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었나, 죽었나 그것이 문제로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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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 한국 남성 50%가 발기부전
1987~1989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진행된 ‘남성 건강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 대상 지역에 사는 건강하고 평균적인 중년 남성의 성 기능을 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이 성 기능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응답자의 10%는 완전히 성 불능 상태였으며, 25%는 심각한 성 기능 장애를, 17%는 미미한 성 기능 장애를 호소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그 자료를 근거로 미국의 발기부전 남성 숫자를 추산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2천만 명이 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숫자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조사를 맡은 르로이 니버그 박사(NIH 비뇨기과 과장)는 “남성들이 자신의 성적 약점을 쉽게 공개하지 않아서 숫자가 적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발기부전의 정의는 간단하다. ‘만족한 성생활에 필요한 발기가 안 되거나, 유지가 잘 안되는 경우’를 뜻한다(1992년 NIH). 남성 건강에서 발기부전이 중요한 이유는, 그 질환이 남성의 삶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 연구를 주도한 존 매킨리 박사는 발기부전이 “우울증, 심지어 자살의 원인이 된다”라고 말했다.

고혈압 등 성인병이 ‘남성 폐경’ 불러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발기부전 유병률 조사에서 매사추세츠 연구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초, 대한남성과학회(회장 김제종 고려대 의대 교수)는 한국 남성들의 발기부전 유병률과 위험 인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조사 대상은 40~80세 남성 1천5백70명이었고, 조사는 4~7월에 구조화한 설문지를 통한 1 대 1 면접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용은 간단했다. ‘조사 대상자의 49.8%가 약하거나 심한 발기부전 증세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도표 참조).

연령 별로는 70대가 가장 심해서 82%가 발기부전 증세를 갖고 있었다. 60대도 79.7%가 발기부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반면 40, 50대는 비교적 낮아서 33.2%와 59.3%가 발기부전이었다. 조사를 주도한 안태영 교수(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는 “처음으로 국내 발기부전 환자의 규모를 정확히 측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남성과학회에 따르면, 그동안 서너 차례 발기부전 유병률 조사를 했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2002년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한국 남성의 85%가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조사 방법이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흥미 있는 조사도 진행되었는데, 사전 연구(pilot study)가 그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40~80세 남성 3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사흘 시차를 두고 남녀 면접원이 교차 인터뷰를 실시한 것이다. 발기부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할 때 면접원 성별(性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세 문항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세 문항은 ‘①지난 4주 동안 성행위시 몇 번이나 발기했나? ②지난 4주 동안 성교가 가능한 발기는 몇 번이었나? ③지난 4주 동안 성교를 할 때 몇 번이나 파트너의 질에 삽입했나’였다. 점수는 ‘항상 그렇다’ 5점, ‘전혀 안되었다’ 1점으로 매겼다. 그 결과 남성 면접원이 ①번 문항을 물었을 때는 평균 3.8점이 나왔는데, 여성 면접원이 물었을 때는 3.1점이 나왔다. ②,③번 문항도 남성 면접원이 물었을 때는 각각 4.0점과 4.1점이 나왔는데, 여성 면접원이 물었을 때는 3.3점과 3.5점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여성에게 성적 능력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전 연구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발기부전 같은 성 관련 연구를 할 때 면접원의 성별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뜻한다”라고 김제종 교수는 말했다.

보통 남성은 40대에 성생활의 최고점에 도달한다. 육체적인 관점에서 30대에 정력과 호르몬 분비가 가장 왕성하지만 이때에는 지나치게 빠른 흥분과 통제력 부족 때문에 정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성적 흥분을 적당한 속도로 조절하고, 여자를 리드하고, 흥분을 연장시켜 정말 황홀한 순간을 맞는 나이는 40대이다. 그러나 40대에 접어들면 불행하게도 성적 욕망을 좌우하는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줄어든다. 당연히 음경의 기능도 서서히 저하한다. 음경에 혈액이 차야 발기가 되는데, 혈액을 운반하는 동맥이 좁아지면서 혈액 양이 달리는 것이다.

자포자기 ‘삼손 콤플렉스’ 떨쳐야

이를 발기부전이라고 하는데, 간혹 ‘남성 폐경’으로도 불린다. 따지고 보면 발기부전 원인은 대부분 건강에서 비롯된다. 이번 연구에서도 그 사실이 입증되었다. 정우식 교수(이화여대 의대·비뇨기과)는 발기부전이 성인병의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 4명 중 1명이 경미하거나 심각한 발기부전을 겪고 있으며, 발기부전으로 방문한 환자의 12%가 당뇨병 환자로 판정된다. ‘성인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고혈압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환자 7명 가운데 1명이 발기부전을 호소한다.

그 외에도 발기부전을 유발하는 만성 질환은 무수히 많다. 중풍·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 척수 손상·우울증·류머티스관절염·신부전증·내분비 질환·고지혈증·소화기궤양 질환 등이 거기에 속한다. 심혈관 질환은 특히 위험해서 그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의 약 40% 정도가 성교 불능 가능성이 있다. 조루증이나 사정 장애, 성욕 저하증 같은 성 기능 장애도 발기부전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 인자가 질병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성을 시들게 하는 위험 인자는 그뿐만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인자는 역시 시간이다. 시간으로 인한 노화는 필연적으로 모든 육체 기능을 떨어뜨린다. 또 다른 인자는 남성 자신의 지나친 기대이다. 남성들은 흔히 ‘삼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특히 40~50대에게는 그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친구에게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부부 사이의 갈등·분노·힘겨루기도 발기부전을 촉발한다. 일과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무시당하고 있다는 소외감, 건강에 대한 두려움 따위도 남성을 위축시킨다.

과도한 약물 복용과 흡연 그리고 음주도 한몫 거든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가 자주 먹고 마시는 콜라·설탕·패스트푸드를 ‘섹스 킬러’라고 지목한다. 육류·버터·치즈·아이스크림에 든 포화지방산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위를 급격히 하강시켜 성욕 대신 하품만 나오게 만든다. 설탕은 혈관의 침전물 형성을 촉진해 심혈관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감자튀김과 콜라는 동맥을 막아 피의 흐름을 감소시킨다. 감자튀김은 졸리게 하고 기력을 떨어뜨린다. 패스트푸드는 최고급 휘발유를 채워야 할 자동차에 보통 휘발유를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마르쿠스 메트카 외 지음 <남성건강혁명>에서).

나이 탓 말고 치료하면 성 즐길 수도

과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발기가 안 되면 ‘나이 탓인데 어쩌겠어!’ 하고는 어깨를 한번 들썩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자포 자기 시대’는 지났다. 의학 발달과 발기부전제 덕에 노년에도 성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발기부전이 오면 자기만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전세계에는 더 많아서 약 1억7천만명이 심각한 성 기능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자신감을 갖고 치료하면 얼마든지 원상 복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가장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방법은 역시 경구 복용 약물(발기부전 치료제)이다. “환자 10명 가운데 7명 정도가 발기부전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라고 안태영 교수는 말했다. 효과가 없는 나머지 3명은 발기 능력이 전혀 없는 환자인데, 이들은 인공 해면체를 삽입하거나, 혈관을 확대하는 음경 수술을 통해 치료한다. 발기부전의 원인이 정신적인 데 있는 경우에는 심리 상담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역시 발기부전의 가장 좋은 치료법은 예방이다. 적당한 운동과 식사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하면 얼마든지 발기부전을 늦출 수 있다. 관건은 언제나 당사자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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