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신 삼국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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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 치료제 시장 ‘후끈’…비아그라·시알리스·레비트라 3파전
신(新) 삼국지? 최근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2월2일, 의약품 시장 전문 조사 기관인 IMS코리아는 올해 3/4분기 국내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제품별 점유율을 발표했다. IMS코리아의 발표에 따르면, 1위는 56.7%를 점령한 비아그라였고, 2위는 31.7%를 점유한 시알리스였다. 3위는 10.7%를 차지한 레비트라.

이 자료만 놓고 보면 지난 1년간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국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가 여전히 ‘대국(大國)’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아그라의 단단한 아성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를 판매하는 한국릴리와 바이엘·GSK 관계자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까닭을 알려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삼국지가 시작된 것은 1999년이었다. 그 해, 한국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사랑의 묘약’으로 칭송받던 비아그라였다. 당연히 시장은 비아그라의 독차지였다. 한 알만 먹어도 성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비아그라의 효력은 수많은 발기부전 환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환자들의 뜨거운 환영과 열렬한 감사에 힘입어 비아그라의 매출액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1999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1백2억~4백억 원에 달하는 시장을 독식하던 비아그라가 적수를 만난 것은 2003년 9월 말이었다. 외국에서 세를 키우던 시알리스(릴리)와 레비트라(바이엘·GSK)가 동시에 뛰어들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적장은 비아그라가 3년간 다져놓은 ‘방어벽’을 쉽게 허물지 못했다. 시알리스가 ‘효과 지속 시간 36시간’을 무기로 내세워 비아그라의 방어벽을 흔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레비트라도 강직도(단단함)를 무기로 들고 나와 비아그라의 영토를 침범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성(守城)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비아그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기네가 차지한 ‘너른 영토’를 지키기 위해 4년간 검증된 비아그라의 안전성을 무기로 간간이 공세를 펼쳤다. 그런가 하면 대학 교수와 기자들을 통해 비아그라의 뛰어난 효능을 재확인하고, 그 내용을 시중에 전파해 나갔다. 2004년 6~9월, 비아그라는 김세철 교수(중앙대·비뇨기과)에게 자문해 발기부전 환자 80명, 남편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적이 있는 배우자 40명을 대상으로 ‘비아그라 발매 후 5년, 발기부전에 대한 의사·환자·배우자의 인식 변화’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비아그라 복용자와 그 배우자의 만족도는 각각 75%·73%로 나타났다. 성관계 횟수를 묻는 질문에 대해 복용자는 ‘발기부전 최초 확인 당시’에는 한 달 평균 2.4회였지만,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에는 4.9회로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배우자도 발기부전 최초 확인 당시 2.1회였던 월평균 성관계 횟수가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5회로 늘어났다고 대답했다.

비아그라는 늘어난 성관계 횟수만 무기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복용자의 자신감까지 한껏 높여주었다. 발기부전 최초 확인 당시 70점(100점 만점)이었던 자신감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89점으로 상승한 것. 대인 관계와 사회 생활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76점에서 87점으로 도약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복용자들은 한결같이 ‘부부가 더욱 친밀해졌다’(69%)고 답했다. 24%는 ‘아내가 친절해졌다’고 대답했고, 18%는 아내 앞에서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조사 자료는 비아그라의 아성을 지키는 데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시알리스와 레비트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들도 더 많은 환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홍보 전선에 뛰어들었다. 시알리스는 강력한 무기를 동원해 비아그라의 허점을 공략했다. ‘음식물 및 알코올 섭취와 상관없이 복용 후 24~36시간 효과가 지속된다’는 것이 시알리스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다. 이는 곧바로 고지방식 음식을 섭취하면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비아그라의 약점을 들추어냈다.
각기 다른 효능·조사 결과 내세워 치열한 각축

시알리스는 24시간 이상인 ‘효과 지속 시간’과 16분인 ‘효과 발현 시간’을 이용해 주 5일 근무자를 공략하기도 했다. 즉 금요일 저녁에 시알리스를 복용하면 일요일 오전까지 언제든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큰 소리쳤다. 이 역시 효과 지속 시간 4시간, 효과 발현 시간 1시간인 비아그라의 약점을 공격하는 ‘창’으로 적절히 활용되었다(레비트라의 효과 지속 시간은 4시간이며, 효과 발현 시간은 시알리스와 비슷하다).

그러나 손환철 교수(서울의대·서울특별시립보라매병원)·허정식 교수(제주의대·비뇨기과) 팀이 발기부전 환자 1백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발기부전 치료제의 약효 발현 시간은 각 업체가 주장하는 내용과 약간 다르다. 시알리스는 평균 79.5분이었으며, 레비트라는 평균 44분이었다. 반면 비아그라는 평균 57분만애 약효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일 뿐, 환자 가운데에는 업체들이 주장한 대로 15~16분에 효과가 발현된 사람도 있다. 손교수는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발현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릴리는 발기부전 환자들이 주로 주말에 성관계를 갖는다며, 시알리스가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근거로 한국릴리는 시알리스 발매 1주년을 맞아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발기부전 환자 1백20명을 대상으로 1 대 1 면접 조사한 결과, 90%가 주말에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금요일 23%, 토요일 55%, 일요일 12%).

그 외에도 한국릴리는 프랑스에서의 ‘선전’(두 달 전부터 점유율에서 비아그라를 앞서기 시작함)을 홍보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영광(출시 석 달 만인 지난 10월부터 비아그라의 점유율을 앞섰음)을 알리며 대대적인 제품 알리기에 나섰다.

한 40대 전문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발기부전에 걸렸다면 어떤 약을 처방해주고 싶느냐’는 질문에 ‘시알리스’라고 대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효과 지속 시간이 짧으면 잠자리에 대한 강박 관념이 생겨 성행위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는 젊은 환자는 시알리스를, 나이 든 환자는 비아그라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시알리스는 젊은 환자, 발기부전 증세가 경미한 환자, 성생활을 자주 하는 환자가 찾는다. 발기부전이 심하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 그리고 성생활이 뜸한 환자는 비아그라나 레비트라를 선호한다.”

반면 레비트라는 주로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무기로 들고 나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비뇨기과 의사 1백89명에게 ‘가까운 친구가 발기부전을 겪고 있을 때 추천하고 싶은 약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가운데 63%가 ‘레비트라’라고 답변했다. △의사 2백명에게 ‘발기부전 치료제 가운데 발기 강직도가 우수한 제품은?’ 하고 물었다. 응답자 52%가 ‘레비트라’라고 답했고, 30%와 9%가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를 꼽았다.

레비트라는 해외 연구 자료를 무기로 비아그라와 시알리스가 점령한 영토를 공략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에는 독일의 발기부전 환자 1백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자료도 있었다. ‘가장 선호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47%가 레비트라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응답자들은 그 이유를 발기 강직도가 좋고 발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이·증상 따라 선호도 달라

벨기에 연구진이 조사한 자료도 공개되었다. 발기부전 환자 4백18명에게 레비트라·비아그라·시알리스를 최대 용량으로 최소 네번 이상 복용시킨 뒤 ‘어느 제품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더니, 1백50명(36%)이 레비트라, 1백35명(32%)이 시알리스, 1백33명(32%)이 비아그라라고 응답했다. 특히 50세 이상 환자가 레비트라를 선호했다는 것이 바이엘·GSK측의 부연 설명이다.

발기부전 원인에 따라 약 선호도가 달라진다는 연구 자료도 쓸 만한 무기로 등장했다. 즉 심인성 발기부전(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이 원인) 환자들은 시알리스·레비트라·비아그라 순으로 발기부전제를 선호하는데, 기질성 발기부전(당뇨병·고혈압 등이 원인) 환자들은 레비트라·비아그라·시알리스 순으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바이엘·GSK측은 발기부전 증상에 따라 발기부전 치료제 선호도도 달라진다며 날을 더 날카롭게 세웠다. 예컨대 발기부전 증세가 경미한 환자들은 시알리스·비아그라·레비트라 순으로 선호하지만, 증세가 심한 환자들은 레비트라·시알리스·비아그라 순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의 당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의 방어벽은 꿋꿋했다. 아니,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 한국화이자제약 홍보부 정지희 과장의 주장이다. “올해 3/4분기 점유율은 지난해 4/4분기 점유율에 비해 10% 포인트 높다. 그만큼 환자들이 비아그라의 안전성과 효과를 더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는 시알리스와 레비트라의 점유율이 주춤거리는 이유를 ‘신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지고, 신규 재고량이 소진된 탓’으로 분석한다. 한국릴리나 바이엘·GSK의 분석은 다르다. 그들은 올해 전체 점유율을 놓고 보면 오히려 시알리스나 레비트라가 약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한국릴리 김경숙 부장은 비아그라가 5년 전에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선점한 덕을 아직까지 보고 있다며 “시알리스는 1년2개월 만에 점유율 30% 이상을 기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시장 판도에 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한다.

2005년에는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 더욱 짙은 전운이 드리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릴리는 이미 세 제품이 분할한 영토보다 ‘미지의 영토’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발기부전 환자를 약 4백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 병원을 찾는 환자는 7~10%. 한국릴리는 발기부전은 치료하면 고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나머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시알리스를 처방받도록 할 계획이다. 김경숙 부장은 시알리스의 내년 시장 점유율 목표가 40~45%라고 말했다.

여성용 비아그라도 곧 발매될 듯

바이엘·GSK도 한국릴리와 비슷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 90%를 병원으로 가게 하기 위해 발기부전의 실체를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미 레비트라는 지난 11월 발기부전 ARS 콜센터(ARS 080-0044- 114)를 개설해, 발기부전을 진단하고, 잘못 알려진 발기부전 상식과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바이엘 명성옥 차장은 “2007년이면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률이 15% 정도 증가해 시장 규모가 1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레비트라는 시장 점유율 15%를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비아그라도 자만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지희 과장은 2005년에도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비아그라의 안전성과 효과를 더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발기부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여러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남성 건강과 관련한 행사나 연구를 자주 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지금처럼 ‘삼국지’가 가능할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아제약이 국내 최초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출시하고, 여성용 비아그라가 판매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쭦

도움말 주신 분:안태영 교수(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손환철 교수(서울의대·서울특별시립보라매병원), 박남철 교수(부산의대·비뇨기학과교실), 하태준 원장(선릉탑비뇨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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