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 교과서’가 더 위험천만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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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쇼샤 간행 중학생용 사회 책, 우익 논리 그대로 전파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일본 ‘교과서’ 문제로 번지고 있다. 2001년 1차 파동(<새 일본 역사>의 원본 격인 1986년 <신편 일본사> 파동을 기준으로 하면 2차 파동)이 났을 때, 문제의 핵심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사교과서모임)이 주도한 후쇼샤(扶桑社)의 중학생용 역사 교과서였다. 당시 후쇼샤는 공민 교과서도 만들어 일본 문부성(현 문부과학성)에 제출했지만, 일본 국내외의 관심이 워낙 역사 왜곡 쪽에 집중되었던 터라 공민 교과서의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에 후쇼샤는 역사 교과서 개정판과 함께 공민 교과서도 새로 만들어(신정판) 일본 문부성에 제출했다. 새 공민 교과서의 심각성은 역사 교과서 개정판에 버금가거나 그 윗길이다. 역사 교과서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주변 국가에 끼친 해악을 축소하거나 미화하고, 이를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증 과정에서 합격시켰다는 데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공민 교과서는 이른바 ‘평화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가르치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과거의 잘못’을 덮어버리는 데 견주어, 공민 교과서는 ‘반성 없는 과거’의 바탕 위에 현재의 일본을 재규정하고, 이에 따라 일본의 미래를 우익의 입맛에 맞게 설계하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의 시사 주간지 <슈칸 긴요비(週刊  金曜日)>가 최근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후쇼사가 이번에 제출한 공민 교과서의 하이라이트는 패전 이후 일본을 60년간 지탱해온 평화 헌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평화 헌법은 일본 우익이 ‘전후 청산’ 논리에 따라 이미 1990년대부터 개정 작업을 추진해온 최대의 숙원 사업으로, 궁극 목표는 일본도 군대를 갖고 해외에 진출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일본 류큐대학의 다카시마 노부요시 교수가 입수해 슈칸 긴요비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후쇼사 공민 교과서는 개헌의 논리를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지은이들이 주장하는 개헌의 근거는 ‘일본의 헌법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공민 교과서 지은이들은 먼저 세계에서 성문 헌법을 채택한 국가가 1백82개국에 이른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이어서 공민 교과서는 ‘일본보다 앞서 성문 헌법을 제정한 나라 13개국이 예외 없이 헌법을 개정해 헌법 제정 초기와는 크게 변모된 모습을 보인 반면, 우리 나라(일본)는 헌법 제정 이래 한 자 한 구절도 손대지 않았다’고 강변하며,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일본 우익의 논리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서술한 부분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다. 후쇼샤가 특히 비중 있게 취급한 것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이다. 후쇼사의 공민 교과서는 이 문제를 관련 사진과 곁들여 한 면에 걸쳐 다루었다. 북한이 과거 일본의 선량한 시민을 납치했다는 것은 결코 잘했다 할 수 없고, 일본인이 이를 기억하는 것 또한 결코 그릇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후쇼샤의 공민 교과서는 과거 일본이 북한의 납치 사건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주변국에 저지른 ‘전쟁 범죄’의 실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공민 교과서는 한국의 사회 과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칟경제·사회의 각 현상에 대한 일본 중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마련된 과목이다. 과거 일본의 공민 교과서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인권의 중요성·민주주의 제도의 우수성 등이었다. 이에 반해 후쇼샤의 새 공민 교과서에서 방점이 찍힌 부분은 인권 수호보다는, 사회(또는 국가)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의무 수행이다.

후쇼샤 공민 교과서가 담고 있는 우익 논리는, 2001년 이 출판사의 공민 교과서가 등장한 이래 일본의 양심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같은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보다 훨씬 더 격렬한 비판의 표적이 되어 왔다. 공민 교과서가 대변하고 있는 논리는 일본 군국주의를 떠받쳤던 국가주의로, 이같은 측면에서 공민 교과서는 본질적으로 같은 출판사의 <새 역사 교과서>보다 훨씬 더 ‘고약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외국어대학의 이와사키 미노루 교수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01년 후쇼샤 공민 교과서에는 ‘핵무기 폐기 요구는 오히려 핵의 위협을 배가시킨다’며, 일본 내의 반핵 평화운동을 비방하며 일본의 핵 선택권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과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목놓아 부르짖었던 ‘국체’가 ‘국병(國柄·구니가라)으로 용어만 바뀐 채 그대로 부활되어 있었다. 공민 교과서 지은이들은 ’질서 없는 자유는 혼란을 가져오므로 자유와 양립하는 질서를 찾는 것이 중요하며, 그 질서는 바로 각국의 역사, 바꾸어 말해 구니가라에 의거하는 질서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는 것이다.

일본 내 평화주의자들은 후쇼샤 교과서의 등장을 일본 우익 진영의 ‘국가에 의한 교육 장악’ 음모와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역사 공민 교과서의 개악은 빙산의 일각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 헌법과 함께 일본 전후 반성의 양대 기둥인 교육 기본법 전체를 흔들어 ‘전전 체제’로 회귀시키는 데 본뜻이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제정된 교육 기본법의 기본 정신은 교육을 국가주의에서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반면 교육 기본법 성립 이전 일본 교육 제도의 기본 정신은 1889년 당시 문부상이었던 모리 아리노리(森有禮)가 ‘학교령’을 통해 확립해 놓은 그대로, 교육의 본령을 ‘제국에 필요한 신민 양성’에 두는 것이다. 일본은 이같은 대원칙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며 일본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이같은 우익의 노골적인 국가주의 부활 기도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대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02년에 작고한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전 도쿄 교육대학 교수는 평생에 걸쳐 일본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에 법정 투쟁을 벌였다. 호리오 데루히사(堀尾輝久) 같은 교육학자도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우익의 ‘교육 현장 장악’ 기도를 경고해 왔다. 역시 도쿄 대학 교수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는 1990년 중반 새역사교과서모임이 결성될 때부터, 이 모임이 내세우는 ‘자유 사관’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반박해 왔다. 2001년 교과서 파동 때 후쇼샤의 교과서가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했음에도 일선 학교에서 채택률이 극히 미미했던 데에는 이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그간 일본을 둘러싼 주변 정세가 달라져 후쇼샤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새역사교과서모임의 실질적인 배후라 할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총리 직에 오를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상황이다. 게다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일본인의 불안감은, 위협론의 실체야 어떻든 날로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 우익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를 자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비수’로, 중국·러시아 등 열강의 ‘일본 침략 징검다리’로 포장하며, 자국의 침략성을 부인해왔다. 후쇼샤의 공민 교과서는 논란 많은 역사 교과서와 함께 오는 4월 검정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이는 ‘날카로운 비수론’을 다시 한번 확대 재생산하려는 의도를 일본 정부가 공식 승인한다는 뜻이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을 상대로 휘둘렀던 일본 군국주의의 비수가 60년 만에 다시 칼집에서 나오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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