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 “부시의 개성 방문, 꿈만은 아니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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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장관
2005년에 주목되는 각료를 꼽으라면 단연 정동영 통일부장관이다. 2004년이 한·미 관계를 다지는 한 해였다면, 2005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켜야 한다는 기대감이 참여정부 안팎에서 높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취임 이후 한껏 몸을 낮추던 정장관이 새해 들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는 정장관을 1월6일 만났다.

2005년이 남북 관계에 전기가 되리라는 기대가 많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2000년 6·15 정상회담으로 한반도가 탈냉전으로 가는 물꼬를 텄지만, 큰 바다를 이루지는 못했다. 2005년에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 또 북한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국제 사회에 나서도록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올해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세 가지 추진 방향이 있다. 첫째가 평화 증진, 둘째가 상생 협력, 셋째가 실용적 접근이다. 북한도 실리·실적·실력 3실주의를 강조해오고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대북 송금·조문·탈북자 문제로 북한에 여러 번 유감 표명을 했다. 북측 반응이 좀 있는가?

기다려 보아야 한다(웃음).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의를 다했다고 본다. 서로 간에 두터운 신뢰가 있다면 돌발 변수가 생겨도 그냥 넘어가는데, 신뢰의 두께가 얇다 보니 가다 서다 출렁거린다. (남북 대화가 끊긴 지) 6개월이면 긴 편이다. 북한 처지에서도 올해는 선군정치 10년, 광복 60년, 노동당 창건 6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북한이 이미 공존하고 싶다는 희망을 외부 세계에 던졌는데, 그 희망을 성취하느냐 망가뜨리느냐 하는 갈림길이 지금이다. 우리는 돕고 싶다.

일각에서는 정장관이 너무 저자세로 나가는 것 아니냐, 성과를 내기 위한 초조감의 발로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할 바를 다 하자는 것이다. 장관을 맡으면서 주위 스승들로부터 들은 금과옥조 1조가 신중함이다. 신중하게 대처해 왔다고 자부한다.

올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금이 적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참여정부 처지에서는 힘 있게 일할 수 있는 첫해이다. 지난 1~2년은 소용돌이였고, 올해는 여러 모로 조건이 갖추어졌다. 임기 중반인 데다, 역사적인 의미도 남다르다.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언론이 도와주어야 한다. 남쪽은 철저하게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이고, 북은 그런 남쪽의 여론에 간접으로 영향을 받는다. 언론과 정부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올해를 한반도 탈냉전 제2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인식을 공유했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은 언급하면서도 본인이 특사 역할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견해이다.

상식적으로 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게다가 김 전대통령은 현직 대통령과 현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 있게 풀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했으면 하면서도 정작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6자 회담이 먼저라는 것인가?

정상회담이 느닷없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 조성이 필요하고, 상대가 있는 것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가능한 한 기사를 안 만드는 것이 좋겠다. 되면 되는구나 해야지(웃음).

북한이 6자 회담 테이블에 언제나 나올 것으로 보는가?

(북한) 외무성이 얘기한 대로 1월20일 미국 새 정부의 메시지를 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얼마 전 중국에 갔을 때 북한의 3불변 원칙에 대해 들었다. 북한이 6자 회담이 유효하다는 데 변함이 없고, 한반도 비핵화 의지에 변함이 없고,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푼다는 데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불변 원칙을 북한이 중국에 확인해주었다고 하는데, 되풀이된 원칙이라도 의미가 있다.

일본 산케이 신분은 오늘 ‘북한이 2월 초까지 6자 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방침으로 보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상황이 다시 나빠지는 것 아닌가?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북핵 문제에서 지난해 11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의 LA 연설 이전과 이후는 확실히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LA 연설과 칠레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법을 중심에 자리 잡게 하고, 대북 강경론에 쐐기를 박은 의미가 있다. LA 연설을 한·미 동맹의 균열로 본 사람들은 자기 말을 되짚어 봐야 한다.

미국이 당분간 강경론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본다는 얘긴가?

물론 기회의 창이 언제나 열려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개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보고, 미국의 인내심도 그리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이 협력할 공간이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해찬 총리에게 한국의 북핵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에 부시·후진타오·고이즈미·푸틴 등 4강 지도자들을 전방위로 접촉해 우리의 북핵 3원칙(북한 핵 불허용, 평화적 해결, 한국이 중심 역할)과 3불가론(무력 사용 불가, 북한 봉쇄 불가, 북한 붕괴 불가)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내가 중국에 전한 메시지도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의 북핵 원칙이 주변국들에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다고 보는가?

그렇다. 특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노대통령이 토론할 당시 주제는 이것 하나였다. 블레어 총리의 질문을 보면 처음에는 북한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론이 강했다가 토론이 끝날 즈음엔 (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노대통령도 이 토론을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블레어는 부시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4강 정상들과 깊이 있게 주고받은 내용을 김정일 위원장이 들어야 한다. 국제 정세에 대한 최고급 정보를 정확하게 읽을 때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성공단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공도 들였고 세일즈도 성공적으로 했다. 대국민 세일즈, 대미·대중 세일즈를 했고, 다보스 포럼에 가서도 개성 세일즈가 핵심 중의 하나다. 대통령도 강조한다. 세계 시민들이 ‘한국’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북핵·비무장지대·김정일·갈등 따위다. 삼성이 세계 최고라는 걸 알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인지는 잘 모른다. 코리아 브랜드라고 하면 오히려 도움이 되기보다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결정적인 게 핵 문제다. ‘개성’은 올림픽·월드컵처럼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단박에 깨뜨릴 수 있는 상징성이 크다. ‘개성을 통해 냉전을 넘자’며 공무원들을 닦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성공단 냄비공장(리빙아트) 사장님의 간절한 소원이, 땅을 1천평밖에 못 받았는데 주변 땅을 1천평만 더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주변 업자들이 다 반대해서 공무원들이 주저하는 것을, 장관이 책임질 테니 더 주라고 했다. 리빙아트가 준 상징성은 크다. 눈치 보고 따라가는 사람과 먼저 치고나가는 사람은 보상이 달라야 한다.

하지만 ‘메이드 인 개성’으로는 미국 등에 수출하기가 어렵고, 전략물자 반출 협약도 발목을 잡고 있다. 개성공단 성공 여부 역시 미국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개성공단 주도권은 우리가 쥐고 있고, 쥐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하는 것이다. 원산지 표시 문제는 미국과 협력해서 풀면 된다. 그래서 북·미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노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개성 방문을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우리의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꿈을 믿으면 현실이 된다.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남북 관계 진전과 해결 정도에 따라 가능한 꿈이다. 부시 대통령이 도라산까지는 오지 않았나.

11월 부산에서 에이펙이 열릴 때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개성 방문을 실제로 추진할 생각인가?

좋은 프로젝트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22개국 정상이 부산에 모이는데, 그냥 단순한 세리머니가 아니다. 한반도의 핵심 아젠다가 평화인데, 2005년 11월에 뭔가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또 언제를 기약하겠는가. 기회가 왔을 때 북한도 기회를 잡아채야 한다.

남북 관계가 풀리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채널이 없어서라는 분석이 많다. 남북 간에 ‘공중전’만 펼치는 건 아닌지, 실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한 해 동안 북한을 오간 사람이 관광객 빼고 2만2천명이다. 국회의원·교수·변호사·언론인·경제인 등 모두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여론주도층이다. 세계에서 북한과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잘 파악하고 있는 건 한국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외교 안보 수장으로서 북쪽 사정을 꿰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깊숙한, 인사이더들만 공유하는 정보까지 전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빈번한 인적 교류가 있다.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북한의 한 당국자가 베이징에 나오거나 하면 우리 통일부 과장하고 빈번하게 통화한다. 이것은 상징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최근 한 언론이 북한의 전시 세칙을 보도했다. 북한은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

어떤 나라나 유사시 대응 방안이 있다. 우리나라 을지훈련 같은 것 아니겠나?

북한은 국가보안법을 주요 걸림돌로 지목했다. 국보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보안법도 냉전 시대의 한 축이다. 이미 사문화한 법으로 대한민국호의 브랜드 네임에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참여정부가 한때 대북 특사로 검토할 정도로 대북 문제에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그런 박대표가 강경해진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당 지도자에 대해 통일부장관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지난해 총선 직후 박대표와 5·3 협약을 했을 때만 해도 자세가 좋았다. 당시 남북관계 특위를 제안한 것은 남북관계발전기본법과 보안법 개폐 문제를 큰 틀에서 다루자는 취지였는데, 박대표가 세부 내용을 특정짓지 말자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박대표도 좀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 후 형법 보완이라는 당론을 2월에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가?

보안법은 정치적 안건이다. 정치 세계에서 절대 불변은 없다. 종교의 세계가 아니다.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다. 책임 장관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외교부 고유 업무는 기본적으로 주무 장관이 관할한다. 옥상옥이 되면 안되니까. 다만 재외 국민이나 여행객, 비즈니스맨들이 외교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이 크고, 부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기 때문에, (외교부가)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11월에 외교부 혁신에 대한 청와대 보고가 있었는데, 언론에는 대사직 개방 같은 일부 내용만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외교부의 조직·인사·문화 등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가 다 포함되었다.

홍석현 주미대사를 추천한 사람이 정장관이라는 얘기가 있다.

철저하게 노대통령 아이디어다. 나는 심부름을 했을 뿐이다.

정부통령제 개헌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정동영-홍석현 러닝메이트 얘기도 나온다.

통일부장관한테 무슨 러닝메이트가 필요한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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