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스럽게 “자~빠져봅시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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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명가 <개그 콘서트>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 후발 주자인 <웃찾사>와 박빙을 이루던 <개그 콘서트>는 <토지>와 <봄날> 등 인기 드라마 사이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시청률에서 밀리고 있다. 반면 <웃찾사>는 시청률 기록을 계속 경신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와 <개그 콘서트>를 위협하고 있다.

힘겹게 원조 개그 명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개그맨이 있다. 바로 ‘깜빡 홈쇼핑’의 쇼호스트 안어벙(28. 본명 안상태)이다. ‘자~ 빠져 봅시다’라며 흐리멍텅한 시선을 던지는 그에게 시청자들이 녹아나고 있다. ‘깜빡 홈쇼핑’으로 그는 지난 연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과 최우수 코너상을 수상했다.

‘깜빡 홈쇼핑’의 매력은 현대 문명에 대한 은은한 풍자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을 들고 나와서는 엉터리 설명을 풀어낸다. 영구·맹구와 마찬가지로 바보스런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안어병 역시 고전적인 희극 이론을 따른다. 시청자들은 안어벙의 꺼벙한 행동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그런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한다.

안어벙의 웃음에 영구·맹구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능청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그의 능청은 이문구 소설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made in Korea’를 마데전자 제품이라고 말하고, 게임 기능이 있다고 우기고서는 전자제품을 가지고 아이처럼 노는 그의 천진스러움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코너는 아니지만 안어벙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으로 <개그 콘서트>의 중심 코너로 자리 잡았다.

안어벙 캐릭터가 주는 매력은 바로 여유다. 다른 코너들이 숨가쁜 랩의 호흡으로 웃길 때, 그는 구수한 창의 호흡으로 여유 있는 웃음을 제공한다. 그는 그 여유를 할아버지를 통해서 익혔다. 그는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는 욕 한마디를 허공에 뱉고 잠자리에 드셨다. 세상의 고통을 삭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여유를 익힐 수 있도록 도운 또 다른 어른은 뒷집 아저씨였다. 농한기가 되면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읍내에 영화 보러 나가는 아저씨의 소탈한 모습에서 그는 여유를 배웠다. 할아버지와 옆집 아저씨, 그리고 걸인과 노숙자에게서 배운 ‘빈곤 속의 여유’를 2 대 8 가리마 안에 채워 넣었다.

길거리 공연 3년과 소극장 공연 1년, 도합 4년을 무명으로 보내면서도 그는 그 여유를 잃지 않았다. 무명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관객과 호흡하는 법을 배웠다. 날달걀을 우유에 타서 마시며 허기를 달래고 목청을 돋워 정확한 발음과 발성법을 익혔다. 무명 시절을 그는 웃기는 기계처럼 살았다. 하루에 6회 공연을 했는데, 심하면 8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밥도 주지 않아서 도시락을 싸와 먹으면서 공연했다. 대기실도 없어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막연한 자신감에 편안하게 생활했다. 여유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 같다. 소극장에서 월급 50만원을 받아서 10만원을 적금했다. 과감하게 넣어 봤는데, 그렇게도 생활이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안어벙의 특징은 무대에서 절대로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개그맨이 무대에서 웃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한다. ‘춤추는 대수사선’ 코너를 진행하는 오장육보팀과 ‘수출용 개그’를 준비하는 그는 “내가 부리는 마지막 여유는 바로 ‘안 웃으면 마는 거다’이다. 웃기지 못하면 욕 한번 뱉고 깨끗이 뜨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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