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는 한국 기업 ‘구세주’
  • 장동인 (SAS Korea 부사장) ()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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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생산성·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
어떤 이들은 IT 기술을 ‘산소’에 비유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변화를 이끄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기술이 대표적이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매일 ERP를 만난다. 텔레비전·냉장고 따위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나, 핸드폰을 사용할 때,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때 ERP를 만난다. 웬만한 기업의 제품은 거의 ERP를 거쳐 출시되고 유통된다.





ERP란 회사 전체의 단위 업무를 하나로 통합해 중복 업무를 제거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여주는 IT 기술이다. 외환 위기 이후 경영 투명성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킨 데에는 ERP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
ERP는 1990년대 대량 생산 체계에서 태어났다. 대량 생산을 하려면 모든 공정이 표준화하고 업무가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하는데, 1990년 이전에는 공장마다 부서마다 사용하는 시스템과 작업 표준이 달랐다. 자연히 업무가 중복되고 자원은 낭비될 수밖에 없었다. 재무 회계 시스템도 각 사업본부 및 지사 별로 달라 분기별 마감을 하는 데 한 달 이상씩 걸렸다. 흑자인지 적자인지 한 달 뒤에나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ERP는 이 모든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할 수 있게 했다.


외환 위기 직후 포스코·삼성전자·삼성전관(현재 삼성SDI)·LG전자 등 제조업체들은 앞을 다투어 이 기술을 도입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진통과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모든 부서의 업무 관행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에 내부 반대가 컸다. 익숙한 일,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작업 프로세스를 바꾸어야 했던 것이다. 구축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지 못하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에서 서둘러 ERP를 구축했다.


신제품 개발 기간 3분의 1로 줄어


초기에 ERP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삼성SDI는 주문을 받아 출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 60일에서 9일로 단축되고 재고 보유 일수도 40일에서 5일로 줄었다. 매달 회계를 마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일에서 2일로 단축되었다. 신제품 개발 기간도 과거 22개월 걸렸던 것이 이제는 8개월로 단축되었다.


특히 포스코는 ERP를 공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국제적인 기업으로 변신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회장이 직접 나서 ERP 구축을 지휘했다. 시스템 도입 후 포스코는 주문에서 출하까지는 30일에서 14일로, 매달 회계 마감에 걸리는 시간은 6일에서 1일로, 신제품 개발 기간은 4년에서 1.5년으로 단축시켰다. 포스코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이 높은 것은 ERP를 구축해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RP 덕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기능과 기술로 만들어진 신제품들을 더 빨리 만날 수 있다. ERP를 도입한 기업의 실무자들은 이제 “ERP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ERP 없이는 비즈니스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의 ERP 도입은 성공적이었으며 ERP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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