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새 길 찾는 백가쟁명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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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논객들, 치열한 ‘자기 갱신’ 논쟁…박정희 평가·반공 등 민감한 이슈 망라

 
최근 출간된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바오 펴냄)는 국내 보수주의자들의 자기 비판과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들은 자신의 근거지를 향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참여한 필자들은 박효종(서울대·국민윤리학) 함재봉(연세대·정치학) 교수와 소설가 복거일씨,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이한우 조선일보 기자 등 7명. 모두 쟁쟁한 보수 논객이다.

지난 3월24일 오후, 서울 정동의 한 건물에서 뉴라이트 싱크넷 출범식이 열렸다. 뉴라이트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이 모임의 주축은 김영호(성신여대·국제정치학) 김일영(성균관대·정치학) 전상인(한림대·사회학) 교수 등 40대 소장 학자. 리더 격인 김영호 교수는 1980년대 무크지 <녹두서평>의 발행인을 지낸 ‘전향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뉴라이트 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식인들이 나서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 정통성 시비 의미 없다" 주장도

‘원조 뉴라이트’인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3월31일 뉴라이트 리더스 아카데미를 열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20대 초반 대학생들. 자유주의연대는 역량의 70% 이상을 이들의 조직화와 이론 무장에 쏟고 있다. “진보운동을 하다가 보수 진영에 들어와 보니 이들이 패배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한국의 보수는 반공만 외치며 정체되어 있었다.” 자유주의연대 한 관계자의 말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이들의 공통점은 보수이기는 하되 ‘시청 앞에서 인공기나 불태우는 극우’(뉴라이트 논객의 표현)와 일정하게 선을 그은 보수라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의 보수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 박효종 교수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한 기업 총수의 말처럼 한국의 보수도 철저한 자기 갱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00쪽 인터뷰 참조). ‘진보에 대항할 만한 이론적 틀을 제시’(함재봉)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보수 논객들은 현재 백가쟁명 식의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 소재도 박정희 평가에서부터 시장 경제, 반공, 북한, 민족주의에 이르기까지 각종 민감성 이슈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 내부의 주장들을 모아보았다.
먼저 박정희 재평가 부분. 사회의 박정희 재평가 분위기와 달리 보수 세력 내부에서 박정희를 전면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다.

한 소장 학자는 “정치적 공과를 재평가할 수 있지만 진보의 박정희 죽이기 분위기에 휩쓸릴 우려가 있어서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다만 박정희식 경제 개발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가장 비판적인 그룹은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소속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김영용 교수(전남대)와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 등이 주요 멤버다. 이들 대부분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서 밀턴 프리드먼으로 이어지는 시카고 학파에 학맥이 닿아있다. 시카고 학파는 과거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정책에 이론 기반을 제공한,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파다.

 
이들은 박정희 시대에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은 불가피했다는 전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나 중화학공업 투자, 금융 통제 등은 잘못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산업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 주고 근로 의욕만 불어넣어 주었더라면 굳이 중화학공업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먹고 사는 길을 찾았으리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구미라면 일반적이겠지만, 국내에서는 보수주의자 안에서도 아직 소수다.

 
이에 비하면 박정희식 경제 개발의 공과를 함께 보자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장은 현실적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주도형 중상주의 시스템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 2만 달러 시대 개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간의 창의력을 중시하는 시장주도형 자유주의 시스템만이 해결책이다”라는 신지호 교수(자유주의연대 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반면 함재봉 교수의 주장은 앞서 언급한 두 그룹과 비교할 때 상당히 튄다. 그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소득 3만 달러까지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개발 국가 모델을 계속 살려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복지정책을 대하는 시각에서도 갈린다.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을 사보험으로 대체하라고 주장하지만, 뉴라이트 학자들은 한국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은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주류 보수는 노쇠, 뉴라이트는 약세

 
보수층에게 경제 문제 못지 않게 민감한 논쟁 소재는 ‘반공과 북한’. 조갑제 전 <월간 조선> 발행인과 서울시청앞 집회에 모인 이른바 ‘올드라이트’ 인사들의 목소리가 우선 떠오른다. 이들은 여전히 반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북한과 대결하는 현실에서, 남한 내 진보 세력과 맞서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보수 세력 다수가 여기 동조하는 편이다.

 
반면 소수지만 이견을 내놓는 이들도 생겼다. 뉴라이트 기수 홍진표씨(‘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는 최근 조선일보에 반공주의 세력을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라기보다 전체주의 체제에 가까우며, 따라서 반공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반공만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라고 홍씨는 말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논란거리. 대부분의 올드라이트 논객들은 ‘북한은 정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일 뿐이다’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반면 뉴라이트 논객 김영환씨(<시대정신> 편집위원)는 “김일성 체제나 김정일 정권에 반대할 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나아가 북한 정권의 출범이 불법적이지 않은 만큼 정통성 시비도 무의미하다고 본다.

민족주의 논쟁도 활발하다. 구미나 일본의 경우 흔히 보수는 민족주의, 진보는 탈민족주의 쪽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모두 민족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 논란만큼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보수층 안에서 대표적인 탈민족주의자는 소설가 복거일씨. 복씨는 근대적 제도를 이식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복씨는 영어공용화를 제안한 적도 있다. 뉴라이트 논객 김영환씨도 영어 공용화에 찬성한다. 복거일씨는 또한 우리 사회의 배타성을 비판하면서 이주 노동자를 껴안자고 제안했다. 진보 세력이 이주 노동자 문제를 주로 인권 차원에서 거론하는 반면, 복씨는 이와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올드라이트 중에서는 일본 잡지에 ‘일제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었다’는 요지의 글을 기고해 파문을 일으켰던 한승조 교수나 지만원씨가 민족주의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거친 문제 제기는 보수층 안에서도 거센 반발을 샀다. 진보 세력에 비해 다소 현실적일 뿐 국내 보수주의자 다수는 민족주의자다. 실제로 최근 독도 문제를 보도하는 조선·동아 일보나 한겨레의 논조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지난해 초까지 국내에서 보수 진영을 꼽으라면 한나라당과 이른바 올드라이트 정도였다. 학계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별다른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뉴라이트가 뜨면서 보수의 조직화·이론화도 힘이 붙는 양상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 논쟁이 활발하지는 않은 편이다. 주류는 노쇠하고, 뉴라이트는 아직 세가 약하다.

 
박효종 교수(58·서울대 국민윤리학과)가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에 기고한 글이 최근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 화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죄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살리지 못한 죄 △지키기만 하고 가꾸지 못한 죄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 죄 △특권 오·남용의 죄 △자기 실현에 탐닉하고 자기 초월을 못한 죄 △베풀지 못한 죄. 이같은 ‘칠거지악’을 범했기 때문에 보수가 진보에 완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박교수는 특히 보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를 가장 중요한 패인으로 꼽았다.
박교수는 월간 <에머지> 편집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와 교과서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보수주의에 왜 위기가 왔다고 보나?
지금 보수의 위기는 이론의 위기가 아니라 행동의 위기다. 산업화 시기 보수주의자들은 개척자였고 헌신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수층에게는 살신성인의 자세도 포용력도 남아있지 않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게 우리 정치공동체에 먹혀들었다. 권력을 빼앗겼다는 것보다 도덕적 헤게모니를 빼앗겼다는 것이 보수의 더 큰 위기다.

보수주의자 내부의 논쟁이 활발하다.
정치도 운동 경기처럼 상대편이 강해야 발전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적이 아니라 라이벌이다. 그런데 진보에 비해 보수는 너무 논쟁이 없었다. 요즘 보수 캠프 내에서 백가쟁명 식으로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데, 보수의 르네상스를 위해서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 정치 공동체 전체의 담론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의미가 크다고 본다.

보수·진보의 골이 너무 깊다.
서로 원칙과 소신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논쟁을 보면, 찬성하면 꼴통 보수가 되고 반대하면 친북이 된다. 서로 차이만 확인하고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소신에 앞서 현실적인 판단과 정책을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보수의 내부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이나 진보가 여러 분파로 갈리는 것 모두 바람직하다. 담론이 다양해질수록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삶의 방식)로서의 합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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