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쉬어가는 글-파병 논란의 언저리
  • 박성준 ()
  • 승인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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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콘돌리사 라이스 얘기 대신 잠깐 쉬어가는 뜻에서 최근 큰 논란을 빚고 있는 파병 논란에 대해 글을 올릴까 합니다.
어제 한국의 유력 매체 중 하나인 ㅈ일보에 자사 워싱턴 특파원이 16일 방한 예정인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과 동행한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방한 목적이 파병 문제와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를 일단락지으려는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며, 또 그 기사가 실린 당일 날 전체 지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는 저 유명한 맹자의 한 대목이었습니다. 지금 정확히 어느 장에 있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맹자에는 '인자여야만 事小를 할 수 있고, 지자여야만 事大를 할 수 있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자주 쓰는 '사대주의'라는 용어의 어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말 뜻을 풀면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事'는 뜻 그대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사소'는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이니, 흔한 표현으로 옮기면 '작은 나라의 입장을 잘 봐준다'는 것입니다. '사대'는 그 반대의 경우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려면 지자(智者) 즉 '똑똑해야' 하는가. 여기서 똑똑하다는 뜻은 무엇인가. 저는 자기 나라의 이해(요새 사람들 영어 좋아 하니까 '내셔널 인터레스트' 쯤 되겠습니다)를 다치지 않고(또는 증진하면서), 섬겨야 할 나라의 이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균형 있게 대처하는 것, 저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사대주의' 하면, 과거 우리 역사의 전철이 있어서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깁니다. 하지만 저는 제 나라의 이익과 큰 나라의 이익을 잘 구분해 요령 있게 처신하면 '사대'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까 말씀 드린 신문이, 상당히 앞서가는 신문이긴 한데, 과연 한미 관계에서 진정한 국익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잘못알고 있지 않나, 또는 독자들에게 국익을 지키는 법을 잘못 해석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그 기사에는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부시 정부의 주요 국방 안보 관련 담당자들은 오래 전부터 주한 미군을 포함해 전세계에 퍼진 미군을 신속/기동군 형태로 재배치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인가, 미 국방부는 재배치 문제를 언급하면서 주한 미군을 재배치하는 대신 자기네가 1백억 달러를 투자하겠다, 한국도 상응하는 조처(이는 재배치에 필요한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라는 소리입니다)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동맹국간 입장 대립이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아까의 그 신문은 이런 데 대한 저울질은 결코 하지 않더군요.
그 신문은 또 독자들에게 미국에서 벌어지는 진상을 상당히 편파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예일대 법대 학장에 한국인 출신 이민 2세인 헤럴드 홍주 고라는 분이 선임됐다는 소식이 있었지요. 그 때 저도 시사저널에 뉴스 메이커로 그 사실을 짤막하게 썼습니다만, 그 직후 도하 일간지에는 그의 뉴욕 타임스 회견 기사가 요약되어 실렸습니다. 제가 문제 삼는 그 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기사를 보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뉴욕 타임스 회견 내용의 주조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문의 해당 기사 제목은 '북한은 어둠의 나라..'로서, 마치 헤럴드 홍주 고씨가 인터뷰에서 북한을 집중적으로 깼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지요.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홍주 고씨의 발언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현재 미국 내의 분위기는 부시 대통령이 소속한 공화당 인사들마저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와 대외 정책상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번 제가 아이보 달더(이보 달더 표기 정정), 린제이(린드세이 표기 정정) 두 사람이 쓴 <아메리칸 언바운드>를 잠깐 소개했지만, 이 책도 '부시 외교의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증거로 저는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가 펴낸 <로그 내이션>을 들
수 있습니다. 프레스토위츠는 이 책에서 자신이 '공수 공화당파'임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부시 외교 행태를 거칠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인사가 이럴 정도니, 원래부터 민주당계인 헤럴드 홍주 고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습니까. 그는 예일대 법대 학장에 임명되기 직전에도 영국의 한 강연에서 부시 외교의 잘못을 상당히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저는 비록 지면 제한으로 강연 내용을 자세히 요약하지는 못했지만, 그 일부를 예일대 학장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부시 정부가 9/11 이후, '예외적인 힘과 예외적인 취약성이 동시에 내포된 정신 부열 상태'(schizopheric sense of both exceptional power and exceptional vulnearability)에 빠져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부시 정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시한 4가지 기본 자유(언론의 자유/종교의 자유/빈곤으로부터의 자유/공포로부터의 자유) 가운데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국가 정책 최우선 순위에 놓아 세계를 불안에 떨게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글의 일부를 이미 익히 보았기 때문에 뉴욕 타임스의 회견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훤히 알았던 것인데, 문제의 신문은 인터뷰 요약 기사의 제목에 엉뚱하게 '북한'을 갖다 붙이더군요.
이건 어찌보면 사소한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신문이 이같은 보도를 통해 '알려야 할 것은 알리지 않고' '몰라도 그만인 것은 크게 알리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상황 자체를 결과적으로 왜곡해 전달해준다는 것입니다. 독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사실 전달'이 정확해야 합니다. 하물며 파병이냐 아니냐 등 '국익'에 대한 판단을 요청할 때에는 적어도 사실만큼은 정확히 전달해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신문은 이라크 파병 문제가 처음 나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즉각, 그것도 될 수 있으면 많이, 그리고 전투병으로'(즉 부시가 하자는대로)를 초지일관 견지해왔습니다(물론 그네들이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 '실기하면 안된다'. '국론 분열 전에 결단하라'라는 식으로 조여갔지요). 지금 부시 대통령은 믿었던 일본에게서도 등돌림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미국에서도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한때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자랑했던 부시는 지금 내년 재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신문의 애국 충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시에게 맹목적으로 몸을 맡긴다?(또는 맡겨라?). 또 몸을 맡기며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미국을 돕는 나라는 모두 적으로 삼고, 죽이겠다고 펄펄 뛰고,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라크입니다. 파병 논의가 처음 불거졌을 때와는 상황이 엄청 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걸 두고 뭐라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적당한 표현이 혹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현 정부와 척을 진 그 신문은 현 정부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기를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야 뭐 당사자도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계산에는 큰 관심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결코 남의 일만으로 여겨지지는 않는 것은, 그같은 논란에 국익이 좌우되기 때문이지요. 저도 명색이 대한민국 국민인데다, 외환 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운의 변동이 제 신상의 변동과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가도 뼈저리게 느껴봤지요.
가뜩이나 너저분하게 말씀드리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특히나 너저분했습니다. 다음에는 정상 궤도로 복귀해 원래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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