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포털에 ‘결사 항전’ 나섰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협회 차원의 종합 사이트 설립 검토…콘텐츠 헐값 제공에 강력 반발
요즘 신문 업계를 울상 짓게 만드는 두 가지 적(敵)이 있다. 하나는 아침마다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 다른 하나는 포털 사이트다. 특히 포털 사이트는 날이 갈수록 영향력과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어 위협적이다. 다음(daum.net)·네이버(naver.com) ·네이트(nate.com)와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수십 개 방송·신문사와 제휴하고 실시간에 뉴스를 제공한다.

IT업체 회사원인 류제일씨(26)는 “포털 사이트에 가면 다양한 뉴스를 볼 수 있어 굳이 따로 신문을 볼 필요가 없다.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라고 말한다. 한 중앙 일간지 인터넷 담당자는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제 살 깎아먹기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혼자 빠질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뉴스 콘텐츠를 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신문사들이 신문협회(회장 홍석현, 현 중앙일보 회장)를 중심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7월8일 신문협회 산하 기구인 기조위원회(회장 최맹호 동아일보 경영전략실장)는 이사회에서 포털 사이트 제공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데 동의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조위원회는 신문사들끼리의 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협의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응 방안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신문사끼리 힘을 모아 자체 포털 사이트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지난 7월30일 신문협회 대외협력사업위원회는 종합 포털 사이트 설립을 정식으로 논의했는데, 9월 초 신문협회 사장단회의에서 이 사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신문협회는 소속사(49개 중앙·지역 신문사) 뉴스 콘텐츠를 이용해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와 경쟁하게 된다. 신문협회 관계자는 “콘텐츠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 새 포털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수익성이 있는지 검토 중이다. 지난 7월 사장단 회의에서도 언급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KTF ‘파란닷컴’ 출범이 자극제된 듯

신문협회가 이처럼 포털 업체와 ‘맞짱’을 뜨게 된 데는 8월1일 출범한 포털 사이트 ‘파란’(paran.com)이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KT의 계열사인 KTH는 8월1일 파란을 출범시키면서 5개 스포츠지(스포츠투데이·일간스포츠·스포츠조선,·스포츠서울·굿데이)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었다. 계약 액수는 2년 동안 총액 1백20억원(신문사당 월 1억원)으로 다른 포털 사이트에 비해 높은 액수였다. 하지만 계약 내용에 KTH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포털에 콘텐츠를 팔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아 사실상 독점 계약이라는 논란이 빚어졌다.

5개 스포츠 신문 노조는 비상대책위까지 꾸리고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파란닷컴의 등장으로 기존 포털 사이트들의 관행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7월12일 비대위는 “포털 사이트들은 지금까지 원가 개념조차 갖추지 않고 터무니없이 낮은 값에 기사를 받아왔다. 콘텐츠 판매료의 적정가 산정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포털 사이트들은 스포츠신문에서는 월 6백만~1천2백만원 가량, 큰 신문사에서는 한 달에 1천만원, 작은 신문사에서는 월 5백만원 정도의 헐값에 뉴스를 사 왔다. 어떤 언론사에는 아예 무료로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현재 가격이 불합리하다고 느낀다면 협상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갈등은 매체 환경 변화에 따른 과도적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신문협회가 자체 포털 사이트를 만들어 기존 포털 업체와 맞서자는 구상은 지난 5월 한겨레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중동’과 ‘한경대’로 갈려 있는 신문 업계가 포털과의 싸움에서는 일치 단결하는 모습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