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펄3-돌연한 퇴장과 조지 소로스의 부시 낙선 운동
  • 박성준 ()
  • 승인 200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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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만에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그동안 좀 바빴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기시길...
제가 씨줄날줄에서 빠져나온 사이 리처드 펄의 신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더군요. 바로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책위원회에서 펄이 빠져버린 일 말입니다. 그가 부시 정권 출범 무렵, 국방부에 들어가려 했다가 재산 공개를 우려해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선택했던 사실이나, 그 뒤 또 국방 업체와의 로비 스캔들로 물의를 빚어 위원장 직도 사퇴했다는 얘기는 일전에 말씀 올렸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정책위원회에서 완전히 빠졌더군요. 공식적인 사퇴 이유는, 자신이 존재가 국방부에 잘못 영향을 끼친다는 '오해'를 살까봐서라지요. 행여 부시의 재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까봐 알아서? 빠져주는 것 같은데, 글쎄 과연 펄 한사람 빠진다고 그럴듯한 작품이 만들어질런지... 요새 돌아가는 폼새를 봐서는 또 한번 9/11 같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모를까 부시도 상당히 위태로워 보이는군요.
원래 이번 회에는 리처드 펄의 4년 전 한반도 책략을 리뷰해드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지나간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오늘은 화제를 좀 돌려 조지 소로스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근 저희 시사저널 지면(워싱턴 변창섭 편집위원)을 통해서 일차 소개해드렸듯이, 소로스는 요새 부시 낙선 운동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그는 최근 <미국 우월주의의 거품The Bubble of American Supermacy>라는 책을 펴내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 때 부시를 찍어서는 안되는 이유 몇가지를 들며 노골적으로 '부시 낙선 운동'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저도 요새 이 책을 구입해다가 읽고 있는 중인데,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아 몇몇 대목을 소개해 올릴까 합니다.
우선. 부시가 떨어져야 할 당위성. 소로스는 서문에서 부시가 미국의 가치는 물론 미국의 안보마저 위태롭게 했다고 합니다. 또 세계도 위태롭게 했다고 합니다. 부시를 뽑은 것은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얘긴데, 소로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04년 부시가 리젝트된다면 그의 정책(즉 부시 독트린)은 일시적인 탈선에 그치고 미국은 국제 무대에서 다시 합당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가 재선된다면, 유권자들은 부시 독트린을 승인하는 꼴이 되고, 우리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소로스는 또 말하기를, 부시를 추동시켰던 네오콘(소로스는 네오콘이라는 용어 대신 '극단주의자'extremist라는 표현을 씁니다. 네오콘이 이슬람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을 부를 때 'extremist'라는 표현을 씁니다. 소로스의 용어 선택이 다분히 의도적임이 느껴집니다)의 외교 정책을 '조악한 사회 다윈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그가 보기에, 이들 네오콘은 협력이나 협조는 안중에 없고 세계는 오직 적자 생존의 법칙, 즉 힘 있는 자는 살아 남고 힘 있는 자에 의해 세계가 지배된다는 유치찬란한 진화론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로스가 보기에 특히 부시 일파의 죄질이 무거운 것은, 부시 일파가 미국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9/11을 악용하고 미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소로스는 2차 대전 때 헝가리에 살았던 유태인으로서 나치 독일과 전체주의 소련의 지배를 모두 겪었던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 때 이미 자신은 나치 독일과 전체주의 소련이 자기네 야욕을 채우기 위해 독일 민족주의, 계급 해방 등을 악용했는데, 미국 네오콘들 하는 짓이 저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소로스가 보기에 미국 네오콘은 미국 패권의 확보를 위해 자유를 외치는데, 이것은 흡사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같습니다. 소로스는 '자유를 외치는 것'과 '자유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즉 부시 정부는 자유를 말로만 외치고, 실천하지는 않는고 꾸짖습니다.
그의 말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지만, 소로스는 북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도 상당히 통찰력 있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과 함께 MD로 대표되는 군사비 증액 프로젝트를 위해 부시 정부에 의해 '적'으로 만들어진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입니다. 즉 부시 정부는 MD를 합리화할
구실로 제1단계 상황에서는 북한을, 2단계에서는 중국을 적으로 만들려했다는 것입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악의축' 등 군사력 강화를 위한 더 좋은 구실이 생기면서 당초 부시 정부의 구상은 일정한 수정을 겪게 되지만, 원래의 밑그림은 그랬다는 것이며 바로 이같은 구상 때문에 부시는 초장부터 클린턴 시절의 대북 정책을 완전히 뒤엎고 나섰다는 것입니다(부시 정부는 대북 정책의 후퇴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 북한이 기본 합의를 어겼다고 선전해왔습니다만 소로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2002년 이후 미국이 대북 압박의 주요 소재로 써먹어온 우라늄 농축 문제만 해도, 소로스는 실제 고농촉 우라늄이 북한에 존재하는가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우라늄 농축 프로젝트가 기본 합의 사항의 위반은 아니라고 적시합니다. 클린턴 정부가 실수를 한 것이든, 아니면 아예 생각도 못했던 것이든 기본 합의는 '기본적'으로 플루토늄 재처리만 합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우, 군사 전문가도 아닌 금융 투기꾼도 다 아는 논리상의 결함을 어찌 전지전능한 미국 정부는 알아채시지 못하시는지...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국내 몇몇 언론, 특히 엘리트 언론이라고 자부하는 몇몇 신문은 그런 부시 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또는 한미 동맹을 부르짖으며, 미국의 시책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야말로 애국이고 민주인 것마냥 굳세게 떠들어왔습니다. 이런 널뛰기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미국인들에게 야코가 잡히고 미국 정부에 당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펄은 한때 유엔으로부터 '전쟁 인가'가 나지 않자 '의지의 동명' 어쩌구하며 말 잘듣는 나라 몇몇을 규합해 기어코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자고 기세를 올렸습니다. 저는 그 도저한 웅변가 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자진해서 국방정책위원회 위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제 미국인들도'의지의 동맹' 어쩌구 하는 소리보다는, '정의의 동맹' 어쩌구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만큼 9/11의 충격에서 헤어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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