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으로 충만한 ‘위대한 존자’
  • 이시형 (한국자연의학 종합연구원 원장) ()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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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명상의 성인’ 달라이 라마
 

내게 달라이 라마는 먼 존재였다.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참으로 먼 존재였다. 어쩌다 뉴스에 붉은 천을 걸치고 등장하는 초라한 승려, 그러나 언제 보아도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고승이었다. 그 정도가 내가 아는 달라이 라마의 전부였다.

내가 달라이 라마에게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1990년 중반이었다. 과학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보고 시작되었다. 종교 잡지도 아닌 과학 잡지에 달라이 라마가? 어쩐지 아귀가 맞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사는 내게 잔잔한 충격이었다. 우선 그는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의 첨단 과학자들과 며칠에 걸쳐 대담했으며, 자신을 연구 자료로 기꺼이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수도승으로서 그의 생활과 명상 수련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으며, 그의 솔직하고 막힘 없는 대답에 짐짓 놀란 것 같았다.

명상을 과학으로 끌어올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검사 결과였다. 달라이 라마의 뇌파가 늘 깊은 명상에 빠진 사람과 같은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은 과학자들은 그의 도움으로 티베트 고승들을 무작위로 골라 똑같은 검사를 했다. 과학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승들의 뇌파 역시 명상에 빠진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명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과학자들은 1990년 중반 드디어 중대 발표를 했다. “이제 명상은 동양의 신비가 아닌, 증명된 과학이다.” 이 한마디가 의심 많은 미국 사람들 사이에 명상 붐을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잘 믿지 않는데,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 연구진의 결론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명상과 과학을 연계했으며, 지금도 첨단 물리학자 같은 과학자들과 깊이 친교를 맺고 있다. 그가 명상 연구를 위해 위스콘신 대학에 거액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고백하건대, 내가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즈음이었다. 대학 때 가정교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해인사에서 지내며 어쩌다 참선을 해보았던 것이 명상 경험의 전부였던 내게 이 기사는 충격이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수련했기에? 과학자들의 확증적인 결론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나 보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국에도 수도승이 많은데 왜? 하지만 한국의 고승은 어쩐지 겁이 난다. 야단을 맞을 것도 같다. 어릴 적에 잘못을 저지르고 아버지 앞에 앉은 심경 그대로다. 거기다 말이 어렵다. 선문답이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괜히 기가 죽는다. 이 점에서 나는 내 자신의 인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달라이 라마, 아니 존자와의 만남은 2004년 1월에 어렵게 이루어졌다. 우선 가는 길이 멀고 험했다. 비행기로 날아서 20시간, 버스로 또 20시간, 눈도 붙이지 못한 채 깜깜한 새벽에 다람살라 사원을 찾았다. 두 차례 검문 검색을 거쳐 비서진의 주의 사항을 듣고서야 겨우 접견실에 들어섰다. 잠시 긴장이 흘렀지만 존자가 들어서면서 방안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문간에 선 기자의 코를 잡아당기는 짓궂은 장난기에 모두가 웃었다. 웃음과 겸손, 그리고 익살이 내가 달라이 라마에게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늘 웃고 중얼거리고…일상 자체가 명상의 연속

존자는 그 엄격한 수업 기간에도 짓궂은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웃음이 많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국의 침공 이후 그 굴욕적인 인고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낙천적인 성품에 오랜 수련이 쌓여 가없는 관용의 정신이 길러졌을 것이다. 지금도 침략자 중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적이란 인내심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큰 스승이다.’

 
초라한 망명 정부의 수장으로서 이건 가히 초인의 경지다. 산 부처가 아니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사랑과 자비는 용서에서 비롯되는 것, 세계 평화도 각자의 가슴에 이런 정신이 깃들 때 이루어지는 것. 어렵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말만이 아니고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인종·국가·종교를 초월해 온 세계인이 그를 흠모하고 존경하고 있다.

그의 한결같은 철학, 용서와 관용의 정신은 구미인들이 새로운 정신세계를 펼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준다. 어떻게 하면 나쁜 생각이나 불안을 없앨까 하는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생각,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동양적 정신세계로 한 차원 높이 다가서게 된 것이다.

다람살라의 겨울 바람은 차가웠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난방이란 개념조차 없다. 존자를 비롯해 승려들은 모두 팔을 내놓고 있는데도 전혀 추운 기색이 없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따뜻하고 친절한 웃음은 이방인을 여지 없이 매료한다.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곳에 오래 살면 그렇게 되는 걸까, 18년을 존자와 함께 보낸 청전 스님의 안내도 따뜻했다. 스님과 함께 근처에 있는 산록 움막(수도원)의 수도승을 찾아갔다. 히말라야의 차가운 눈 속에서 담요 한 장으로 살고 있었다. 침대는 움막 한복판의 바위, 생식에 빗물, 안 얼어 죽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했다.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자기 몸에서 열을 만들어낸다. 난 그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긴 청전 스님 자신도 바람만 불면 넘어질 것 같은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생필품·학용품을 잔뜩 지고 히말라야 고산 마을을 찾아간다.

관광객만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승려들로 그 좁은 마을에는 따뜻하고 넉넉한 웃음이 넘쳐났다. 참으로 경이롭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존자가 명상하는 자세와 수도승이 수련하는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 측근들의 설명에 의하면, 존자의 명상은 아주 자연스럽다. 몸을 흔들기도 하고 혼자 무언가를 중얼대기도 한다. 가려우면 긁고 때론 웃기도 한다. 돌부처처럼 꼼짝 않고 정진할 것 같은데, 실제 분위기는 존자의 평소 생활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수련이 되는 것인지. 명상이 삶의 일부분이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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