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의원 “정치자금법만은 제발 놔둬라”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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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전 의원
김원기 국회의장 직속 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위원장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위원 14명에 대한 인선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정개협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개정된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을 손질할 예정이다. 당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한나라당 오세훈 전 의원이 주도해서 ‘오세훈 법’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세 법은 정치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호평과 함께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하지만 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오세훈 전 의원은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1월13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오씨는 “기업 후원을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명 ‘오세훈 법’을 놓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런 의견의 일부는 타당하지만,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비현실적이라고 자꾸 그러는데, 핵심은 법을 고쳐서 후원금을 받고 싶은 것이다. 정치권이 제 머리를 깎기는 힘드니까 정개협이라는 민간인 중심 기구를 만든 것이고, 그런 의도를 잘 아니까 경계하는 것이다.

고칠 수 있는 부분과 절대 고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어깨띠를 후보자만 두르게 해서 누가 선거운동원인지 누가 일반 유권자인지 모르게 만들었다거나, 자원봉사자에게 밥 한 끼 제공하지 못하게 해서 선거판이 너무 야박해졌다고 하는 대목은 얼마든지 고쳐도 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이미 바뀐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러보았기 때문에, 몇몇 조항을 바꾸더라도 대세를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자금법은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정치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치자금이다. 정치인이 후원회를 하면 대부분 기업인에게 전화를 한다. 고액 소수 후원제도로 운용하다 보니까 그런 것인데, 많이 가져다주는 기업은 몇 백에서 천만원까지도 주고, 적게 하는 기업도 안 하면 안했지 100만원 단위 아래로는 안 내려간다. 그런데 전화를 하려고 하면 구걸하는 것 같아서 정말 찝찝해진다. 그래서 4년 동안 한 번도 기업에 전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후원금 순위에서는 200위 아래로 처지더라. 그런데 당시 정치자금법으로는 정치자금 모금 능력이 곧바로 정치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재는 척도로 여겨졌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많이 거둬들여서 동료 의원들과 여행도 같이 다니고, 골프도 자주 하고, 남들 10만원 후원금 보낼 때 인심 좋게 50만원씩 보내고 그래야 거물로 크는 것이다. 정치자금을 잘 모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거물로 성장하지 못한다. 과연 이런 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만약 누군가에 의해 정치자금법이 바뀌었더라면 나는 정치인을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치를 그만두면서까지 법으로 허용된 기업 후원금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가?

옳지 않으니까 그렇다. 4년 동안 50만원씩 후원해준 사람은 너무 고마워서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니 4년 동안 100만원, 천만원씩 주던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게 뇌물 아니고 무엇인가? 합법적 뇌물이다. 그런 뇌물을 받아서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이 과연 바람직한 시스템인가? 그래서 기업의 후원을 금지해야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미국처럼 입구는 열고 회계는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것도 거짓말이다. 미국에서 기업이 돈을 내려면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고, 사후에 주총에 보고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그런 절차 밟으라고 하면 돈 내는 기업이 있을까? 그리고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데, 이사회가 의결해서 돈을 준다면 그건 결국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그건 뇌물 아닌가? 지난해 3월 초인가, 법안 마무리 작업이 한창일 때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노동자들은 머리띠 두르고 으싸으싸해서 의견을 관철하지만, 기업인들은 정치자금으로 기업 뜻을 관철한다. 그러니 기업 후원을 허용해달라’고 하더라. 그러려면 차라리 로비법을 만드는 게 옳다.

10만원 세액공제 같은 소액 다수 후원제도가 아직 활성화하지 않고 있다.

당시 재경부가 난리를 부리면서 반대하는 것을 어렵게 관철한 것인데, 17대 의원들이 때를 놓쳤다. 17대 국회 출범 직후 국민의 기대가 높을 때 이 제도를 적극 홍보했어야 했다. 가만히 있다가 4대 법안 문제로 인심 다 잃고 난 뒤에야 후원해 달라고 하니 후원금이 제대로 걷히겠는가. 그래도 이 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당을 없애기로 한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난해 정개특위에서 중앙당을 2년 후에 없애기로 하고, 거기에 드는 국고보조금을 의원 개개인의 의정활동비로 돌리기로 구두 약속했었다. 법 조항에 중앙당과 시·도 지부 후원회를 2년 후에 없앤다고 명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야 의원들이 기업에 대한 채무감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채무감으로 일할 수 있다.

민의 수렴을 위해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솔직히 지구당이 언제 민의를 수렴하는 기구로 작동한 적이 있는가? 자기들 재선, 3선 하려고 조직 관리 하는 것이지. 지구당 관리에 드는 돈이 제일 많다고 아우성을 치기에 그걸 없앴고, 그렇게 해서 돈 들어갈 구멍이 3분의 1이나 줄었는데, 도대체 후원금 상한액 낮췄다고 아우성칠 이유가 무엇이며, 또다시 지구당 부활시키자고 목소리 높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새로 출범한 정개협에 이런 의견을 따로 전달할 생각인가?

어제 마침 김광웅 교수가 전화를 주셨다. 왜 악역을 맡으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서 조만간 한번 만나 설명을 드리려고 한다. 그래야 착각이 없으시지, 신문에 난 걸로만 보면 마치 국회의원들 일 못하게 법을 만들어 놓은 줄 아시지 않겠는가. 정치부 기자들도 문제다. 욕할 때는 언제고, 요즘은 정치인들이 마치 희생하는 것처럼 기사들을 쓴다. 17대 의원들이 물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는 있다. 자기들이 지켜본 과거 정치인들은 대우받고 살았는데, 정작 자기들은 대접도 잘 못받고 빠듯하게 살아야 하니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개혁법은 역사 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아마 이 법이 정착되면 3년 뒤에는 정치 지망생 사이에 헛바람이 빠지고, 정말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나설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회의원 한두 번 하고 끝내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10%면 족하다. 외교·안보 분야 등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현행 정치자금법을 고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계속 나오는데.

세상에 서울시장 선거 2년6개월 남겨놓고 정치 그만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워낙 갑작스럽게 그만두니까 그런 추측이 나오는 것인데, 한마디로 억측이다. 정치인식 답변이라면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고, 주변에서 자꾸 물어보니까 솔직히 생각해보게 되더라. 하지만 그 자리는 결코 훈련하는 자리가 아니다. 뭔가 보따리를 풀어놓아야 하는 자리인데, 내가 과연 풀어놓을 것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서울시장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잘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잘할 자신이 있을 때라면 혹시 모르겠으나, 적어도 한두 텀(term)은 지나가야 사회 경험도 많이 하고, 조직도 좀 다뤄보고, 구상도 좀 가다듬고 해서 한번 도전해볼 만한 위치에 가지 않을까 싶다. 설령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더라도, 내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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