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거목이 되어 오리라
  • 성호준 (중앙일보 기자) ()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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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NBA 선수 하승진, 야오밍 못지 않은 센터 자질 지녀
지난 1월8일 미국 프로 농구(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홈구장인 시애틀 인근 포틀랜드의 로즈가든. 마이애미 히트와 트레일블레이저스의 경기 종료 1분11초 전, 키 223㎝인 신인 센터가 코트에 들어섰다.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나온 이 동양인은 한국인 하승진(19). 100년 한국 농구사에 큰 획을 그은 장면이었다.

하승진의 유니폼 뒤에 새겨진 HA라는 글자와 등번호 5번은 국내 신문과 방송의 스포츠 뉴스를 장식했다. 트레일블레이저스는 ‘개척자들’이라는 뜻이다. 농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NBA에 첫발을 디딘 ‘선구자’ 하승진에게는 썩 어울리는 이름이다. 1분11초라는 짧은 시간 때문인지 하승진은 데뷔 경기에서 득점과 리바운드가 없었다. 사실 공도 잡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어시스트 2개를 기록했다.

농구 팬들은 하승진을 중국의 ‘만리장성’ 야오밍(24·휴스턴 로케츠)과 비교하고 있다. 실제 두 선수는 공통점이 많다. 두 선수 모두 아시아 출신으로 220㎝가 넘는 거인이고 농구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승진의 아버지 하동기씨(46)는 국가대표 센터를 거쳤다. 야오밍의 아버지 야오지유안도 중국 농구 국가대표를 지냈다. 그의 키는 198㎝로 하동기씨(204cm)보다 작다. 그러나 야오밍의 어머니 팡펭디는 190㎝이다. 오랫동안 중국 여자 농구의 주전 센터를 맡은 걸출한 선수였다. 반면 하승진의 어머니 권용숙씨는 사이클 선수였고 키가 168㎝이다.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두 선수의 현재 위상은 천양지차다. 하승진이 지난해 전체 46순위로 NBA에 지명된 데 비해 야오밍은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다.

NBA에서 드래프트 순위 30위가 넘으면 일단 지명만 해놓고 계약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6월 하승진을 지명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하승진에게 부상 등의 문제가 생기자 시간을 질질 끌었다. 결국 시즌이 시작되고 2개월이 지난 12월에야 계약했다.

연봉 차이도 엄청나다. 야오밍은 2002년 계약 당시 연봉 4백43만 달러로 3년 계약을 맺었다. 반면 트레일블레이저스와 하승진의 에이전트는 3년이라는 계약 기간만 발표하고 연봉 액수를 알리지 않았다. 루키 최소 연봉(약 34만 달러) 선에서 계약한 것으로 보인다.
“고1 때보다 체력 100배 좋아져”

야오밍이 개막전 주전으로 뛴 데 비해 하승진은 별다른 부상이 없었는데도 NBA 계약과 동시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팀이 아직 하승진을 전력의 일부분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당분간 승패가 확실히 결정된 경기에만 나올 것으로 보인다. 부상 선수들이 회복하면 하승진은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라 로스터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라도 방출될 위험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승진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NBA의 탱크 같은 센터들과의 몸싸움에서 버틸 힘도 부족하다. 점프력도 대단치 않고, 야오밍처럼 빠르지도 않다. 알고 있는 농구라고는 국내 고등학교 농구와 짧은 미국 마이너 리그의 경험뿐이다. 당연히 코트에서 시야가 좁다.

반면 야오밍은 어릴 적부터 체육 엘리트로 성장했다. 18세에 중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평균 10.5 득점, 6.0 리바운드, 2.2 블록슛을 기록했다. 20세이던 2002년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평균 21.0 득점, 9.3 리바운드, 2.3 블록슛을 기록했다. 대회 슛 성공률 1위, 블록슛 1위, 득점 3위, 리바운드 3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냈다. 미국·유고 등 강호들을 상대로 낸 점수였다. 야오밍은 2003년 NBA 올스타와 신인왕에 뽑혔고 모든 종목을 아우르는 세계 최고 권위의 라우레우스 신인상을 받았다.

하승진은 19세이다. 짧은 구력에 비하면 하승진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아버지 하동기씨는 “키가 아주 컸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강한 훈련을 하면 뼈나 관절이 다칠 위험이 있어 일부러 농구를 늦게 가르쳤다”라고 말했다. 하승진은 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으나 부상으로 삼일상고 1학년 때인 2001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웠다. 2001년과 2002년 하승진은 공수 전환을 따라 가지 못했고, 골밑에서 다른 센터에게 밀려났다. 무엇보다 농구 경기 40분을 뛸 체력이 안되었다.

그래서 2003년 2월 미국 에이전트들이 하승진을 테스트하러 한국에 왔을 때 국내 농구인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NBA 진출은 말도 안된다고 평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 스카우터들은 하승진의 숨은 재능을 높게 평가해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그 덕인지 2003년 그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하승진으로 인해 삼일상고는 무적이 되었다. 당시 하승진을 가르친 윤세영 전 삼일상고 감독은 “운동을 시작한 1학년 때와 비교하면 체력이 100배쯤 좋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구단장 “몇년 내 우리 팀 주전 센터 될 것”

하승진의 장점도 많다. 무엇보다 정통 센터의 체구를 가졌다는 점이다. 223㎝라는 키도 그렇지만 가슴둘레가 크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골 밑에서 버틸 에너지가 그의 큰 가슴 속에 잠재해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철저히 받으면 어떤 센터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골 밑에서 밀려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는 야오밍에 비해 유리한 점이다.

하승진의 또 다른 가능성은 부드러운 슛터치다. 센터 서장훈이 좋은 미들슛과 자유투 능력을 갖고 있듯이 하승진의 슛 감각도 포워드처럼 부드럽다. 최소한 자유투 능력이 나빠 파울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섀킬 오닐 같은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승진이 훅슛 같은 다른 공격력을 추가한다면 득점 부문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하승진은 머리도 좋고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도 뛰어나다. 복잡한 작전 수행 능력과 공수 응용 능력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낫다. 트레일블레이저스 존 내시 단장은 “하승진의 성장 속도를 유심히 체크하고 있다. 몇년 내에 우리 팀의 주전 센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야오밍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하승진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거인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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