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체면 구긴 ‘마라톤 테러범’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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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이번 올림픽을 치르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테러 방지에 열을 올렸다. 미군과 미국 보안요원의 원조까지 받으며 검문 검색을 했고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막았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을 망친 것은 이슬람 광신도가 아니라 예수 광신도였다.

8월29일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브라질 반데를레이 데 리마 선수가 37km 지점을 달릴 때, 한 괴한이 뛰쳐나와 리마 선수를 밀쳐 넘어뜨렸다. 리마 선수는 1위로 달리고 있었으나 사고 이후 페이스를 잃고 3위로 골인하는 데 그쳤다.

이 날 ‘마라톤 테러’를 일으킨 사람은 아일랜드의 코넬리우스 호런(57)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예수의 재림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입고 있던 붉은색 퀼트에는 이스라엘의 상징(다윗의별)이 붙어 있었고 몸 앞뒤에는 ‘재림주가 다가온다’ ‘예언의 이스라엘 성취’라는 글귀를 적은 종이를 걸었다. 호런은 원래 카톨릭 신부였으나 10여 년 전 성직을 박탈당했다.

코넬리우스 호런은 이미 ‘스포츠계의 오사마 빈 라덴’으로 악명이 높다. 2003년 7월 영국 실버스톤 자동차 경주 대회 도중 ‘성경을 읽으라’고 쓴 플래카드와 함께 차량 사이로 들어가 시합을 중단시킨 바 있다. 그 때 트랙에는 경주차들이 시속 240km로 달리고 있던 중이었다. 호런은 이 난동으로 징역 2개월을 살았다. 호런은 윔블던 테니스 대회와 각종 크리켓·럭비 시합 때도 난입을 시도했으며, 올해 런던 마라톤 때도 비슷한 짓을 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응당 올림픽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을 호런은 그러나 시합 당일 브리티시 항공편으로 유유히 그리스에 입국했다. 그리스는 올림픽 치안 유지 비용에 1조8천억원을 썼지만 단 한명의 관중을 막지 못해 마라톤 발상지의 자존심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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