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 '제국의 망령'을 고발하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5.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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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근대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독도 영유권과 역사 교과서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너나없이 일본을 성토하며 온나라가 들끓고 있다. ‘을유왜란’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연일 격앙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그러나 정작 ‘도대체 쟤들은 왜 저러는 거야?’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냉정하고 진지한 성찰이 부족한 것 같다. 일본의 망발이, 어업권 확보 같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모리배의 어거지인지, 비록 왜곡되었을망정 제 나름의 역사관으로 무장한 확신범의 충정에서 비롯한 것인지 명료하게 가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부분적으로는 둘 다 맞을 테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극성스러워지는 일본 우익의 준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개념을 차용하는 것이 훨씬 더 유효할 수 있다. 사이드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1978년)에서 ‘동양’은 실체가 아니라 서양 사회의 편견과 왜곡이 빚어낸 허상이라고 갈파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그들(동양인)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서양인)가 표현해 주어야만 하며, 따라서 서양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탈이 합리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던 근대 일본도 일종의 아류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다른 누군갗로 행세했다. 아시아에서 유럽 문명의 적장자로 자처하면서도 후진 제국주의 특유의 질투와 부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일본은, 서양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를 타자화했다. 예컨대, 조선 합병은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역학과 그 국제 관계에 일익을 담당했던 일본이 ‘의무로서’ 관여한 ‘세계사의 필연’이라는 식이다. 나아가 세계사의 필연이기 때문에 일본은 아무 것도 사죄할 수 없고, 역사 이해에 도덕을 개입시켜서도 안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고야스 노부쿠니(오사카 대학 명예교수)의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는 일본 근대사에서 아시아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다시 말해 일본은 아시아를 어떻게 타자화했는가를 검증함으로써 일본 우익의 연원에 도사리고 있는 제국의 망령을 고발한 책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성립된 지역 개념인 ‘동아’에 대한 기원적 고찰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동아는 ‘제국 일본’의 노림수가 명백하게 각인된 개념으로서, 아시아에서 일본이 누리던 위상을 정치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끔 한 발명품이었다.

동아는 역사적 의미가 표백된,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결코 아니었다. 중국을 ‘지나’라고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다. 동아는 일본이 중국과 아시아에서 감행한 제국주의 전쟁을 사후에 정당화한 이론적 산물이며, 제국 일본의 패권 논리를 ‘세계 신질서’를 위한 성전의 논리로 바꾸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일본이 동아라는 외피를 두르고 아시아는 하나라며 이른바 동아협동체론을 설파할 때, 그 이념의 발상 기반과 중심은 언제나 일본이었다. 아시아의 복잡성을 ‘단일’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위대한 특권‘이라고 여겼다.

 
중일전쟁 발발을 계기로 동아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면, ‘대동아’는 태평양 지역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고안된 개념이었다. 일본을 맹주로 하여 ‘지나권’과 ‘남방권’을 아우르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위장된 이상을 내세워 제국주의 전쟁의 실상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동아나 대동아가 민족이나 자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 경제적 국가 블록의 성격이 강했던 데 비해, 동아시아 개념은 평화와 연대를 강조하는 NGO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대변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의 운을 뗀다. 즉, 1945년 패전 이후 동아와 대동아로 대표되던 역사를 ‘장사지냈던’ 일본이 이제 와서 동아시아 부활을 꾀하고 있지만, 제국 일본의 패권주의로 더럽혀진 동아에 대한 철저한 자기 검증 없이 동아시아 담론으로 건너뛴다면 동아 시대의 역사적 과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그같은 경고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 보는 것 같은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의 ‘내부 고발’이 마냥 기꺼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 현장이나 각종 국가 고시에서 역사 교과가 배제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일본인 학자의 ‘선의’에 기대 21세기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어디서 발원했는지를 깨닫는 일이 조금은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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