가 후보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

언행이 좀 신중해졌다고나 할까? 그거야 누구나 그럴 것이고, 그밖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그분의 기본이야 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실용주의자다.


언행이 신중해졌다고 했는데, 대미 발언은 여전히 직설적인 것 아닌가?

노당선자의 대미관은 일반 사람들이나 국민의 정부 때하고 99%가 같고 1%가 다르다. 그런데 이 1%만 야당과 보수 언론이 부각하는 바람에, 그리고 미국에 그런 정보만 흘리는 바람에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1%는 뭐냐. 그동안 냉전 체제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핵 우산 밑에 줄을 서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 사회가 달라졌고 우리의 국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이 반대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도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자꾸 나오는데, 거기에 우리가 무조건 동조하면 안된다.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 그게 당선자의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자주 외교’가 한·미 관계를 해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어렵지만 미국도 바뀌지 않겠나? 미국의 국익을 고려할 때, 자기 우방과의 관계를 해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당선자가 친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미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약간의 긴장 관계는 전략적으로 결코 나쁘지 않다.


한나라당이 대북 송금 문제에 대한 특검제를 밀어붙일 태세다. 총리 인준과 연계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밀어붙이면 도리가 있나. 하지만 이걸 위해 저걸 볼모로 잡고, 이런 것 자체가 낡은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특검제를 얻었다고 치자. 국민의 신망을 잃으면 도대체 남는 게 뭔가?


민주당 구주류 일각에서는 야당이 특검법안을 통과시키면 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용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고, 여야 합의 없이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절차를 문제 삼아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좋지 않다. 노당선자는 끝까지 여야가 합의해 초당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을 끌고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정무 책임자로서 비법이 있나?

미국이 여소야대임에도 불구하고 잘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성숙한 여야 관계다. 이를 위해 노당선자는 당선 후 여야 당사를 직접 방문했고, 앞으로는 국회에 자주 출석하고 여야 지도부도 자주 만나려고 한다. 노력이 중요하다.


노당선자가 정당 개혁을 주문했는데, 민주당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신주류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은 것 같고….

그렇지 않다. 정치 개혁의 요체는 국회개혁, 정당 개혁, 선거 개혁 세 가지인데, 선거 개혁은 지난 대선 때 이미 검증되었고, 국회 개혁은 최근 대정부 질문이 일문일답 형식으로 바뀌면서 시작되었다. 이제 실력 없는 사람, 괜히 호통만 치는 사람은 국회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 정당 개혁인데, 이 역시 지난 대선 때 도입된 상향식 공천만으로도 웬만한 개혁은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구당 위원장제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혁 후퇴라고들 말이 많은데, 기존 위원장말고 다른 사람도 공천 경쟁에 나설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다. 게다가 지구당위원장도 선거 6개월 전에는 위원장 직을 내놓으라고 한다니, 거의 대등한 경쟁 아닌가?


노당선자에게는 내년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당정 분리를 천명했기 때문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총선이 중요한 만큼 노당선자는 대통령 직을 열심히 수행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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