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 의장 "모든 개혁은 첫해에 끝내야 한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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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는 센터포워드, 나는 리베로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해찬-정동영-김근태 트로이카에 힘이 실리면서 정국 운영의 무게는 더더욱 행정부로 쏠리는 양상이다. 그 와중에 신기남-천정배 투톱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흘러나온다. 8월12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을 만나 최근의 여당 소외 현상을 중심으로 정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국이 끝나가는데, 여당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비판적이다. 지지율도 좋지 않고.

총선이 끝난 지 4개월밖에 안 지났다. 벌써 뭔가 성과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그렇게 성격 급한 사람들이 (의회 세력 교체까지) 30년은 어떻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서서히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다.

리당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시스템이 미비하고, 당 안에 스펙트럼도 넓다. 이를 조율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도 없이 각종 현안이 터졌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고 우왕좌왕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사불란한 카리스마가 통하는 시대도 아니잖은가.

지도부의 리더십을 탓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 문화가 바뀌는 과정인데, 과거의 시각에서 리더십을 평가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새 당을 만든 뒤 체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전투(총선)부터 치렀다. 악전고투 끝에 승리는 했지만 총선 후 당에 남은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영웅 호걸이나 천재가 아니다. 기다려 보라.

정기국회 전까지 전념할 대목이 무엇인가?

정치 혁명을 완수하려면 당헌·당규를 재정비한 후 당원을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50년,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 수 있다.

당원 자격을 놓고 당내 갈등이 심상치 않다. 신의장은 어느 쪽인가?

내가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은 없다. 양 극단을 달리는 분들에게 ‘무조건 타협하고 조정해라. 웬만하면 표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논리적인 대결보다 서로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더더욱 타협이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론이 모아지는 데로 갈 것이다.

당원 자격 완화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이 신의장이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을 무단 삭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당다운 재미있는 현상이다. 과거 정당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게시판이 있고 해우소가 있고 얼마나 창의적인가. 당원 자격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와중에 일부가 자기 주장을 내세울 하나의 방편으로 그런 방식을 택한 것이기 때문에, 기분 나쁠 것 전혀 없다.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법안들의 우선 순위를 정했는가?

우선 순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리할 것은 다 해야지. 많은 것 같지만 상임위 별로 나누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하기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고 하는데, 그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이 준 표는 개혁 법안들을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의미다. 개혁 과제는 올해 안에 다 해야지 올해가 지나면 상황이 또 달라지고 개혁 의지도 무뎌질 수 있다. 모든 개혁은 첫 해에 해야 한다.

언론 개혁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나?

물론이다. 그것 빼고 되나. 과거 청산·국가보안법·사법 개혁 등 우리가 염불 외우듯 하던 개혁 과제들이 당에서 제안한 게 70개, 정부가 제안한 게 30개 해서 모두 100개다. 민생 법안도 이번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신의장이 미국에서 한 발언이 ‘숭미주의’라며 개혁 세력으로부터 강하게 비판을 받았는데.

지지율은 장기적으로 봐야지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두 지각이 충돌하는 경계선에 놓여 있고, 우리가 살 길은 용미(用美)와 용중(用中)이다. 지도자가 해야 할 제1의 임무는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도 반미(反美)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외교 문제는 철저하게 실사구시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한·미 동맹 강화한다고 반개혁적이라고 보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비판적 여론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인가?

미국에 너무 종속되면 안된다는 국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분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분들과 진실하게 대화해서 진정한 자주 외교 노선을 이해시키는 게 우리 정치인들의 임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은 누구하고도 토론할 생각이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도 그런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가?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똑부러지게 이끌어 가야 한다. 다만 방법은 현명해야 한다.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중국에 가면 중국 지도자들과도 차분히 얘기해보려고 한다.

당 안에 호남소외론·영남소외론이 혼재해 있다.

우리당은 마치 경계인 같다. 지방에 가보면 호남·영남뿐 아니라 제주·강원 할 것 없이 모두 다 소외감을 피력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더니 ‘제주도 출신은 강금실 장관 한 명 있었는데, 그마저 물러났다’며 불우해 하더라. 하지만 이는 곧 우리당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전국 정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한 것이 호남 표심에 어떤 영향을 주리라고 보는가?

호남이건 영남이건 나는 그런 것 상관 안 하는 사람이다. 정치도 큰 틀로 해야지, 좁은 나라에서 수도권·비수도권이 어디 있고, 영남·호남이 무슨 의미인가. 긴 호흡으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차근차근 밟아 가면 된다. 정치 지도자들이 조그만 전술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박대표의 행보가 여당에 위협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박대표에 대해 나는 긴장 안 한다. 개인적으로야 할말이 있지만, 여당 의장으로서 제1 야당 대표의 말에 일일이 토 달고 싶지 않다.

앞으로 정국 구도가 열린우리-한나라-민노 3당 체제로 간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민주당은 왜 뺐나?

이념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단 민노당은 강자가 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양강 체제로 갈 것이다.

민주당과는 합할 생각이 없는가?

이 문제를 왜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민주당과 같이 살다 분당한 것이 아니라 범국민적인 새 정당을 만들 때 참여한 것이다. 의원 1백52명 중에 민주당 출신이 몇 명이나 되나? 우리당에 공감해서 온다면 모를까, 당 대 당 통합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얘기다.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인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했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협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직 정치 혁명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뭘 벌써부터 경쟁인가. 역할 분담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동영 장관은 선거를 훌륭하게 치른 뒤 입각했고, 뒤를 이어 당의 기반을 다지고 새롭게 건설하는 일은 내 책임이다. 천정배 원내대표와 내가 투톱 시스템으로 맡아 하고 있지만, 최종 책임은 결국 의장에게 있다.

천정배 대표와 신의장을 비교하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신기남이는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축구로 치면 천대표는 골을 넣는 센터포워드고, 나는 중원을 책임지는 리베로다. 그런데 역할로 보면 당 의장이 훨씬 어려운 것 같다. 원내대표는 입법만 잘 하면 되지만 당의장은 민심을 읽어야 하고, 당원들 얘기를 다 들어야 하고, 당의 로드맵도 제시해야 한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개개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고 당의 역사적 방향을 생각하며 단호하고도 신중하게 대처해 가겠다. 비판을 각오하고 있다. 그래서 마인드컨트롤 많이 하고 있다.

이해찬 대망론도 나오고 있는데, 신의장은 대권 꿈이 있는가?

나는 더 갈고 닦아야 할 원석이다. 아직 쇼윈도에 내걸 상품까진 아니다.

다음 의장 선거에 다시 출마할 생각인가?

아직 결정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느슨하게 흩어져 있는 당을 묶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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