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종량제가 대세라고?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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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제 실시하는 OECD 국가, 대부분 정액제 병행

 

캐나다 서부 버나비에 살고 있는 김형주씨(33)는 공인번역사다. 캐나다 교포들이 대체로 그렇듯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 개봉작 대부분을 인터넷 DVD 파일로 내려받아 보는 영화광이었다. 하지만 2003년 9월 난데없이 봉변한 이후 그는 인터넷으로 영화 보는 습관을 버렸다. 사무실 인터넷이 끊기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는 곤욕을 치른 것이다.

두 달 전 통신회사 쇼컴퍼니로부터 걸려온 경고 전화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2003년 7월 통신회사 상담원이 “당신(김씨)의 인터넷 다운로드 양이 63기가(10의 9승) 바이트에 달한다. 월간 사용 한도의 10배가 넘는다. 계속 이러면 경고 없이 인터넷을 차단할 것이다”이라며 엄포를 놓은 것이다. 뒤늦게 후회한 김씨는 통신회사에 사정해 겨우 인터넷을 복구했다.

김씨는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처럼 인터넷 종량제 이용자다. 인터넷 종량제는 마치 수도세나 전기세처럼 사용자가 인터넷을 쓴 만큼 돈을 내는 제도다. 그는 매월 42.95 캐나다달러(약 4만원)를 내고 인터넷을 쓰는데, 월 사용한도는 다운로드(내려받기) 양이 6기가 바이트, 업로드(사용자의 파일을 외부 서버·사이트나 친구 등에게 보내주는 행위) 양이 2기가 바이트다. 그는 “무제한으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국은 천국이다”라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천국의 시대’가 영원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국내 통신업계를 중심으로 종량제 실시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인터넷 종량제가 이슈화하곤 했는데, 올해도 KT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KT 이용경 사장은 지난 3월23일 한 인터뷰에서 종량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더니, 3월27일에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종량제를 옹호했다. 그는 ‘수입은 늘어나지 않는데 인터넷 트래픽 양은 매해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종량제를 도입할 때이다’라고 썼다. 캐나다 김씨의 봉변이 한국 네티즌에게 닥칠 날이 멀지 않았다.

‘종량제=시장 경제 원칙’ 주장은 억지

통신업계는 인터넷 종량제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한다.  KT 이용경 사장은 블로그에서 ‘쓰는 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썼다. KT의 한 관계자도 “자본주의 사회라면 종량제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종량제가 시장 원칙이고 정액제는 변칙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2004년 5월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 가운데 15개국이 정액제, 9개국이 종량제를 하고 있다. 그나마 종량제를 하고 있다는 9개국 가운데 7개국은 정액제와 종량제를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액제 서비스 없이 종량제만 실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은 3월10일 <오마이 뉴스>와의 간담회에서 “영국도 최근 (인터넷) 종량제로 옮겼다”라고 언급했다. 정액제 국가였던 영국의 경우, 2004년 3월 최대 통신회사인 BT가 종량제를 실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종량제와 정액제를 선택할 수 있게 했으며, 그나마 종량제가 적용되는 부분은 주로 저속 인터넷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상규 박사는 “영국의 경우 초고속 인터넷은 여전히 정액제다. 요금 제도는 각 나라의 인터넷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국제적 추세는 없다”라고 말했다. 시장 경제 원칙과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인터넷 종량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대는 거세다(*쪽 패러디 그림 참조). 요즘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검색어 순위 목록에는 ‘독도’ 와 함께 ‘종량제’가 꼽히고 있다. 네티즌에게 종량제 옹호자는 일본 우익과 동격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정작 ‘공공의 적’인 KT측은 종량제의 구체적인 방안과 요금 기준을 공식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KT 홍보실은 “당장 종량제를 실시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종량제 홍보에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KT가 일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네티즌끼리 서로 가설을 내세우며 유언비어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량제 실시 기업, 시장 빼앗기자 가격 인하

그 중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도 있다. 한창 인기를 끄는 종량제 패러디 가운데에는 ‘(종량제 이후) 하루에 10분밖에 못써’라며 종량제 요금 시스템을 PC방 인터넷 사용료에 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별요금부과제는 통신 업계에서도 부정적으로 여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인터넷 사용 시간을 요금 부과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오스트리아 AT 사와 이탈리아 텔레콤이탈리아 사의 일부 서비스뿐이다. 대부분은 주고받는 데이터 전송 양을 요금 기준으로 삼고 있다. KT 요금 담당자 역시 “종량제 실시를 염두에 두고 기준을 만든 적은 없지만, 사용 시간을 단위로 이용료를 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종량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종량제가 인터넷 이용 요금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의 BT 사는 종량제 실시 이후 오히려 기본 요금을 내렸다. 경쟁 업체에게 시장을 크게 잠식당한 탓이다. 영국 <옵서버>지는 지난 3월13일자 기사에서 복잡한 요금 제도를 차근차근 설명하며 ‘정보의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보도했다. 지난 4월3일 영국 이브닝 뉴스는 통신업체 100~2백개가 경쟁하는 작금의 영국 인터넷 시장을 ‘가격 전쟁’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종량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완전 경쟁이다. 현재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KT가 52%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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