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3-거짓말, 자기 최면, 그리고 탐욕
  • 박성준 ()
  • 승인 2004.0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씨줄날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체니 일파가 얼마나 작심하고 후세인 때려잡기에 덤벼들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거 참'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는 무렵부터 뿌옇게 의혹만 잔뜩 쌓여 있던 전쟁의로의 내막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폴 오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시 정부 초기 재무장관을 지내다가 입바른 소리를 잘 하고, 부시가 최대의 국정 과제로 삼았던 '감세 정책'에 대해 말을 잘 듣지 않아 시쳇말로 '짤린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독기를 뿜고 부시 정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까발리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화끈한 것이,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9/11 이후가 아니라 취임 초기부터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국가안보회의 때 이미 사담 후세인 제거 문제를 정책 최우선 순위에 놓고 논의했으며, 두번째 회의 때는 '사담 후세인 제거 후의 대책'이라는 내부 메모를 받아들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미국의 어려운 경제 현실을 들어 (필경 대규모 군사비가 소요될)후세인 제거 계획과 감세 문제에 대해 난색을 표했는데, 이때 딕 체니가 했던 말이 걸작이었답니다. "여보시오 폴, 적자 예산이라면 이미 레이건 때에도 대수가 아닌 것이 입증됐잖소You know, Paul, Reagan proved deficits don't matter". 이어서 그는 덧붙이기를, "우리는 중간 선거에서 이겨야 하오. 그게 바로 우리 할 일이요".
이렇게 보면 이라크 전쟁은 체니 일파에게 '언젠가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시 정권 출범 초기 체니는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상당히 부산히 움직입니다. 그는 먼저 부통령실을 확대 개편했습니다. 전임 엘 고어가 운영하던 규모의 두배로 부통령실 인력을 늘렸고, 비서실장에는 루이스 스쿠터 리비라는 인물을 앉혔습니다. 그가 누구냐. 바로 '부시 독트린'의 원본 격인 1992년의 '국방 계획 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의 작성자 중 한사람입니다. 1992년 당시 체니는 국방장관이었고, 지침 지휘자는 현재의 국방장관인 폴 월포위츠였으며, 지침 작성 실무자가 바로 리비였던 것입니다.
체니는 그것도 모자라 국가안보회의도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기도했습니다. 라이스를 설명할 때 국가안보회의 기능을 잠깐 설명드린 적이 있는데, 국가안보회의는 부처간 정책 조정 기능을 빼면 사실 '시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책 조정 기능을 실행하는 주된 기제가 바로 '주요 관계 장관 대책 회의(보통은 principals committee라고 부르더군요)인데, 이 회의의 주재권이 바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게 있습니다. 체니는 부시 정부 출범 무렵, 부시에게 이 회의의 주재권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논란이 되다가 결국 '원래대로' 처리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는군요. 요즘에서야 저는 체니 일파가 '키신저 이래 최대의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예견되던 파월을
따돌리고 미국의 외교 안보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체니는 특히 과묵하고 신중하며 행동거지가 방정맞지 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런 그도 후세인 제거에 대해서만큼은 '약장사' 뺨치는 놀라운 입심을 보입니다. 저는 그 중 백미가 바로 2002년 8월말 테네시 주 네쉬빌에서 있었던 미국 참전용사회 전국 대회에서 행한 연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연설 전문은 guardian.co.uk/iraq/sto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사담 후세인이 미국과 세계 평화에 끼친 각종 죄상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왜 그가 '토벌' 대상인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담 후세인을 '우리나라의 불구대천의 원수'(The case of Saddam Hussein, a sworn enemy of our country)'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나서 사담은 이미 오래전 핵무기를 얻으려는 노력을 재개했으며, 곧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Many of us are convinced that Saddam will acquire nuclear weapons fairly soon
). 아예 '1년도 지나지 않아 핵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기한까지 특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치명적인 위협에 직면해서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떻게 잘 돼겠지 하는 희망어린 사고나 선의의 맹목'이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체니의 연설문에서는 미국이 그토록 탐내는 이라크 석유의 '석' 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이라크 석유를 사담 후세인의 손에 있도록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이는 후세인의 중동 지배 야욕이 실현되도록 미국이 도와주는 꼴이라는 말은 하지요.
저는 '우리의 불구 대천의 원수 후세인'으로 시작하는 체니의 연설을 들으면서 문득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관료 생활을 할 때 지었다는 저 유명한 '토황소격문'이 떠올랐습니다. 반군 괴뢰를 쳐야만할 정당성을 너무나 실감나게, 설득력 있게 묘사해 하늘도 땅도 통곡하고, 귀신도 무릎을 쳤다는 바로 그 유명한 성명말입니다. 실제 체니 연설문에는 '신의 가호가 미국과 함께 하기를...'이라는 고대나 중세 시대의 주문을 연상시키는 구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또한 이 연설문을 읽으면서 체니가 연설을 통해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연설에는 '진실 아닌 진실'로 순진한 미국 국민을 꾀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이끌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체니의 채취가 실감나게 묻어납니다.
사담 후세인이 사로잡힌 오늘날, 저는 체니 일파가 구사한 '후세인 사냥술'이 그 방식 그대로(일방주의와 의지의 동맹, 독재자로부터의 해방과 민주주의 등 많습니다) 또다른 '악의 축'인 북한과 이란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잡힌 오늘날 체니의 동료들은 또 세일을 시작했습니다. 다음 회부터는 미국 정부 바깥의 대표적인 '네오콘 판매원' 리처드 펄을 통해 요새 이 양반들이 또 어떤 '장사'에 나섰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번 회를 마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