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울지 않는 힌두교 장례식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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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힌두교식 장례를 제대로 본 곳은 네팔이었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있는 힌두 사원을 들렀는데, 그 곳에서는 온종일 사람 시체 타는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카투만두에 사는 힌두교인들이 죽으면 이 사원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나는 사원 입구에서부터 살 타는 냄새에 코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사원 한 가운데로 흐르는 작은 개울과 그 주변에서는 네댓 구의 시체가 시차를 두고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은 회색 연기로 뿌옇게 가려져 있었고, 시체가 타던 곳에서는 ‘타닥’ 소리와 함께 다리 하나가 삐져나오기도 했다.

마침 나는 시체를 태우기 전의 의식에서부터 태우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죽은 이의 가족들은 시체를 개울 가로 옮긴 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리고 아주 화려한 색깔의 옷과 장신구로 곱게 단장시킨 뒤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하얀 천으로 한번 더 시체를 덮어주었기 때문에 시체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준비가 끝났는지 한 무리의 사제들이 왔다. 주문을 외우고 몇 가지 의식을 치렀다. 꽃가루와 색깔나는 가루를 시체에 뿌리기도 했다.

그런 뒤 시체 위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장작더미 위에 있던 시체는 기름과 옷 덕분에 활활 타올랐다. 고기 타는 냄새보다 훨씬 고약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고, 잿가루가 여기저기 날렸다. 장례식 내내 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과정’라는 힌두교식 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도인들은 ‘죽음이란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듯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껍질을 벗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육신의 죽음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니 가족 또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당시 나는 딸아이와 단 둘이 여행 중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딸아이는 고약한 냄새와 날리는 잿가루 때문에 구경을 멈추고 돌아가자는 내 팔뚝을 잡아끌며 전 과정을 다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구경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 사람은 왜 죽어? 사람을 저렇게 태우는 이유가 뭐야’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 뒤 딸아이와 나는 바라나시를 여행하며 갠지스강 가에서 힌두교식 장례를 볼 기회가 또 있었다. 갠지스강의 풍경은 네팔의 힌두 사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원의 장례식은 보다 근엄하고 침울했는데, 갠지스강의 장례식에서는 묘한 활기마저 느껴졌다.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힌두교인이라면 누구든 꼭 한번 들러야 하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힌두 신앙에 따르면 죽은 후에 재를 갠지스강에 흘려보내면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있는 노인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갠지스강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강 주변에서는 매일 그리고 온종일 시체를 태운다. 그 시체를 닦고 타고 남은 재를 뿌린 물, 온갖 쓰레기들이 갠지스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그 더러운 강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여러 종류의 일들이 동시에 펼쳐진다. 강 주변에 걸터앉아 빨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옆에서는 남자들이 목욕을 즐긴다. 아이들은 강 속에 들어가 첨벙거리며 물놀이를 즐긴다.

심지어 다 탄 시체의 재를 뒤지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다. 시체가 가지고 있던 금붙이와 악세사리들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것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시체 주변에는 늘 개들이 얼쩡거리는데, 이 개들은 ‘시체를 뜯어먹고 산다’는 악명을 듣는다. 죽음의 의식이 행해지는 그 공간에서, 우리 시각으로 보면 더럽기 짝이 없는 곳에서 인도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여러 행위들을 아주 담담하게 이어간다.

인도 사람들은 누구도 갠지스강이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성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여행하는 인도인들은 갠지스강물에서 꼭 목욕을 하고, 물을 담아서 집에 가져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갠지스강이 정말 성스러운지를 체크하기 위해 강물의 오염도를 조사했는데, 세균이 단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갠지스 강 건너 편에는 하얀 백사장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그 백사장을 해탈의 땅으로 부른다. 부처가 수행했던 곳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갠지스 강을 경계로 사람들이 사는 강 주변은 세속의 땅이고, 강 건너 백사장이 있는 모래밭은 해탈의 땅인 셈이다. 그래서 불교 신자나 스님들은 힌두교와는 다른 목적으로 갠지스강을 찾고, 그들은 꼭 강 건너 편으로 건너가 모래를 퍼서 집으로 가져간다. ‘해탈의 땅’에서 채취한 모래 또한 영험한 존재가 되므로. 갠지스강은 해탈과 세속, 그리고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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